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16 유시민과 같은 자들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steemCreated with Sketch.

결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인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최근 전세계의 정치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며칠전 미국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이 사망했다. 미국 당국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하지만, 이런 저런 보도를 보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미사일을 맞아 사망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언론 중 일부도 린지 그레이엄의 죽음에 대한 당국의 설명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치를 하는 이유는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 나만 잘먹고 잘살자고 생각해서가 아닐 것이다. 내가 이웃과 주변 사람 그리고 더 넓게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 일 것이다.

린지 그레이엄을 위시한 일부의 정치인은 이타적인 목적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모든 사람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린지 그레이엄을 위시한 정치인들이 특히 앞장서서 지키고자하는 것은 미국의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이라고 하겠다. 트럼프도 이란과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정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혐의가 있다. 트럼프의 나이 80이 넘었다. 그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그가 지금 그 나이에 돈을 더 벌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얼마 있지 않으면 트럼프도 차디찬 땅에 묻힌다.

삶은 결국 자신이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잘 살았나 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행승은 무슨 이유로 수행을 할까? 적어도 정치인들은 어느 정도 수행승과 같은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한국 정치를 보면서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의 정치수준은 인민의 의식수준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인민이란 말을 쓰는 것은 국민이라는 말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의미의 맥락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말려들어가고 있다.

한국은 국제정치적 대변동에 말려들어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역사적 분기점에서는 그 어떤 국가도 이런 격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백년동안 지속된 자본주의적 체제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고,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길은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인간의 이기주의는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에 이르렀고, 이런 자해적 경향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인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한 역사는 그야 말로 인간이란 종의 종말로 이끌어갈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도 서서히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도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한국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기득권층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 방식에 함몰되어 점점 더 종말의 속도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다.

좋건 싫건 앞으로 최소한 몇년동안은 민주당이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이 시기는 너무나 중요하다.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향한 방향을 현재의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기간동안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필자는 이재명의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그의 대외정책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는 극우보수주의자가 함직한 대외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국내정책도 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기득권과 재벌 그리고 자본을 위한 정치와 정책을 하고 있다. 주식 가격이 올라간다고 하지만 한국 서민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절망적인 것인것은 내가 거리에서 보는 서민들의 삶은 더 이상 나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자는 이미 한계 상황에 몰려있다. 이재명은 이명박처럼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길 원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한국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억강부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국제정치적 안보환경에서 억강부약이라는 논리가 현재 한국의 상황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부자를 억압해서 약자를 돕는다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한국에서 국가란 그리고 정치란 현재의 삶이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이 가장 부족하고 어려운 지점에 정책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감스럽게도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의 이런 행태를 분명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여야 할 것없이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아직까지 문재인 만세를 부르는 자들이 있다. 한때 문재인 만세를 불렀던 자들의 상당수는 다시 이재명 만세를 부른다. 그들이 문재인 만세와 조국 만세를 불렀던 과오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도 없다.

나는 이재명 정권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원한다. 내가 이재명 정권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원하는 방식은 이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면 고치지 못한다. 고치는 노력 이전에 자신이 자신의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권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세력은 바로 이재명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는 자들이다. 이런 팬덤 정치는 한국정치를 좀 먹는다. 교정하고 수정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는 전쟁과 매우 유사한 것 같다. 특히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민주당의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유시민과 같은 족속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민주당의 한계를 절감한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한국정치의 전면에 나섰고, 사람들은 그를 떠받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재명을 비판하는 것과 유시민이 이재명을 비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시민이 생각하는 세상이 다시 돌아오면 그리고 정청래 같은 자가 다시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은 이제 문재인 어게인이 된다. 당신들은 그런 세상에 살고 싶은가? 나는 아니다.

유시민이 이재명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민주당내 영남 패권세력이 권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파적 이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지극이 이기적인 목적이다.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가 집권한 동안 무엇을 했고 어떤 성과를 내놓았는가? 민생은 더 어려워지고 남북관계는 최상의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았다. 주택가격은 하늘 높은지 모르게 올랐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의 인간들은 ‘대한민국을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떠들었다.

문재인과 조국 그리고 유시민과 김어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정권을 운영했는지 도무지 알 수없다. 유시민과 같은 자들은 신라젠 사건의 의혹의 대상이다. 문재인 정권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받지 않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윤석열과 문재인이 연결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필자같은 사람이 그런 내막을 알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제기된 의혹만 보더라도 이런 문제는 그냥 덮혀서는 안되는 법이다.

법은 강자에게 엄격하고 약자에게는 자애로워야 한다. 여전히 한국은 800원 횡령한 버스기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직장을 뺏아 버리고 호화 해외여행으로 수억의 국고를 횡령한 선관위원장 노태악에 대해서는 수사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민주당 대표 선거는 문재인을 위시한 영남패권세력들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대중의 삶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검찰 보완수사권 문제로 날을 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조급한가를 알 수 있다. 한국이 더 발전하려면 이런 자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잘못한 자에 대한 처벌, 특히 힘이 있는 자들에 대한 추상과 같은 처벌이 없으면 한국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검찰을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만든 것이 누구였는지? 원래 검찰은 권력의 칼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검찰을 통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치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 검찰을 통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문민통제의 원칙에서 이탈하도록 민주당이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검찰이 오늘날과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하게 만든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때 검찰이 정치를 좌우했나? 그 당시 검찰이 권력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분노와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을 통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견제이다. 민주당은 검찰을 견제하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결국 강자의 악은 활개를 치고, 서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에 의해 각종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그저 그렇고 그런 당대표 선거가 아니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자들을 봉인하느냐 아니냐의 중대한 갈림길이다. 이미 사라졌어야 할 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현재의 상황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사라져야 할 자들은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사라져야 할 자들이 사라져야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른다. 양동이의 썩은 물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신선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