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지혜를 얻는 법
전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지혜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대자연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지혜이며 성경에 무려 500번이 넘게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일천번제의 기도 끝에 꿈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조차 역사상 최고의 지혜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놀라운 통찰력이 번득이는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를 지었고 막대한 부와 최고의 권력, 빛나는 명예를 가지고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지혜는 누구나 얻고 싶은 능력이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혜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주제로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혜를 소원하고는 있지만 지혜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얻는 방법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놀라운 지혜만 있다면 학생은 소망하는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기쁨을 맛볼 것이며, 사업가는 성공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고소득을 얻을 것이고, 목회자는 풍성한 열매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으로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간절하고 끈기 있게 요청하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 이니라
잠언은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한마디로 간절히 찾고 구할 것을 말하고 있다. 간절히 찾고 구하는 것은 지혜를 얻는 방법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렘 29:13) 이는 지혜와 하나님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 보인다. 사실 지혜는 성령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다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일 게다. 필자가 크리스천 재정 관리와 라이프 코칭사역을 시작하고 기도마다 빠뜨리지 않은 것은 지혜를 구하는 일이었다. 이 사역은 필자가 외국에 가서 배워온 것도 아니고 선구자가 미개척분야를 개척하고 길을 닦아놓아서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분야였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게다가 방송국이나 포털사이트에 상담게시판을 열어놓았기에 문의에 대한 답변을 신속하게 해주어야했다. 그 게시판은 인터넷의 공개게시판이었기에 클릭만 하면 필자의 답변들을 전 세계에서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답변한 내용들은 사이트가 존속하는 한 아주 오랫동안 올려져있을 것이다. 특히 돈에 대한 상담이라 잘못하면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을 것이기에 더욱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그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에 대한 갈급함이 심했다. 그래서 필자는 기도할 때마다 지혜를 간절히 구하고 요청했다. 그 기도는 10여년이 가까운 지금도 계속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하나님께서 엄청난 지혜를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남들은 하나도 쉽지 않은 전문사역분야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으며, 그 전에는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없어 일기조차 제대로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일 년에 3권정도의 책 쓰기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천 건의 상담을 큰 무리 없이 나름대로 해낸 것을 보아 그렇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신 분이지만 크리스천인 우리조차 하나님으로부터 얻기보다 사람들과 세상에서 구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학생들을 만나면 공부의 비법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간절히 구하라고 일러주지만 학생들은 유명참고서나 학원의 스타강사의 지도능력에 더 의지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이해력이나 집중력이 높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좋은 교사와 학습서를 구하기 이전에 지혜로워져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명문대학의 합격을 위한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정작 지혜의 보고(寶庫)인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일에는 소홀하다. 지혜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사업가라면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아이디어가 돈을 벌어준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창의력에서 나오며 창의력은 지혜의 한부분에 불과하다. 빌게이츠는 놀라운 아이디어로 PC운영체계인 윈도우를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차려 40대에 이미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검색엔진인 구글을 개발한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의 새파란 대학원생이었던 페이지와 브린이었다. 진정한 사업가라면 이처럼 지혜가 주는 놀라운 비전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학생들도, 사업가들도 자신의 소원을 요청하는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정작 지혜를 구하는 기도에 대해 무지하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셨지만, 우리는 믿어지지 않기에 간절하고 끈기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한다. 물론 평소에 쉼 없는 기도의 훈련으로 습관을 들이지 못한 탓에 결심을 하더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간절히 지혜를 요청하는 기도를 몇 년이고 쉬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견고한 믿음과 간절한 기도는 필연적인 관계이며 어느 하나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혜를 얻는 간절한 기도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 지혜를 말하는 성경의 원칙들을 마음에 새겨라.
성경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주제로 한 내용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의 원칙들이 세세하게 기록된 책이기도 하다. 이웃과의 대인관계, 자녀의 교육, 직장의 상사나 부하직원을 대하는 원칙, 부부가 잘 사는 법, 돈을 벌고 쓰는 원칙, 질병을 고치는 방법, 술을 대하는 자세, 성숙한 신앙생활, 성공적인 사업의 원칙, 삶의 재앙을 피하는 법, 이혼, 재테크, 건강의 비결, 노후대책, 배우자를 고르는 법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기에 의무적인 태도로 형식적으로 읽는다면 결코 밝혀낼 수 없거나 일부의 내용을 가지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원칙을 깨닫고 삶에 적용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지혜서라고 일컬어지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 등에서 밝힌 하나님의 원칙들을 읽고 묵상하여 깨달음을 얻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성경의 원칙들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 올곧게 적용하려면 세세한 원칙들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복종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잠언에서는 이를 두고 경외(敬畏)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두려워하여 기꺼이 그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를 말한다. 물론 그 두려움이란 신체의 위협을 당할지 모르는 본능적인 공포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앞에 한없이 약한 인간들이 느끼는 절대공포이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생산적이고 자발적인 두려움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깊이 신뢰할 수 없기에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수용하거나 신뢰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적지 않은 고통이 수반되는 명령이나 소중한 재산을 포기하는 등의 손해를 입는 일이라면 따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칙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성현의 교훈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절대자의 명령으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좋은 운동선수로 성장하려면 세밀한 기술을 익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체력과 유연성, 순발력, 근성 등의 기본적인 재능이나 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삶의 원칙을 깨우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세한 정보나 지식을 알기이전에 깨끗하고 따뜻한 성품, 견고한 믿음, 경건의 습관을 통한 깊고 친밀한 기도, 지속적인 성령 충만 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부에 그치는 내용에 연연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가지고 나서 세밀한 원칙들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능력으로 점점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성경을 꾸준하게 읽고 묵상하는 습관이 필요하며 일상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도 필요하다. 이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교를 오래 들어서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과 깨달음이 필요하기에 정독하여 읽는 습관이 배어있어야 가능하다.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성경은 지혜를 캐내는 보물창고임에 틀림없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캐어내 자신의 금고에 넣어두어야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이를 모르는 크리스천을 없겠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위의 성경말씀처럼, 얻는 이는 드물지만 엄청나게 소유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빈곤한 열매만을 소유하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으로 깨닫는 자만이 이를 얻으려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붇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어디서 얻는 지를 잘 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더욱 지혜로워지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는 지혜를 얻는 방법을 모르기에 나이가 먹어도 미련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혜의 보고(寶庫)를 늘 책상위에 모셔두고 캐낼 생각이 없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 끊임없이 지식과 경험을 쌓아라.
학생이 지혜를 발휘하는 곳은 인터넷게임이나 취미생활에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과목에서이다. 수학이나 영어, 국어 등을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에 주로 출제되는 문제의 유형을 잘 알고 충분히 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축구를 잘 하는 선수가 그 능력을 보여주는 곳은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에서이다. 공도 잘 차야겠지만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성과 야유가 주는 심적인 압박도 이겨내야 하고 심판이 취향, 그리고 경기규칙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또한 축구는 단체경기이므로 동료들과 호흡이 잘 맞아야 되고 감독이 주문하는 전술을 잘 이해하고 경기에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공만 잘 다룬다고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 총명과 지식, 통찰력, 분별력이 뛰어나고 성경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만 집어놓고 있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서 발휘해야 빛이 나는 법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법과 금융환경, 각종제도, 회사, 사업체, 고객의 취향, 문화, 노동시장, 사람들의 사고방식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지혜를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잠 22:29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현대사회는 복잡다단한 세상이다. 이백여년 전의 조선시대보다 직업의 수가 수천배로 늘었으며 지금도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한 세대 전에는 100년이 흘러야 가능한 변화가 지금은 5년만이 바뀌고 있다. 예전의 지식이나 경험은 이제 쓸모가 없다.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늘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지혜의 대명사라고 일컬어지는 솔로몬은 다양한 분야에 출중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시대에 다시 돌아온다면 변화의 속도감에 손을 내두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방면에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질 수가 없다. 자신의 분야만을 정해서 그 분야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 전문가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일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루에 3시간을 투입한다면 10년이 걸려야 하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지식과 경험은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금방 얻을 수 있다.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나타내려면 장인의 반열에 올라서야 한다. 이는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해야 가능한 일이다.
현시대는 보통수준의 지혜나 지식을 가지고는 성공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4년간 배웠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나오면 이미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하며, 전문가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배우고 익히는 노력을 하여야 겨우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에 비해 특별한 비결을 가지고 있다. 남다른 지혜와 총명과 통찰력과 분별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해도 남다른 집중력과 이해력, 창의력으로 탁월한 성적을 거둘 수 있고,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서도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두각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변화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주도하며 변화를 이끄는 리더임에 틀림없다.
- 지혜를 원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한다.
무릇 대학입시를 앞둔 고3이라면 성적을 쑥쑥 올릴 수 있는 지혜를 간절히 소원할 것이고,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교사와 교수, 연구원들도 남다른 지혜가 누구보다 필요하다. 요즈음은 사업의 세계도 자본으로만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 탁월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첨단기술이 접목이 된 상품이어야만 고객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그렇다면 사업가들은 누구보다 지혜를 갈급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처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지혜를 받아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이는 드물다. 성경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문을 두드리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이 약속의 수혜자는 많지 않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것이라는 설교를 숱하게 듣는다. 물론 약속의 말씀들을 성경의 근거로 내세우며 꼭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잘 아는 우리들은, 이 약속이 속히 실현될 것을 기대하며 간절히 요청하며 기도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기도응답의 대부분은 지지부진하며 우리를 실망시키기 일쑤이다. 그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대부분이서이다. 어렵사리 지혜의 귀중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할지라도 받아 누리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혜를 원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따져보는 일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에 합격할만한 성적을 올리는데 필요한 지혜를 원하는 고3이라면 대학을 나와 고소득을 얻는 직장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는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속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지식이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자가 되거나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실 것이다. 막대한 돈을 벌기위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사업가의 기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으로 돈을 많이 번다면 엄청난 헌금은 물론이고 교회도 많이 지을 것이라는 다짐을 덧붙이겠지만, 이는 감사의 표시로 하는 행위이고 사업에 성공하려는 가장 큰 속내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면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요청하라고 말씀하셨지 부자가 되기를 기도하라고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은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가버리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지혜를 요청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한다. 말뿐이 아니라 진정한 속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지 생계비를 얻는 데 필요한 목적이라도 하나님은 흔쾌히 들어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탐욕에 휩쓸리지 않고 절제와 자족의 성품이 몸에 밴 상태에서 꼭 필요한 생계비를 원하는 요청이라야 들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차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신다. 그래서 생계비에 사용하고도 남는 재물을 선교와 구제 등의 의로운 열매를 맺는 일에 흔쾌히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더 많은 재물을 맡겨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눈앞에 두면 초심을 잃어버리고 탐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혜는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건의 훈련으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사용되는 종으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솔로몬이 얻었던 지혜에 못지않은 탁월한 능력을 얻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 하나님과 동행하는 습관을 들여라.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의 놀라운 능력을 말하고 있지만, 일상의 삶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어렵다. 동행이라는 말은 함께 지낸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에녹은 일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다고 하며(창5:24),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의 노예로 팔렸지만 일약 국무총리로 오른 요셉도 하나님과 늘 동행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창39:2) 요셉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 것도 지혜로워져서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해몽하는 능력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빛나는 지혜를 얻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자. 필자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이루고 싶은 주요한 목표였기에 오랫동안 꿈꾸어오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란 하나님으로 가득 찬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깊은 기도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하나님과 조용한 교제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상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기도를 시도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며 찬양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미친 삶 그 자체이다. 필자는 이 같은 기도의 상태를 쉼 없는 기도로 이름 지었다. 바울이 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에서 따왔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삶에 올곧게 적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인생의 목표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관념적인 생각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끗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그 증거이다.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겠지만 이를 누리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눈만 뜨면 보이는 세상의 즐거움과 본능적인 탐욕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다스리고 지배하는 나라가 자신 안에 임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늘 벌어지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증거이며 육체의 욕심이 죽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거침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말은 쉽고 아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매일매일 삶에서 실천하는 일은 실로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경건의 훈련을 통해 경건의 습관이 몸에 배야 하며,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또한 세상에서 얻고 싶은 각종 목록보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소망으로 대신 채워져 있어야 한다. 세상과 세상의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영적으로 민감해야하며 영적인 능력을 얻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열매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 열매를 얻기 위해 경건의 습관을 들이고 유지하는 힘든 노력을 회피하기에 이를 얻는 이가 드문 까닭이다. 그래서 생명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그 길을 가는 이는 적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빛나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귀중함을 깨달았다면 벌써 절반은 얻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능력을 알고 계시기에 애쓰는 모습만 보여고 불쌍히 여겨 넘치도록 채워주실 분이다. 그렇다면 성에 차지는 않더라도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