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우선 순위

분명하게 은행 창구에 앉은 앞 사람이 끝나면 내 차례인데, 내가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내 은행 업무 순서가 뒤로 밀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엷은 베이지색 양복에 감색 운동화를 신은,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느닷없이 나타나 직원 없는 창구에 앉아 아무도 없냐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니, 은행 창구 안쪽 가운데 책상에 앉아 있던 은행 직원이 냅다 달려와 무슨 일이냐며 허리를 굽히며 마주 앉아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안 들을려야 안 들을 수 없는 목소리는 "무슨 세금이 2천만 원이 넘어?" 이런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방문한 농협은행을 주거래로 하는 아저씨인가 보다. 8월에 내도 되는 세금 2천여만 원을 지금 낸다고 깍아주나 하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보아하니 개인 종합소득세를 내려고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세무사가 '약간 납부 있어요. 기한은 8월 말까지이므로 잊지 말고 납부하세요' 라는 메일을 내게 보냈었는데, 내가 받은 고지서보다 백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금액이다. 소득이 높으신 분인가 보다.

5만 원짜리를 두둑하게 들고 와서 세금을 낸다며 5만 원짜리를 한 뭉치 현금 인출기에서 뽑아와 좀 전에 허리를 굽신거렸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직원에게 내밀었고, 그 직원은 빳빳한 일만원짜리와 5만원짜리 그러니까 신권으로 잔돈을 챙겨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챙겨주었다.

그래도 은행 업무는 번호표 순인데, 나보다 늦게 와놓고 먼저 일을 보다니. 나보다 나이 든 아저씨는 괜히 '난데 말이야'하는 거들먹거리고 싶은 마음이 있을테니그렇다고 치고 전혀 미안함 없이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돈 많아 보이는 아저씨를 응대하는 은행 직원이 괘씸해서 괜히 창구 앞에 가서 한마디 했다. "제 순서 아직 멀었나요?" 마음으로는 나도 너네 고객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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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지인이라며 수술 날짜 당겨달라, 외래 진료 당겨달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이 좀 있는 편이다. 의외로 가족들은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을 잘 하지 않는데 말이다. 앞으로 지인들 부탁은 되도록 눈에 안 띄게 혹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나는 이제 현직이 아니니까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주변 간호사나 병원 직원에게 이야기해야겠다. 괜히 우리 병원 방문하는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좋은 것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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