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비결

in #christianity7 years ago

필자의 사역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최우선을 두고 있는 게 기도의 일꾼을 모으는 것이다. 기도의 일꾼이란 능력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성령과 동행하는 결과로 얻어지는 신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는 백명 중에 한명 꼴로 그런 능력 있는 기도를 한다. 백명 중에 아흔 아홉 명이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의 기분 썩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필자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분만 나빠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령과 동행하는 능력 있는 기도를 하는 지 잘 살펴보기 바란다. 필자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필자가 만난 크리스천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주장이 틀리기를 간곡하게 바라고 있다.

필자의 사역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 코칭을 받기 원해서 카페 게시판의 글을 촘촘하게 읽거나 개인적으로 코칭을 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갈급한 마음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필자의 사역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기에, 상황이나 환경이 허락된다면 기꺼이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시다시피, 필자가 기도의 강을 건너 갈 때는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나 교회가 없었다. 오직 성경을 지도삼고 성령을 나침판 삼아 외롭고 힘든 항해를 시작했었다. 필자가 해주는 코칭은 다른 게 없다. 그냥 코치일 뿐이다. 노를 젓는 것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필자가 하는 일은, 방향은 똑바른지, 속도가 적당한지, 주변에 암초가 있는 지를 확인해 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강을 건너가기를 소원하며 갈급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모두 다 건너가는 것은 아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필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어두운 현실이기도 하다.

멀리뛰기 선수가 경기하는 것을 보셨을 것이다. 멀리 뛰기 선수는 100m 단거리 경기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도움닫기를 하기 전까지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운동력을 가지고 도움닫기를 하면서 활강을 하면 달려오던 운동에너지가 날아가는 운동에너지로 바뀌어서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멀리뛰기 선수는 경기신호가 울리면 도움닫기 판에 도달할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도움닫기를 하면 그냥 날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멀리뛰기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려면 얼마나 전속력으로 달렸는가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평소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를 하다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멀리뛰기 선수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듯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성령의 내주를 간구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갈급한 마음으로 간절히, 전심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필자가 왜 이렇게 비슷비슷한 수식어를 나열하냐면, 간절히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지속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간절히 기도한다고 주장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이런 기도의 롤 모델이 바로 야곱이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실행한 하나님의 사자와의 전투기도 사건에 대해서 잘 아실 것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칭호인 ‘이스라엘’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어 후세에 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하나님을 처음 만나려면 이렇게 전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나주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로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 한다.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요건은 간절한 태도이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느냐 하는 태도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열심히 기도해왔으며 간절히 기도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의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잣대에 합격해야 할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간절히 기도한 사람치고 하나님을 못 만난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결코 어기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해 왔는데, 여전히 못 만나고 있다면 뭐가 부족한 것일까? 전속력으로 달린다고 생각한다면 좋다. 그러면 기다리는 것만 남아있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더라도 하룻밤 기도해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을 만나는 또 다른 비결은 인내이다. 성경의 위인 중에서 인내의 롤 모델을 찾으니 너무 많았다. 아니, 모든 성경의 위인들은 인내의 달인이었다. 그중에서 필자는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비유 중에,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던 가난한 과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 과부는 말하자면 끈기와 인내로 재판관을 샷 아웃시킨 사람이었다. 그 악한 재판관은 돈을 받고 재판을 굽게 했는데, 돈이 한 푼 없는 가난한 과부의 소원을 들어줄 리가 없다. 그녀는 새벽과 밤늦게까지, 집과 법원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가 온갖 수모를 당하고 매를 맞으며 위협과 공갈까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기어이 그 나쁜 재판관을 녹여버렸다. 그녀는 외유내강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비유의 끝에서,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혀를 끌끌 차며 혼자 중얼거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 것이라고, 미래의 우리네 신앙상태를 내다보신 것이다. 당신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있는데, 여전히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당신의 인내를 지켜보고 계심이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물어본다. 언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냐고? 사실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아직 더 기다려야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합격하는 기준의 인내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언제 성령이 찾아올지 기다리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초조해하며 매달리지 않는다. 사실 일찍 찾아오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성령의 내주를 유지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오셨더라도 훌쩍 떠나실 것이다. 사실 이틀만 기도하지 않더라도 성령은 떠나시는 분이다. 그래서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있으며, 기도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삶의 고비에서 역풍을 만났다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기도가 막혀 기도할 마음이 전혀 없고, 기도의 기쁨이 사라진 자리에 두려움과 불안, 걱정과 염려, 분노와 짜증으로 채워져 있다면 기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습관을 들인 사람은 역경 중에도 아랑곳없이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인내심을 배우지 못했다면 삶의 역경에서 기도를 잃어버리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령께서는 인내를 몸에 새기게 될 때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기도하는 순간부터 성령은 지켜보고 계신다. 당신이 기도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찾아오실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비밀은 간절함과 끈기이다. 하나님이 일찍 찾아오시는 게 중요하지 않고, 늦게 만나는 것이 나쁘지 않다. 기도의 강을 건너려고 애쓰고 있다면 언젠가는 당신을 찾아오실 것이다. 그 때 찾아오셨을 때,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평생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훈련이 필연적인 선택이고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당신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시고 끈기를 확인하셨다면, 이 땅이나 천국에서나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