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토냐: 사람들은 잡초같은 여자를 싫어해

    미국 여성피겨 최초로 트리플악셀을 성공시킨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 과 당시 미국을 떠들썩 하게 했던 낸시캐리건 습격사건 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장르는 드라마에 가깝지만 피겨스케이트가 가진 속도감과 역동성을 잘 표현 해 내서 스포츠 영화로도 괜찮게 봤다.

    보통 전기영화라고 하면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에 지루한 분위기를 연상하는데, 모큐멘터리 스타일의 인터뷰와 나레이션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종종나오는 블랙코미디덕에 경쾌한 무드를 유지한다.

영화 자체로만 봐도 위와같은 매력이 있지만 오늘 포스팅에선 이영화의 다른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희대의 악녀와 매정한 엄마

    개봉전부터 이영화는 가해자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피겨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낸시캐리건 습격 사건을 다루면서 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토냐 하딩 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새웠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이나 실제인물의 도덕성을 떠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본 영화,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이다.

    영화는 토냐가 스케이팅을 시작하는 어린시절부터 습격사건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다룬다. 뛰어난 스케이팅 실력을 가졌지만 가난한 집안환경과 폭언을 일삼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토냐는 거칠고 잡초같은 삶을 살아왔다. 그런 삶처럼 그녀도 투박하고 거친사람이었다. 트럭과 차수리를 좋아하고, 경기에는 클래식이아닌 댄스음악과 락음악을 선택하며, 경기점수에 납득이 안가면 심사위원앞까지 달려가 거친말을 내뱉는다.

    피겨, 발레 등 여성이 중심이되는 스포츠분야는 유독 스포츠적인 부분보다 외적인 면에 조명이 비춰진다. 더 뛰어난 점프를 하기위해 쿼드점프 전쟁이 일어나는 남성피겨계와 대조적으로 여성 피겨선수는 아름답고 여성스러운지, 세련된 의상인지, 안무와 음악이 우아한지 등 엄격하고 주관적인 기준들을 충족해야한다. 그런면에서 토냐 하딩 이란 선수는 습격사건이 아니어도 여러모로 대중들과 심사위원들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듯 토냐는 영화내내 모두에게 미움받는 캐릭터이지만 그는 사랑받기위해 애쓰지 않는다. 낸시캐리건처럼 우아한 공주가 되려고 자신을 바꾸지 않으며, 심사위원과 대중에게 사랑받기위해 가식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로 가기위해 발버둥친다. 부정적인 엄마와 가난한 가정에서 벗어나기위해 전남편을 선택하고, 폭력적인 전남편에서 벗어나기위해 이혼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이점이 내가 이캐릭터를 존나 좋아하는 이유다.

    모성애와 거리가 먼 토냐의 어머니인 라보라 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토냐를 뒷바라지하는 그녀의 삶과 그런 자신의 삶을 닮지 않길 바라며 자식을 모질게 대하는 라보라를 보며 우리는 그를 연민하진 않지만 이해는 하게 된다.

악男 은 연민하지만 악女는 이악물고 증오하는 세상

    그간 할리우드에선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악인을 만들기위해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조커, 베놈 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빌런을 주인공으로하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속 대부분의 악인은 남성의 얼굴을 띄고있다.악인에게 서사가 주어지면 관객은 그에 공감하게되고 영화가 끝난뒤엔 그를 동경하거나 연민하게 된다. 남성의 얼굴을 한 빌런들은 어떤 악행을 저지르든 관객에게 회자되고 현실의 악인들을 연민할 구실을 주지만, 여성캐릭터는 그렇지 않다. 선한 역이던 악한역이던 그냥 서사가 부족하며 무엇보다 그들에게 연민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여성캐릭터를 연민할수 있는경우는 그들이 완벽히 불쌍하고 착한 피해자일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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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를 연민하려면 그들에게 공감할수 있어야 한다. 최근 여성서사 작품이 많이 나오긴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여성캐릭터에게 공감보다 판타지를 원한다. 심지어 여성들조차도 여성캐릭터가 자신을 닮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처럼 추한 밑바닥에서 죽기살기로 버둥대지 않아도 적당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루는 캐릭터를 원한다.

이런 욕망이 가득찬 한국에서 여성이 주요 소비자인 아이돌산업의 성공은 당연한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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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와 대중들에게 완벽한 피해자도 아니고, 자신들의 판타지도 아닌 토냐 같은 여자는 악녀라는 카테고리 외에는 들어설곳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토냐를 마음껏 증오해도 괜찮은 희대의 악녀로 소비했다. 그를보며 비단 토냐 하딩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이렇게 소비된 여성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할리우드가 부여한 운명을 거부한 배우, 마고로비

    사실 영화를 보기전까지 마고로비라는 배우에 대해 별로 큰 기대를 안했다. 크게는 내 편견 때문이긴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미녀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상당히 한정적이기에 관객인 나로서도 그 배우에 대해 기대할수있는 폭이 적었다.

영화를 본뒤 그의 배우로써의 역량도 재평가하게 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검색하면서 그녀가 영화의 제작자인것도 알게되었다.

    아이, 토냐는 마고로비가 설립한 제작회사 럭키챕 엔터테인먼트의 첫번째 제작 영화이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버즈오브프레이, 프로미싱 영 우먼 등 여성감독과 여성작가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촉망받는 제작회사로 떠오르며 그레타거윅, 요르고스 란티모스 등 할리우드의 핫한 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기대작들을 준비하고있다.

여담으로 럭키챕의 차기작 중 내가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리부트 예정인 영화 탱크 걸 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로 유명한 리즈위더스푼 또한 헬로선샤인이라는 제작회사를 통해 빅리틀라이즈, 와일드 등 좋은 여성주연 영화/드라마를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거듭났다. (참고로 영화 Gone girl(나를찾아줘)도 리즈위더스푼이 제작한 영화) 우리나라에선 예능인 송은이가 기획자 매니지먼트로 활동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모두 미디어의 여성혐오가 가둬놓은 틀에서 벗어나기위한 행동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들만이 할수있는 똑똑하고 용감한 커리어인것 같다.

글을 마치며..

    내가 모지란 사람이라그런지 완벽한 캐릭터보단 좀 괴짜같고 모난 캐릭터가 더 마음이간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서사에 열광한다. 하지만 빡치게도 영화건 드라마건 이런 서사를 가진 여성캐릭터는 정말 드물다.

    마지막씬에 토냐가 생계유지를 위해 복서로 전향한 모습이 비춰지는데, 얼굴이 퉁퉁부어가면서 얻어터지고 결국 쓰러지지만 입안에 고인 피를 뱉은뒤 다시 힘차게 일어서고 경기를 시작한다. 영화를 통해 토냐의 생애를 쭉지켜본뒤에 그 씬을 본뒤 느끼게 된 감정은 참 묘했다. 그동안 내가 보고싶었던 캐릭터를 드디어 보게된 느낌.

암튼 글마무리를 어케 지어야할지 모르겠으니 토냐하딩이 트리플악셀을 성공시킨 경기영상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끝.

트리플악셀을 성공시켰을때 뿜어내는 저 자신감과 에너지가 참 멋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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