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홍범도는 누구인가?

in Korea • 한국 • KR • KO8 months ago (edited)




요즘 홍범도 이야기가 뜨겁다. 그 시초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의 흉상을 옮긴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는 시끄럽고 감정적이지만 답이 없는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했다. 언제나 이런 불쏘시개가 필요한 정치인들과 생각이 짧은 관심병자, 선동가들에게 좋은 재료다.

이 논란을 선동하는 측에서는 "이름난 독립운동가를 단지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가 평가절하하려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논란을 키운 것은 무능한 국방부와 논란의 핵심을 반박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 국방부 대변인의 태도다. 해병대 윤 상병 사건에서 확실히 느낀 것은 현 국방부와 청와대 일각이 대단히 무능하고 안이하다는 것이다. 이 논란은 애초에 논점이 잘못되었다.


한국인 대부분은 국수주의자, 좋게 불러봐야 극단적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에 세뇌되어 있다. 이 점은 북한이 김씨 일가에 세뇌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확신한다. 세뇌는 망상적 사고를 동반한다. 망상은 "실제 사실과 다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시정되지 않고, 교육 정도나 문화적인 환경에 걸맞지 않은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이다. 망상의 핵심은 교육 수준 상관 없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믿음이나 생각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민족주의와 근대 역사는 망상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 홍범도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의 투사다. 일제를 대상으로 "대첩"을 거둔 아이콘이기도 하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망상이다. 그리고 이는 홍범도의 일생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산 풍운아를 특정 이데올로기에 맞춰 지고한 목적을 가진 운동가로 둔갑시키는 것이 홍범도를 폄훼하는 것이다.


홍범도는 머슴 아들로 태어나 고아와 다름 없는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삶이 바꾸기를 꿈꾸며 평양 감영에서 나팔수로 입대했다. 그러나 그는 억압적인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괴롭히는 상관을 살해하고 도주한다. 이후 금강산 신계사에 신분을 숨기고 중으로 살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비구니를 임신시키고 파계한다. 이후에는 함경도 북청에서 고용살이하던 중 임금 문제로 다투다 다시 고용주를 살해한다. 이 모든 게 홍범도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홍범도는 포수로 살아간다. 사격술이 남달랐다고 알려졌고 '포계'라는 포수들 모임의 장을 맡은 것을 보면 리더십 자질도 있었다. 이후 홍범도는 일제와 크게 두 번 충돌한다. 첫 번째는 을미사변 이후 일제가 일반인의 총포류를 강하게 단속하여 포수로서의 삶이 위협받았기 때문이고. 그다음도 1907년 정미의병 이후 일제가 다시 총포 화약류 단속을 강하게 하면서 일반인의 화기 보유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반도에서 활동하기 힘들었던 홍범도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만주와 연해주로 활동 지역을 옮긴다. 그 이후 소련에 의해 무장 해제된 후 소련 시민으로 살다 죽는다.


극도로 단순화한 그의 일대기이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홍범도는 자신에게 굴욕감을 주거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어떤 체제에도 순응하는 인간이 아니다. 상관이든 고용주든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다고 느낀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다. 큰 사고를 치고도 절에서 조용히 숨어 살 수 있는 인간도 아니었다. 당시 사회적-윤리적 기준을 딱히 존중한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삶을 꾸려나가는 방도로 선택한 것은 포수다. 화전민도 아니고, 상인도 아니다. 190에 육박했다는 거대한 체구와 엄청난 체력, 타고난 리더십에 의존해 지배층의 간섭이 없는 곳에서 자기 입지를 쌓았다. 근대국가의 촘촘해진 간섭이 그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자 삶의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수단인 총을 들고 그 억압자에게 덤볐다. 만주로, 연해주로 몰리며 최종적으로 세월이 그의 힘과 의지를 쇠하게 했을 때, 소련에서 다시 가정을 꾸미고 소련 체제에 순응하며 조용히 새로운 삶을 꾸렸다.

그는 야수와 같은 풍운아다. Wild west의 무법자와 가장 비슷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서 조선의 독립이든 공산당이든 방편이자 도구다. 그의 삶을 이끈 것은 이념이 아니라 그의 본성이다. 일제에 맞선 이유는 일제가 당시 그의 삶의 방식을 위협하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이 급격히 근대화하여 그에게서 총과 삶의 방식을 빼앗으려 했다면 그는 똑같이 총을 들고 맞섰을 것이다. 


당신이 혼란한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어떤 무장 집단을 이끌고 있다고 치자. 무장 집단도 식량, 옷, 돈이 필요하다. 당신은 부자들에게 빼앗아 이를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정당화-합리화 이데올로기"이다. 내 행동이 갈취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위한 활동이라고 정당화해줄 어떤 사고 체계가 필요하다. 이 사고 체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으면 그 때부터 총을 들고 가서 빼앗을 필요 없이 세금을 걷으면 된다. 이른바 초기 국가의 형성이다.

홍범도 자신이 기록한 일기에 수없이 지역 유지를 협박하고 강탈한 기록이 나온다. 당신이 홍범도라면 무엇을 대의명분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홍범도 입장에서 일제가 원수다. 그의 삶의 방식을 가장 난폭하게 주무르려 했던 존재다. 그러니 그 이념은 당연히 일본에 반대하는 무엇이어야 했다. 처음에 그것이 조선의 독립이었고, 이후에는 공산주의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 이념은 도구다. 그의 인생을 이끈 건 그의 본성이다.


그를 민족의 우상으로 삼는 것, 그의 공산당 활동을 두고 그의 민족적 우상성을 파괴하려는 것 모두 뻘짓이다. 

민족적 가치를 이념적 가치(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원리)보다 위에 두고 싶은 문재인 류의 586 운동권 일당들은 그를 카자흐스탄의 평화로운 무덤에서 끄집어내 국립묘지에 다시 묻었다. 그리고 그의 흉상을 육군 사관학교 앞에 전시하여 "민족주의가 대한민국의 모든 이념에 앞선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를 반대하는 현 정부는 그의 흉상 육사 밖으로 끄집어 내려 한다. 이게 지금 홍범도 사태의 본질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언제인가? 상해임시정부 수립인가, 아니면 1948년 8월 15일인가?

대한민국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통 국가인가, 아니면 한민족(韓民族)으로 구성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단계에서 존재하는 불완전한 국가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두고 벌이는 싸움에 홍범도는 무참하게 무덤에서 끌려 나와 난폭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는 자유로운 야수와 같은 심장으로 혼란한 세상을 헤치며 자기 방식대로 살아남은 입체적인 인물에 대한 모욕이다.

홍범도는 드라마로 만들어야 한다. 홍범도는 서부극에 나올법한 매력적인 무법자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위인 전기적 인물은 민족주의 우상을 만들려는 망상의 산물이다. 홍범도를 홍범도답게 그린 드라마가 나와도 한국 사회가 분노에 찬 광기를 일으키지 않을 때, 한국은 진정으로 보편적인 감각을 지닌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3.000 명 넘게 일본군을 사살했다는 것은 날조된 것이라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 두 전투의 의의는 당시 러시아 적백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와 만주를 안정화하려는 일본군의 불령선인과 비적 소탕 작전에서 당시 김좌진과 홍범도가 이끄는 세력이 포위를 풀고 도주할 수 있었다는 정도로 봐야 한다. 일본군의 피해는 최대 사망 넷에 부상 수십 명으로 본다. 일본은 이 사건을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게 사실이다. 스스로 자아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이런 판타지가 아직도 팔리고 있다.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한국 사회가 부끄러웠다. 이런 식의 역사 XX이를 친다면 우리는 중국보다 더 저질인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근대 국가는 근대적 국민을 만들어 낸다. 내 생각에 대한민국은 한민족이라는 유전적 유사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내세우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했듯 민족은 "언어를 통해 상상된 공동체다" 어떤 신적이고 영구적인 민족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와 조상, 후손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상의 세계관은 근대사회에서 종교의 대용물로 만들어졌다. 신비적 신념 체계가 그렇듯 민족주의에는 날조된 영웅과 악마, 상징과 신비한 교의가 판을 친다. 이를 현실과 혼동하여 일어난 참극은 비참할 지경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열린 사회를 만들길 원한다면 망상을 배제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홍범도라는 풍운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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