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임상심리학회 가을 학술대회
어제 그리고 오늘 킨텍스에서 열린 임상심리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제가 이번에 쓴 논문 주제인 심상재구성(imagery rescripting)으로 발표하는 연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푼 기대를 안고 달려갔죠.
강연자는 고려대 임상심리lab 박사인 안정광 임상심리전문가인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이하 전문적인 내용이니 skip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저야 이론적 검토와 연구 진행 다 포함해 봤자 1년 반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씨름했고, 안정광 선생님은 본인 언급에 따르면 5년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지속해 온 것 같습니다.
심상재구성을 통한 실제 치료 경험이 많은 분이었고, 그래서인지 강의에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치료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본 사람만이 언급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알짜배기였습니다. 그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심상재구성 과정은 고통스러운 초기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정서를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심상을 통한 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생각만이 아니라 감정을 올라오게 만드는 것과 연관 있습니다.
석사생으로서 치료 연구 진행할 때, 상담의 기본인(!) 티슈 챙기는 것을 잊어서, 내담자가 울 때 급하게 상담실 문 밖에 있던 연구실에 가서 티슈를 챙겨와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연자가 '티슈는 내담자 손에 닿는 곳에 꼭 두라'고 말할 때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맞아. 그렇지..' 혼자 맞장구 쳤습니다.
둘째, 심상재구성 1단계에서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 할 정도로 사건을 짧게 떠올리는 내담자가 있게 마련인데,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연자가 '슬로우비디오' 테크닉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1단계의 핵심이 고통스러운 초기 기억을 심상화하는 과정에서의 감정 경험에 있기 때문에 비디오를 천천히 돌리는 것처럼 그 사건을 심상화해서 감정 경험할 수 있게 내담자를 도우라는 말이었습니다.
셋째, 심상재구성 2단계는 성인인 내가 과거의 나에게로 가 당시엔 하지 못 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어떤 도움을 과거의 나에게 주는 과정입니다. 괴롭힘 당해 울고 있는 과거의 나를 안아줄 수 있고, 연자가 말했듯이 분식점 데리고 가서 떡볶이를 사줄 수도 있죠(글로 전달이 잘 안 되지만 이 대목을 참 유머러스하게 말했는데, 이런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연자의 능력이 부러웠습니다).
2단계에서 제가 힘들었던 부분은 '지금의 나 역시 그 때의 나처럼 무력한 사람이라 뭘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는 것입니다. 증상의 심도가 깊을수록 이런 얘기할 가능성이 높았죠. 이럴 때 치료자가 건강한 성인 모드로서 가이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알고 있었는데, 연자는 '자발성'을 강조했습니다(단, 성격장애는 가이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연자도 치료자로서 당연히 경험했을 것이고, 그럴 때 치료자가 개입하여 '유도'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자발적으로 성인인 내가 과거의 나를 돕거나 연민어린 눈으로 쳐다보지 못 한다면 일단 넘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그럴 힘이 생기지 않은 것이니 나중에 다시 다루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다시금 무릎을 쳤습니다. 수긍이 됐죠. 상담자에 의해 유도된 개입을 내담자가 내면화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나중에 다시 다뤄도 잘 안 되면, '상담자인 나라면 이렇게 어린 나에게 해줬을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떤지?'라고 물어볼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게 정말 치료 노하우죠!
넷째, 3단계에서 다시 과거의 나의 눈으로 성인인 내가 하는 개입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뭐든지 가능하다, 심지어 심상 속에서 가해자를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은 새롭게 배운 사실입니다. 이런 얘기는 심상재구성을 개발한 이들의 논문이나 책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 방식도 괜찮은 이유는, 이런 폭력적 개입을 심상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담자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내담자 스스로가 그런 폭력적인 방식의 심상화를 통해서는 해소되는 느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재시도하게 마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그런 폭력적 방식을 사용하고 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는 것이죠. 강의 들을 당시 자세한 설명을 제가 놓친 것 같지만,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다면 다른 개입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도로 보다 온건한 방식의 개입을 치료자가 유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다고 해서 내담자의 자발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 치료를 통해 뭘 깨닫게 됐는지 물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수 있겠다' 뭐 이런 류의 decentering이 이루어지죠. 심상재구성을 통해 보다 넓은 맥락 속에서 과거 경험을 위치시킬 수 있게 되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기억으로 인한 고통감에서의 감소가 나타나게 되죠. 저는 심상재구성이 끝나고 특별히 뭘 깨닫게 됐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 이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된다면 물어보려 합니다. decentering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치료를 더 해야 한다는 지표로 삼을 수 있겠네요.
이 자리를 빌려서나마 치료 노하우 공개해 주신 안정광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거의 매년 가는 학술대회지만 만족스러웠던 적이 적습니다. 올해도 금요일에 제가 들은 어떤 워크샵은..(생략합니다..) 이렇게 명강의는 앞으로도 손에 꼽을 것 같네요.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자기 자리에서 열일하고 있는 대학원 동기와 모처럼 만나 회포도 풀고 여러모로 환기가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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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재구성 흥미롭네요.
ㅋ 저 6년 전에 임상심리학회에서 생수 나눠주던 기억이 있어요 ㅋㅋㅋ (기업 홍보치) 그래도 끝나고 강연을 세 개 정도 들었었는데 한 강의는 너무 좋았고 두 강의는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죠. 맘에 드는 강연과 만나는 것도 기쁨이죠.! 곧 slowdive님도 강연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ㅎㅎ
와.. 임상심리학회와 인연이 있으셨군요. 역시 세상이 참 좁습니다. 맘에 드는 강연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잘하는 분야가 생기면 학회에서 발표도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