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19 조선 여자축구단 입국 단상, 정태현 글steemCreated with Sketch.

5월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조선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단 35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선수들은 취재진의 질문에도, 환영 인파의 외침에도 단 한 번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이들을 일부러 찾아간 사람들은 현수막을 들고 손을 흔들며 환영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그 열기는 끝내 단 한 번의 눈맞춤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공항 천장 아래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 장면은 묘하게 차가웠으나, 동시에 참으로 정직했다. 한편으로는 서글픈 장면이었다. 공항에 모였던 사람들을 두고 낭만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현실을 너무 가볍게 보는 일이다. 환영인파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수십 년 동안 통일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리라. 남북관계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조선이 헌법에 이미 두 개의 국가를 명문화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더이상 “우리 민족끼리”라는 문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공항으로 갔다. 희망 때문이 아니고 기대도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이지 않았을까.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관계의 종료라는 것은 뉴스 기사 한 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이란 결국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인다.
조선 선수단은 예상대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환영의 외침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우리는 당신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외교 문서보다 분명했고, 성명서보다 차가웠다.
그 곳에 있던 이들 대부분이 이미 예상했을 터였다. 무시당하고, 응답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갔다. 이를 두고 미련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에 가까웠다. 과거의 시간이 완전히 끝났음을 자기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확인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움직인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된다. 역사는 앞으로 갔는데 의식만 제자리에 남아 있는 셈이다.

조선은 더 이상 남측과의 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의 말과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다. 정치적 접촉을 최소화하고, 메시지도 절제하며, 상징적 교류도 없을 것이다. 스포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참가할 필요가 있으니 참가할 뿐이다. 거기에 감정이나 화해의 서사를 덧씌울 이유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권이나 운동권이나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아직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남쪽의 변화는 북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엔진은 이미 작동을 멈춘 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얼마 전 조선이 헌법을 수정해서도 아니고, 2023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북남관계는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선언해서도 아니다. 그 엔진은 문재인의 구밀복검 행위로 인해 작동이 멈췄고, 그러한 문재인만을 따라다녔던 인사들로 인해 수명을 다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스스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안보도, 외교도, 경제도, 사상도 거대한 외부 질서와 결속되어 있다. 조선은 바로 그 구조 자체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니 조선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점점 공중에 뜬 이야기가 되어간다.
결국 필요한 것은 방향 전환이다. 더 이상 조선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북의 입장"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순간, 한국 사회는 자기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하는가. 왜 정치적 결정권은 번번이 외부 세력의 질서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가. 왜 사회 전체가 미국의 질서와 자본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가는가.

답해야 할 질문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있었다. 공항에 갔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그것이다. 그들이 본 것은 “무시”가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단절이다. 그 단절은 감상이나 선의로 메워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정치적이며 구조적인 선 긋기다. 냉혹하고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매우 명확한 선언이다.

그러므로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조선과의 관계를 전제로 움직였던 오래된 방식은 끝났다. 인천공항의 선수단 환영 장면을 보고도 여전히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면 앞으로도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은 자기 현실을 자기 눈으로 직시하는 데서 나온다. 자기 판단으로 세계를 읽고 결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방향을 세우는 힘, 이미 낡아버린 틀을 반복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현실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끝내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힘. 어쩌면 오랫동안 말로만 반복해 왔지만, 정작 가장 결핍돼 있었던 바로 그것이다.

이제 더 이상 착각할 여지는 없다. 조선은 이미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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