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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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면 어김없이 발라당하는 춘식이를 봅니다. 저는 당연히 춘식이를 쓰다듬고 놀리기도 하고요. 아, 춘식이는 저희 집에 있는 허스키&진도믹스견입니다. 해맑게 헤헤거리는 춘식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춘식이와 Ai는 되는데 인간은 안되는 것"

추신) 여기서는 사람이라는 단어보다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것같습니다. "인간"은 Ai에 대비되는 존재이고, "사람"은 철학과 감정이 깃든 존재라고 느껴져서요.

Ai가 나오기 전에는 네비게이션이 그런 역할을 했죠. 방향이 틀려도 "경로를 다시 설정하겠습니다."하며 아주 친절하게 다음 길을 안내합니다. 인간이라면, 세 번 말을 안들으면 바로 찬바람이 불거나 말방망이가 날아왔겠죠.

춘식이도 내가 전날 무슨 행동을 했건, 어떤 감정을 쏟아냈건, 무시를 했건 상관없이 매일 아침이면 꼬리꼽터를 돌립니다. 어떠한 판단도 거리두기도 없습니다. Ai도 그렇습니다. 밤이든 새벽이든, 말이 되는 것이든 아니든 아주 친절하게 답변을 합니다. 가끔 에너지가 떨어져서 답을 하는 시간이 좀 늦어지기는 합니다. Ai도 이제는 돈의 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맛보기를 할 수 있었던 Ai 서비스는 구매나 구독을 하라고 하죠. 이렇게 구독하게 된 Ai비서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가요? 같은 말을 해도 반응이 다르고, 했던 말에 대해서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체를 관장하는 기관은 뇌입니다. 뇌는 무척이나 게으릅니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고, 생각하고 변화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새로운 걸 하려면 에너지를 써야하고 피곤해지니 뇌는 최소한의 활동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려고 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건 하지 않았고, 꼭 해야 하는 것은 대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힘들여 일하기 보다는 기중기를 만들고, 증기기관을 만들었구요. 마라톤 평원을 달려서 승전소식을 전하기 보다는 봉화를 개발했고, 파발마를 키웠고, 전화와 인터넷을 만들었습니다. 조만간 인터넷도 싫다, 텔레파시로 하자.. 이렇게 될지도요.

현재 등장한 Ai도 그 연장선이겠죠. 지금까지는 손과 발, 어깨가 했던 것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머리, 뇌가 했던 것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하고, 추론하고, 계획하는 일들을 외부로 기능화한 거죠. 앞으로 AGI가 나온다면 그 때는 인간 자체를 외재화한 것일까요?

지금까지는 감정이나 심리에 대해서는 인간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서 용기를 내서 행동을 바꿔보기도 하고요. 아직까지는 감정이나 심리문제분야에서는 Ai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Ai와 대화를 하면서 평안을 찾는다는 분이 많습니다. Ai에는 약간은 아부기질이 있어서 딱 맞춤식으로 이야기를 해주니까요. 저도 가끔 Ai에게 물어보는데 딱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답변을 해주더군요. 마치 사탕발림처럼요. 근데, 아시죠, 그런 사탕발림 말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거.

현재의 변화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크고 빠른 변화라고 송길영박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송박사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요. Ai의 발전속도에 저도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고 하지만, Ai계의 원주민과는 차이가 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할까 싶지만, 한동안은 이 기조를 유지하려 합니다. 오늘도 ChatGPT, Gemini, Perplexity 대결을 시켜놓고 구경했죠.

Ai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볼 때 앞으로는 양극화가 크게 나타날 겁니다. 신분제 사회였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글을 아는 사람과 까막눈 간의 정보와 지식의 차이가 엄청났습니다. 해방이 되자 정부에서 가장 열심히 추진한 사업이 전국민에 대한 교육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전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입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뉴스를 보고 대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벌써부터 Ai를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 양극화가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겁니다. 뇌피셜이고 근거는 없습니다만, 해방부터 Ai가 등장한 초기까지가 지식이나 정보의 양극화가 가장 적었던 때로 기억될 겁니다.

지금까지 인간으로 귀찮았던 것을 외재화해 왔으니 앞으로 진짜 남는 것이 뭘까요? Ai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인간, 사람이라는 존재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Ai와 대비한 "인간"이 아니라 힘차게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로요.

인간이 무엇을 외재화했던 그건 인간이 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서 인간을 사육한다는 SF영화가 있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름의 존재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처음 윤정구교수님의 진성리더십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현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가기 바쁜 현대에 철학을, 원칙을 이야기하는 게 조금은 동떨어진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존재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국면으로 몰리니 사람으로써의 존재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은 이 상황을 예견하신 걸까요?

이런 빠른 흐름 속에서 인간, 사람으로서의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깊은 고민을 해야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씨줄과 날줄을 이야기합니다. 씨줄은 어떤 변화가 있어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날줄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적응력입니다. 어떻게 씨줄을 강하게 하고, 어떤 날줄을 엮어야 할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꼬리꼽터 돌리는 춘식이를 보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깊어졌습니다.

이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담담하게 할 것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겠죠. 빅터 프랭클이 지옥같은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았듯이, 오늘은 그런 의미를 찾아보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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