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천]대부1 - 지키려면 죽여야 한다. 이미 죽였으니까
갑자기 대부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영화이길래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으로 칭송 받는지,
갱스터 이야기가 그런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대부1~3편에 이르는 God father 시리즈를 모두 시청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는 갱스터 영화가 아니라, 갱스터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을 통해 세상에 대한 철학을 전달하는 영화라는 것을.
특히나 대부 1편을 보고 후편에 나올 이미지와 주제의식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부라는 영화가 가진 힘을 느꼈다.
이 리뷰를 시리즈별로 나눠 쓰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흔히들 대부1을 최고의 대부시리즈라고 말한다.
대부1이 가지고 있는 묵직한 감성과 액션 그리고 무엇보다 말론 브란도의 후광이
만드는 카리스마적 아우라에 기인한 점이 클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대부1~3편까지 보고나서야 전달 될 수 있다고 본다.
#대부1 - 지키려면 죽여야 한다. 이미 죽였으므로.
영화는 처음 말론 브란도의 딸이자 알파치노의 여동생 코니의 결혼식을 보여준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각자의 고민을 안고 알파치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한다.
대부는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그들에게서 패밀리라는 이름아래 가장에 대한 존경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작게는 콜레오네 가문에서 크게는 미국 내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라는 공동체로
스스로를 결속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대부의 가장 큰 동기는 가족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도울 이탈리아인들을 결집한다. 반면 그 결집을 와해시키거나
비합리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제거한다. 실로 단순한 논리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를 타락시킬 수 있는 마약을 거부했고, 매춘이나 도박이라는 생활과 어느정도
공존할 수 있는 죄악에 기대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가족을 유지해가려 했던 것이다.
즉,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가 가장 큰 기저에 자리잡고 있기에
도박이나 매춘이라는 커뮤니티내의 죄악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도
동시에 살인이라는 대외 집단으로 향하는 불법이자 죄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신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인데 그들에게는 그만한 정당방위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칠리아의 역사적 배경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황량한 스페인 느낌의 사막과 공존하는 시칠리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이태리 남부에 위치한 섬이다.
이태리가 수많은 도시국가가 통합한 국가이고 일찍이 안정 된 사회가 자리잡은 밀라노나 베니치아 로마 등의 도시
국가와 달리, 시칠리는 무역의 주요 교통로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수많은 외침을 겪어왔다.
그리고 이태리 통일 후에도 한동안 무정부 상태로 방치되었기에 시칠리를 지배한 것은 제도화 된 국가가 아니라
총과 폭력으로 시민을 지배했던 폭련단 즉, 마피아였다.
무솔리니가 이후 군대를 이끌고 대부분의 마피아를 사살하거나 감금하기 전까지도
그런 무정부적인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시칠리아를 탈출해서 이민자 사회를 건설한 이태리인들에게는 외부적 폭력에 대항하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가 바로 폭력을 압도하는 폭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콜레오네 패밀리의 폭력은 바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 공격이자 방어인 셈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폭력은 2번의 계기를 통해 심화된다.
바로 첫번 째는 대부이자 가장인 비토 콜리오네의 피습이고 두번 째는 가문의 큰형 소니 콜리오네의 죽음이다.
1편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두번의 격정적인 폭력앞에서
보호본능을 가장 가슴깊이 새기고 느끼는 것이 바로 마이클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가장 사랑했고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형을 가장 신뢰했던 마이클
그가 남은 대부시리즈에서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특히 전쟁을 겪은 군인이었기에 복수와 폭력 앞에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회의감이
그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다.
사실 이 두 폭력의 계기를 보여주기 위해 진행되는 총격전과 숨막히는 암살작전은 영화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연결고리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변화이다.
흔히 우리가 화를 내거나 싸움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번 까지는 참는다... 1번만 더 건드리면... 내욕은 참아도 부모님 욕을 하면...죽여..버린다.."
모두가 수없이 이런 이성의 마지노선 을 되뇌이며 스스로를 컨트롤 한다.
마이클은 이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과 관성을 가진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1편은 이 막내아들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변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다혈질 큰형 소심한 작은형이 아닌 이성적인 마이클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게 재밌으니까..
첫 번째 분노의 계기(대부의피습)를 통해 마이클은 이탈리아계 이민자 사회와 아버지를 위협한
뉴욕경찰청장과 마약판매상을 처단한다.
이후 시칠리로 떠나 잠적생활을 하며 아폴로니아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여기서 폭력에 대한 관성에서 벗어날 기회가 마이클에게는 한 번 주어진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패밀리의 안정이 찾아들었다면 분명 그는 일상적인 삶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큰 형이 죽임을 당하고 이후 아무 죄도 없는 아폴로니아가 믿었던 경호원의 테러로 인해 산산히 찢겨 죽는다.
핵심은 큰 형의 죽임이 아니다.
바로 아폴로니아라는 무고하고 힘 없는 여인이 폭력의 관성앞에 죽었다는 것.
폭력이 폭력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마이클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폭력을 수행하는 자들 사이의 문제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영화 후반의 한 여인의 죽음으로 무너지고 마이클이 선택한 것은
폭력의 가능성을 일소하는 철저한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완성해 낸 합법적인 권력이다.
합법적인 권력앞에서는 더 이상 비합법적인 폭력은 필요 없어 질테니까.
그럼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그냥 사업이고 뭐고 정리하고 평화롭게 살면 안되나?"
하지만 우리는 복수라는 메커니즘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잊으면 안된다.
세상을 사는 우리조차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에게는 복수의 의지를 꺽는다.
근데 그런 강자가 어느 순간 권력을 잃는다면?
그리고 그 복수라는 것이 내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게 만들었다는 동력에 기인한다면?
사실 마이클이 누군가를 죽인 순간부터 아니... 콜레오네 패밀리가 적들의 붉은 피위에 권력과 부를 쌓아간 순간부터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더욱 강해지는 것 뿐이다. 죽인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복수의 생리이므로.
평범한 삶을 선택한 다는 것은 복수의 의지를 꺾은 적들에게
다시금 복수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단순히 한 두명의 죽음이 아닌 무고한 나의 가족과
모든 패밀리의 철저한 파멸로 귀결되리라는 것은 마이클과 말론 브란도는 알고 있던 것이다.
여기까지 당신이 대부1을 이해했다면, 대부2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너무나 울림있게 다가올 것이다.
바로 '사랑을 지키기위해 폭력을 압도하는 철저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