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처럼] 배운대로 행할 뿐, 핀란드 사우나 / 비어 있어 여유로운 FINLAND

in #finland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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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은 때에 돌아다니다 보면 훌떡 벗고 누워 있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분명 사우나 할 때 다 벗고 할 거란 말이다.

핀란드를 여행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대체로 감상하게 되는 영화가 <카모메 식당>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특히나 주인공이 즐겨 찾는 수영장에 매우 가 보고 싶었다.

수영을 좋아하기도 하고 북유럽의 맑은 물(왠지 맑을 것 같단 말이다)이 가득 차있는 수영장에 대한 기 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르 욘 카투 대중 수영장은 사우나와 수영장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욱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스텔의 데스크 언니에게 정보를 구해보았더니 이럴 수가! 5월 28일부터 8월 2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여름에 누가 실내에서 수영을 하겠느냐며, 모두가 바다나 호수로 간다는 것이다.

외투안에 깔깔이를 겹쳐 입고 그 말을 들으니 저절로 닭살이 돋아났다. 이 서늘한 기온에....
암튼 한국 사람은 동남아가 아니고서야 어딜 가든 뭔가 춥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핀란드는 사우나의 나라다. 그리고 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나체로 사우나를 한다. 분명 남녀가 뒤섞여있는 젊은 한 무리가 다 벗은 채 사우나를 하고 호수에 첨벙 뛰어들고 또다시 사우나를 하면서 나체인 그대로 인터뷰를 하는 광경을 다큐멘터리에서 똑똑히 보았다. 지금 다시보기를 보아도 그 장면은 당당히 나온다.

남녀 구분만 되어 있다면야 비슷하게 생긴몸을 보고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도 익숙한 터, 호스텔에 사우나가 갖추어져 있기에 냉큼 이용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핀란드까지 갔는데 그들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사우나를 한 번쯤은 체험해 보아야 하니까. 그래서 아침 일찍 부지런히 일어나서 약간의 설렘을 안고 사우나에 가보았 는데(물론 배운 대로 나체인 상태로), 문을 슬쩍 여는 순간 일제히 빛을 발하는 20알 정도의 눈동자에 흠칫 놀랐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외국인 투숙객인 그녀들은 모두 비키니나 샤워타월을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수세미양은 잠시 혼란에 빠져 샤워장을 서성이다가 일단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샤워를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실로 대담한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비키니도 챙겨오지 않았고 샤워타월도 챙겨 오지 않았는데 다시 방으로 가서 준비를 해오는 것은 상당히 귀찮을 뿐더러 부자연스러우니 그냥 대뜸 들어가버리자고.

두어 명의 아가씨가 사우나실에서 나와 자리가 생겼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짐짓 부끄럽지 않은 척하며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우리도, 그들도 서로를 보지않았다. 그저 뜨거운 공기와 나무향을 맡으며 앞의 벽을 보고 조용히 앉아있을뿐. 그 시간은 말하자면... 서로다른 상황에 처한 존재가 내뿜는, 몸의 부끄러운 에너지를 심도 있게 느껴보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나체 라이프를 즐기는 해리가 그 날도 아무렇지 않게 맨몸으로 앉아신문을 보는데, 그 헐벗은 엉덩이를 들여놓은 곳은 샬롯이 매우 아끼는 흰색 소파.... 매사에 깔끔하고 새침때기인 샬롯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교양 있게 해쳐나갈지 고민한다. 둘 사이에 몇 마디의 어긋나는 대화가 오가고... 샬롯은 친구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오래전 봤던 것이라 자세한 것 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체로 이런 느낌의 이야기였고 나도 보면서 ‘으... 해리 가 좀 너무했다’ 했던 기억이 있다. 집 전체가 사우나도 아니고 말이다.

해리와 흰 소파 생각을 계속 했다.
시종일관 당당하게 ‘나는 배운 대로 행할 뿐이다’라고 생각 하려 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용감무쌍 자신만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리와 흰 소파 생각을 정말이지 계속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앉은 곳은 흰색 소파도 아니었는데.... 나는 해리가 된 것이었다.

잠시 후끈한 공기를 쐰 후 우리는 말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여행책자를 찾아보니 샤워타월 정도는 깔고 앉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쓰여 있다. 젠장 젠장!!!

  • 그간, 핀란드의 문화가 바뀌었던지(무슨 문화가 그렇게 빨리...)
  • 호스텔의 특성상 절대다수의 외국인들이 이용하므로 서로의 부끄러움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던지(해변에서는 잘도 훌떡훌떡 벗으면서)
  • 아니면 내가 꿈에서 별 희한한 타큐멘터리를 찍었던지(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상세하잖아)

셋 중 하나일텐데 셋 다 그다지 재미없는 현상입니다. 흥!


Yrjönkatu Indoor Swimming Pool 유르욘카투 수영장

Add :: Yrjönkatu 21, 00120 Helsinki, Suomi
Tel :: 358 (9) 31087401
Tip :: 성별에 따라 입장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으며,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다면 수영장에서도 수영복을 꼭 입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을 닫는 시기가 있으니 정보를 미리 확인할 것.


FINLAND

비어 있어 여유로운

북유럽처럼


본 포스팅은 2013년 출판된 북유럽처럼(절판)의 작가 중 한 명이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