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뜨개

직장에 다닐 때는 예쁜 코바늘 물품을 뜨는 사람들을 보면 별천지의 사람 같았다. 어떻게 손을 샤샤샥 움직이면 팔아도 될만한 가방이며 모자, 조끼, 카디건 등이 툭툭 떨어지는거지?

하지만 유튜브는 모든 것을 가깝게 끌어다 놓았다. 맘만 먹으면 김치를 ‘담글’ 수도 있고 머리를 깎을 수도 있다. 집도 짓고 콩으로 메주도 뜰 지경이다.

그래 나도 코바늘 뜨기를 해 볼까. 생각은 두 달 전부터이다. 조그만 열쇠고리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을 듯 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 추천 쇼츠로 손뜨개와 제작과정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유튜브의 자매품, 내 생활에 성큼 다가온 다이*에는 없는 것도, 못 할 것도 없는 꿈과 모험의 세계다. 자전거 장갑과 헬멧을 쓰면 당장 한강변에 나갈 수도 있고, 원예용품 코너에는 따뜻한 날씨에 맞춰 여러 쌈채소들이 나를 당장 먹어주세요를 외친다.(정신 차려, 너희는 한낱 씨앗일 뿐이닷!)

그날부터 나는 아이들이 잠든 저녁마다 유튜브와 코바늘과 실을 꾸려 앉았다.

제목이 혹한다. 왕왕초보자도 너무 쉬운 코바늘뜨기. 그러나 어렵다. 한 시간을 씨름해 겨우 네잎 크로바의 손톱보다 작은 한 잎을 떴지만 그 다음이 엉켜 버렸다. 이러면 실을 다 풀고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

두번째날, 다시 어제와 같은 시간에 무거운 눈을 껌벅이며 앉았다. 세번쯤 푸르다 다시 포기한다.

세번째날, 오늘은 비장한 각오다. 그렇지만 안되고 결국 구불해지고 부슬해진 실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온다.

네번째날, T 남편이 비웃는다. 그러게 그게 아무나 되는 줄 알아. 오기가 부글부글 올라온다. 내 기필코.. 하지만 오늘도 실패다.

다섯째날은 기운이 빠져 시도도 못하고 자버렸다.

그러기를 열흘쯤 했을까. 중간에 두잎까지 하고 푸른 날도 있고, 세 잎까지 뜨고 푸른 날도 있었다.

마침내 성공이다. 아주 깔끔하지는 않지만 얼추 네 잎의 모양을 갖춘 클로버가 생겨났다.

손꼽아 기다려준 딸은 무척 기뻐해주었다. 딱 봐도 어수룩한데 그간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손뼉 쳐주는 혈육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다는 기쁨. 하다가 막혀서 푸를 땐 이젠 끝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하는 막막함과 허무를 딛고 다시 시도하고 또 하고를 반복해 한달음에 네 개의 잎을 완성해낸다.

손뜨개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맞닿아 있다.

막히는 부분에 걸렸을 땐 더이상은 못하겠다 생각하고 돌아서지만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은 아주 의미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어떤 로직이든 남겨서 다음 손동작은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남들에게 없는 코바늘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고 두리번 거리는 생각들이 있다. 이젠 그걸 앉아서 꽁닥꽁닥 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뚝딱 뚜그닥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의 한 발, 한 발도 그러하겠지.

내가 만난 행운, 불행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 사고회로, 생각의 습관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소중한 나의 행운과 불행들. 내 경험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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