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최대의 적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바위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있다면 산에서 자라는 뽕나무를 바다에서도 자라게 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셨으며, 믿는 자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일으키는 영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교회에 오래 다녀 신앙의 연륜을 자랑하는 크리스천일지라도 그런 영적 능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회자를 포함해서 주변의 교우들도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런 영적 능력이 없더라도 안심(?)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 달라진 게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심심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성경은 세상이 없어지더라도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하였는데, 당신에게 성경에서 약속한 믿음의 증거가 없는 게 명백한데도 전혀 불안해하거나 의심치 않고 있다니, 당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뒤로 자빠지겠다.
아니라고? 예수 믿고 교회에 성실하게 다니고 있는데 왜 자신에게 믿음이 없냐고? 아, 필자는 당신에게 믿음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다고 했다고 했을 뿐이다. 사실 이 말은 필자가 한 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까 필자에게 화를 낼 게 아니라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하길 바란다. 그런데 만나는 장소가 천국문 앞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 곳에서 만난다면 믿음을 키울 만한 기회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생각하는 믿음의 잣대는 우리네 교회에서 말하는 잣대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던 가난한 과부의 비유를 마치면서, 인자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신 걸로 볼 때 말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가진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걸로 보인다. 그동안 교회의 설교시간에 담임목사에게서 주워들은 것만을 믿지 말기 바란다. 성경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지 않은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게 옳은가, 아니면 당신이 다니는 담임목사의 말이 맞는가? 잘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왜 당신에게 성경에서 원하는 믿음이 없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가? 예수님께서 하신, 믿고 구하는 것마다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씀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기도할 때마다 그 말씀을 주문처럼 외우며 기도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기도하는 모든 것이 죄다 응답받을 것으로 철썩 같이 믿고 있는가? 그렇다고? 우리끼리 얘긴데 솔직하게 말해보자. 기도할 때는 믿는 것으로 치자.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삶의 현장에서 있어도 그렇게 철썩 같이 믿어지는가? 환경은 부정적이며 암울하고 전혀 응답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은 데도, 당신의 마음이 평안하고 절대로 응답이 올 거라는 믿음이 흔들이지 않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기도할 때 목청에 힘을 주고 “미쓥니다”를 유난히 강조하며 소리 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기도할 때조차 믿어지지 않는 데, 기도를 마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믿음이 유지되겠는가? 당신에게 응답이 오지 않는 이유는,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확신이 24시간 내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언급한 신앙의 위인들과 당신의 믿음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외아들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귀에 이삭과 번제를 쓸 나무를 싣고 모리아산까지 이틀을 걸어 갔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이틀을 걸어가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니까, 아들을 죽이는 만행(?)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만약 그 믿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속내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언급을 하셨을 것이다. 역시 아브라함은 대단한 노인네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에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받은 유일한 여인이다. 다른 사람들은 요청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이 여인만은 민족이 경멸을 당하는 치욕적인 말을 들어가면서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절대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밀고 들어갔다. 당신이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을 주문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도하면 낙심할 만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이 성경의 위인들과 비교해서 형편없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당신도 잘 알고 있다. 당신은 성경의 위인들처럼 어떤 부정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직면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고 당신은 여전히 빈손인 이유이다. 안다고? 그래서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고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헌금봉투에 빳빳한 지폐를 빼곡하게 넣어서 드리기도 하고, 짐을 싸 들고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도 해보았다고?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감동시킬만한 믿음을 얻어, 기도가 응답되고 지난한 삶의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었는가?
자, 그럼 당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기도할 때는 믿음으로 열심히 요청하지만, 오직 그 때뿐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시간보다 기도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 때는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자신의 지난한 문제가 떠오르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염려와 걱정, 불안과 두려움, 의심과 짜증, 분노와 낙담이 번갈아 찾아오지 않는가?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 생각을 방치해서 머릿속이 온통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서, 기도할 마음을 잃고 실의에 빠진 채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 속에서 수도 없이 회상하며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믿음이 있는 것인가? 아니, 주실 것을 믿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 응답이 올 것인가? 기도하는 시간에는 믿음이 있었는데, 기도를 마치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이 그 믿음을 빼앗아가도록 방치하는 데, 어떻게 믿음이 유지되는가 말이다.
간절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만, 악한 영이 이 믿음을 가지고 있도록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부정적인 환경들을 만들어 이를 눈으로 보게 하거나, 부정적인 사람들을 붙여주어 그들의 말을 듣게 하거나, 부정적인 언론이나 방송을 듣거나 보게 해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넣어주는 것이다. 이처럼 악한 영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당신에게서 믿음을 빼앗아가는 공격에 선수들이다. 그들은 당신의 머리를 틈타고 들어와 부정적인 생각들을 넣어주고 믿음을 빼앗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복음을 듣자마자 마귀가 빼앗고, 환란과 박해가 오면 넘어지고, 세상의 걱정과 염려 때문에 믿음이 결실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 악한 영의 계략이고, 이들은 당신에게 온갖 부정적인 말을 듣게 하고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부정적인 생각이 당신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게 해서 믿음을 없애버린다.
그렇다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어오면 가차 없이 축출기도로 쫒아버려야 한다. 그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악한 영이 넣어주는 생각이다. 대부분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마치고 일상의 삶에서 악한 영이 넣어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방치하기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유지하려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깨어 있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이유이다. 악한 영들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은 시간에 깊고 친밀하게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고, 낮에도 기회가 나는 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고 혹독하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악한 영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차 없이 축출기도로 쫒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기도가 영적 싸움인 것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기정사실화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