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6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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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 제9기 작전
제1장 적의 제1차 춘계 공세와 아군의 반격
제1절 피아의 전반적인 상황
제1항 적의 상황
6.25동란 발생 이래 낙동강 전선까지에 취해진 아군의 지연작전은 적에게 상당한 출혈을 강요하였고, 이어 아군의 총반격 작전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출혈로 전투 의식을 상실한 적은 중공군을 투입함으로써 한만 국경까지 진출한 아군으로 하여금 오산 선까지의 철수를 부득이하게 하였다. 오산 선에서의 아군의 재반격으로 말미암아 적은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를 거듭, 38선에 이르렀다. 후퇴한 적은 재침의 기회를 호시탐탐, 주력을 철의 삼각지대에 집결하였다.
적은 개성 지구의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던 제63군을 제64군과 교대하였으며, 연천 지구의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던 제27군을 제26군과 교대하여 제27군으로 하여금 재편성, 공격을 준비하게 하였다. 중부 전선에서는 제39군과 제40군이 방어 임무를 담당 배치되어 있었으며, 중동부 전선과 동부전선은 주로 괴뢰군 제3군단이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적은 4월 20일경 예비대로 있던 제2야전군 예하 제61군을 전선에 투입, 연천지구에서 공격 준비가 완료 시까지 지연전을 감행하게 하는 동시에 제2야전군 예하 제10, 제11, 제12군을 공격을 위하여 중공 본토에서 새로 입한 연천 북방에서 명령을 대기하게 하였다. 제4야전군 예하 제42군은 중부 전선에서의 출혈을 회복하기 위하여 재편성 차 평양으로 이동시켰다.
적은 부대의 재편성과 함께 장비 면에서도 야포, 장갑차, 차량 등을 대폭 증가 배치하는 한편, 산악지대에서의 기동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말을 동원하였다. 차후 전투에 있어 이 말은 산악지대 작전에서 좋은 기동 및 포급 수단인 것이 입증되었다.
소위 중공지원군 총사령 팽덕회는 평양에서 각 군장 회의를 개최하여 최종적으로 공격계획을 검토 하달하였으며 이 석상에는 괴뢰 수상 김일성도 참석, 격려사를 보낸 바 있었다.
공격 준비를 완료한 적은 4월 22일 주력을 철의 삼각지대에 의거 중부 전선에 지향하여 일대공격 작전을 감행하여 왔다. 중부 전선에 지향된 적의 주력은 제2야전군 예하 제10, 제12, 제60군 및 제3야전군 예하 제20, 제27군, 제4야전군 예하 제40, 제39군이며 서부전선에서는 제1야전군 예하 제63군, 제64군이 서울을 점령할 기도하에 남하하는 한편, 중동부 전선과 동부전선에서는 괴뢰군 제3, 제5군단이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적 전선부대 총 병력은 중공군 약 250,000명, 괴뢰군이 약 35,000명이었으며, 예비대로 중공군 제1야전군 예하 제65군, 제2야전군 예하 제42군과 괴뢰군 제1, 제2, 제4, 제5, 제7, 제8군단을 후속하게 하였고, 적 공격부대 총 병력은 지상군 50만의 대병력이었으며, 당시 적은 전략적인 예비부대로서 후방지역에 중공군 제30, 제32, 제49, 제53, 제56군을 보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