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마약으로 인한 해고는 실업급여를 못받는다...'눈땀'을 흘렸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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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11일 (월) 마약일기

고용노동센터를 방문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이젠 진짜 직장을 잃은 게 체감이 난다. 안내자가 아침 9시까지 오라길래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하는 직장인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뒤척인다. 나는 더이상 바쁘지 않다. 바쁘고 싶은 희망을 거절당했다. 끝없이 비참해진다기보다는, 의외로 담담하다. 비참함을 느낄 겨를도 없다. 그저 어떻게든 생존해야 한다.

“음. 아....”

담당관은 해고통보서 등이 동봉된 내 서류를 받아보더니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꼼지락 거리면서 침을 삼켰다. 담당관이 고민을 마친 듯 입을 열었다.

“고용노동법상 사회질서 유지 관련 조항같은 게 있는데요.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신 거면 실업급여 지급 대상이 안되실 수도 있어요.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 회사 쪽은 주장한 상태이고. 하지만 저도 이런 사례는 처음 만나봐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 이 정도의 상담은 어느 정도 각오했던 것이라, 나도 항변을 시작했다.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한 노동자가 모두 해고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일종의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런데 고용노동법의 실업급여 조항이 회사 편만 들면 어떡하나요. 그건 급작스런 해고노동자의 생계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법 아닙니까? 마약때문에 해고되면 생계를 위협받아도 된다는 건가요?”

그는 대답대신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주었다.

“(우울증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봐요. 차라리 전직을 하시지.”

그럴걸 그랬나. 나도 좀 중간에 쉬고 싶었다. 간절했다. 하지만 동시에 취재하는 것마다 적잖은 성과와 반향을 일으켰다. 보람을 느꼈다. 우울증은 업무 스트레스라기보다는 회사 내에서 풀지 못한 복잡한 인간 관계들 때문에 발생한 병이다. 회사를 그만 두는 게 과연 최선일까. 일하는 건 즐거운데. 갈피를 못잡고 일단 약으로 버텼다. 문제를 방치하다 사고를 치고 말았다. 후배들에게 절대 나처럼 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 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오는 길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설사 거절당하더라도 신청절차라도 밟고, 국가의 판단이라도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부디 잘 판단해주십시오. 회사가 저 때문에 막대한 경영상 손실을 입었다는 것도 수치상 증명되지 않습니다.”

직원은 역시 약간 동문서답 식의 위로만 건넸다.

“다른 회사를 들어가보신 뒤 다시 해고되시면, 한겨레 재직하셨던 기간의 고용보험 기간이 모두 인정되고 실업급여도 받으실 수 있기는 해요.”

아이고. 나더러 어디를 재취업하라는 건가. 이 정신에, 이 상황에. 아직 나는 재판도 안받은 상태다. 누가 나를 취업시켜주겠나. 위로를 해주는 건 고맙지만, 되레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온다.

그래. 한겨레는 나를 해고할 수 있다 치자. 그런데 국가마저 왜 회사 편이라는 건가. 실업급여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고용노동법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자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 아닌가. 실업급여를 대체 왜 만든건가. 국가가 나를 ‘가난의 절벽’으로 떠미는 느낌이다. 만약 거부당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해야겠다.

실업급여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신청 첫날 2시간짜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차피 나는 신청해도 안될거 같다니 그냥 교육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담당관은 “검찰이 기소유예를 한다든지 재판에서 벌금형 정도로 가볍게 나오면 혹시 모르니까 그때 가서 다시 신청해보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벌써 점심 때다. 배가 고프다. 고용노동지원센터는 구로디지털역 근처에 있었다. 마침 그 주변에는 내가 자주 가던 18000원 짜리 초밥 뷔페집이 있었다. 잠시 그 가게의 간판을 바라보다가 김밥천국으로 발길을 올겼다. 6000원짜리 제육덮밥을 시켰다. 세상에. 가장 싼 밥이 6000원이라니.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다. 지금은 하루에 6000원도 벌지 못하는데 밥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배고픔을 느끼는 내가 원망스럽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원래 이마에서 땀이 나는 거 아니었나. 왜 눈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거지. 흘러내리는 '눈땀' 때문에 밥 먹는 내내 곤욕스러웠다. 내 앞에 놓인 버얼건 색깔의 제육덮밥이 다 사라질 때까지. 난 울은 게 아니라, 매운 것을 먹은 것 뿐이다. 약해지지 말자. 부모님을 끝까지 지켜드려야 한다. 다시 길을 나섰다. 갈 곳이 없다. 바쁜 사람인 척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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