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세계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알수 없다.
영적 세계는 하나님과 천사, 그리고 사탄과 귀신 등의 영적 존재가 통치하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탄과 귀신들도 자신들의 영역에서 왕으로 피지배자들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세상의 왕이나 세상의 신, 어둠의 세상 지배자이다. 그들은 놀라운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통치자나 권세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나 통치영역을 아는 것은 실로 어렵다. 왜냐면 우리는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육체의 오감을 통해서 알고 이성적인 생각의 능력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 존재나 영적 세계를 알려면 영적인 눈인 영안이 뜨여야 한다. 영안이 열렸다는 의미는 영적 존재들이 육체의 눈으로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 존재나 영적 세계를 알아채는 영적 분별력이 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나 영적 세계를 아는 기본적인 통로가 바로 성경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며 성경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크리스천조차도 거의 대부분이 성경의 내용을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성경의 내용을 놀라워하고 있지만, 예전에 일어난 사건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면 그들이 영적 존재를 체험하며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능력이 없다면 영적 세계를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이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천사나 사탄, 귀신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 영적 세계에는 이들 영적 존재들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영적 존재들에 무지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는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못 읽었다는 말처럼 우스꽝스러운 날이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서 읽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뿐이다.
우리네 교인들이 영적 존재에 무지한 이유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려하기 때문이다. 이성적리고 합리적인 방식은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상의 학교에서 이런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알고 판단하는 방식을 배웠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도 이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상식적이며 현학적인 설교를 즐겨들으며, 기복신앙을 추구하거나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나 인기강사들의 설교는 현학적이고 상식적인 설교이다. 그래서 그들의 설교를 들으면 해박한 성경지식에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주기에 지극히 만족스럽다. 그래서 그들의 설교가 마음에 와 닿고 감동이 되며 은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밝히는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은 기적과 이적이다. 이런 방식은 전혀 상식적이지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4:3~5)
위의 말씀을 보자.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편애하시고 있다. 전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상품으로 제물을 바쳤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그 이유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들의 성품을 이미 읽고 계셨겠지만, 성경에서 밝힌 사건만을 통해서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면 사람들은 영적인 책인 성경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복신앙도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축복의 방식이다. 희생의 강도를 더하면 더할수록 더 큰 축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이는 무당들이 말하는 축복의 방식이지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다. 하나님은 희생의 강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내나 목적,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보고 계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헌금을 많이 드리며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믿음의 유무와 과다를 측정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요구하는 종교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여 헌금을 넘치게 드리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면, 스스로 지극히 만족해하며 자타가 믿음이 좋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율법주의자들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방식인 영적인 신앙방식과 배치되는 것이다. 미혹의 영은 자신의 판단과 이성적인 사고방식이 옳다고 하며 믿으라고 부추긴다. 그러면서 미혹의 영은 사람의 머리를 타고 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다. 그래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적 세계를 알지도 못하고 영적 능력도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를 알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영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적인 사고체계를 가지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는 물론 영혼과 마음까지 지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안을 열어주셔야, 비로소 영적 존재를 깨닫고 영적 세계에 대해 알게 되며 영적 능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이 무엇인가? 바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와서,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네 교회에서 하는 기도와 성경공부와는 다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구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회개와 감사, 경배와 찬양을 하는 기도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통해 성령이 들어오셔야 비로소, 성령을 읽을 때 지식으로 머리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비추어주셔서 깨달음으로 가슴에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교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오랜 교회의 관행으로 이어온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는 종교적인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목회자들도 자신들이 종교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은 하나님만을 지식으로만 알뿐 다른 영적 존재들인 천사와 사탄, 귀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며,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말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 자기만족과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혼이 가야할 종착역은 지옥불이 명약관화하다. 그들은 영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의 힘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더 믿었기에 미혹의 영에게 속아서 귀신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귀신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무섭고 떨리는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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