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페스티벌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자유민주주의)

in AVLE 일상last month

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성인 페스티벌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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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조커가 올린 KXF The Fashion 공지 / 플레이조커 페이스북

성인 페스티벌 이대로 취소되나

성인 페스티벌, 정확한 명칭 '2024 KXF The Fashion'은 플레이조커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일본 성인동영상(AV) 배우들이 출연하는 19금 이벤트입니다.
애초 이 행사는 수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행사장을 파주로 옮겼고, 이번엔 파주시장이 직접 ‘결사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파주에서의 개최 시도도 무산됐습니다.
세 번째로 플레이조커는 서울 잠원한강공원 내 선상 주점으로 행사장을 옮겨 성인 페스티벌을 개최하려 했으나 서울시가 전기까지 끊겠다며 강경한 불허 입장을 내면서 행사는 아예 취소 위기에 놓였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성인 페스티벌처럼 격렬한 반대를 낳는 행사가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퀴어문화축제’입니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부터 열리는 행사로,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의 축제입니다. 보통 진보성향 단체와 정치인들이 이 행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고, 반대로 기독교계 단체에서는 과도한 노출, 동성애 선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반대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일부 보수정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행사 장소 대여를 불허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 반대하는 행사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위안부 소녀상’ 철거 촉구 집회를 들고 싶습니다. 이 집회 주최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려 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서 수요시위의 ‘맞불 집회’ 성격으로 집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회 주최자들은 위안부 소녀상은 ‘역사 왜곡’의 산물이고 현실을 반영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1. 성인 페스티벌, 2. 퀴어문화축제, 3. 위안부 소녀상 철거 집회

이 중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금지해야 할 행사는 무엇일까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데 다수결에 따라야 할까요?
모르긴 해도 여론조사를 통해 위 세 가지 행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면, 일반 시민의 대다수는 ‘반대’ 입장을 표할 가능성이 99% 이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맞는 올바른 대처는 세 행사 모두 개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김일성 만세'도 되는 세상인데 AV는 왜 안되나

무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인 1960년,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 만세’란 시를 지었습니다. 그는 이 시를 지면을 통해 발표하려 했지만, 그 때마다 제목을 고쳐달라, 내용을 고쳐달라는 요구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그는 ‘김일성 만세’를 생전에 발표할 수 없었고, 이 시는 그의 사후에 공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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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김일성 만세'를 적은 대자보 / 미디어오늘

시의 전문(全文)을 보면 알 수 있듯 김수영 시인이 진심으로 김일성을 찬양하려고 이 시를 쓴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짐작하기로 그는 4・19 혁명 이후 이 사회가, 그리고 새로 집권한 장면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는지 시험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를 실현하는 국가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 일반적으로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매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마땅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가 김일성 만세를 넘어서 ‘김정은 만세’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을 이어 오면서 그 정도 외침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뿌리를 내린 나라이며, 우리 국민의 평균 수준은 ‘김일성 만세’ 혹은 ‘김정은 만세’라는 한 마디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높은 수준입니다.

‘김일성 만세’가 괜찮다면 AV 배우 초청행사도, 성소수자 축제도, 위안부 소녀상 반대집회도 괜찮습니다. 물론 이들 행사에 대해 반대할 자유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표현의 형태로 그쳐야지 타인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민주주의’ 국가는 다수의 뜻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소수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형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다수결 원칙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도 폭넓게 보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수가 원하면 자유를 박탈해도 된다는 환상

국민 다수의 생각과 반대된다는 이유로 법률 등으로 소수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나라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 나라에 사는 ‘다수’는 과연 온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빼앗긴 나라는 그 누구도 온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다양한 쟁점에 부딪힙니다. 개인 차원의 쟁점도 있고 사회적 차원의 쟁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각 쟁점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타인의 사상을 규정할 때 좌우 스펙트럼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의의 편의를 위한 규정일 뿐, 좌파라 하더라도 특정 쟁점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 만세’라는 표현에 반대하는 사람이 성인 페스티벌에 찬성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스스로를 보수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천하람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성인 페스티벌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이 모든 쟁점에 대해 항상 다수자의 입장에 있을 순 없으며 특정 이슈에 있어서는 소수자 입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가 박탈된 나라의 국민은 꾸준히 자신의 표현이 다수의 입장인지 소수의 입장인지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그만큼 그의 사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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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2024 K-XF 저지 비상대책회의 회원들이 K-XF 행사를 규탄하고 있다. / 수원여성의전화

'동료 시민'을 믿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자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도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주장에 도저히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구실을 달아 특정 집단의 표현 기회를 막아야 한다는 이들은 대개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곤 합니다.
성인 페스티벌을 반대하는 2024 K-XF 저지 비상대책회의의 입장을 보겠습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반대 논리 중 하나는 아이들의 교육입니다. 이들은 성인 페스티벌을 “아이들의 건강한 교육환경을 침해하는 성인엑스포”라 규정하고, “아동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사회가 더 두렵고 끔찍하다”라고 주장합니다.

퀴어문화축제의 경우에도 비슷한 반대 논리가 나옵니다. 지난해 5월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서울광장 사용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서울시 열린광장시민위원회 회의에서는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바르게 커야 하는 (청소년에게) 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교육적인 부분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아동, 청소년이 성인 페스티벌이나 퀴어문화축제에 절대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반대 이유 중에 ‘교육적 이유’를 제외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반대할 사람은 계속 반대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들은 말로는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악영향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자들의 활동이 일반 시민들에게 노출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과 다른 동료 시민들이 동등한 판단 능력을 갖췄다고 보지 않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입니다. 동료 시민들이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라고 인정한다면, 그들이 성인 페스티벌이나 퀴어문화축제를 스스로 보고 판단할 능력이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자들은 동료 시민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단만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집단이며, 이런 능력이 없는 자들은 성인 페스티벌,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쉽게 '유해 환경'에 ‘오염’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딱히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정신적 능력을 지닌 건 아닙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옹호자라면 최소한 자신과 타인을 동등한 인격자로 존중해야 합니다. 동료 시민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엘리트인 자신이 ‘올바름’을 독점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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