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학-3

in #korealast year

암흑기
순수문학은 그 뒤 암흑기를 맞이한다. 시인 윤동주(尹東柱)는 '조선인 학생민족주의 사건'으로 일본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복역 중 생체실험으로 옥사한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이육사(李陸史)는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이윤재(李允宰)·한징(韓澄) 등 국어학자들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사하였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1939년 친일·반민족 문학단체인 조선문인협회를 조직하였다. 1941년 당시의 대표적 문예지 《문장(文章)》을 폐간시키고, 그 해 《인문평론(人文評論)》을 《국민문학》으로 바꾸어 한국어 반 일본어 반의 체제를 일본어 일색으로 바꾸게 하였다. 또 1940년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민족지를 폐간시켜 한국어에 의한 문학 활동을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한편, 유진오·김동인 등 소설가와 주요한·김소운(金素雲)·노천명(盧天命)·김동환(金東煥)·서정주(徐廷柱) 등 시인과 최재서(崔載瑞)·박영희·김기진·김문집(金文輯)·백철(白鐵) 등 평론가들이 더러는 심하게, 더러는 소극적으로 반민족적 친일문학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1940년대 전반은 암흑기로 기록된다.

해방문학
1945년 8·15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문학은 '해방문학'의 시기를 맞는다. 모국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문학시대, 표현의 자유를 얻은 문학시대, 민족적 자각과 함께 민족적 유산에 대한 모든 발견과 연구가 가능해진 시대로서 문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38선에 의한 국토분단으로 문단도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서울에서는 좌우익의 문학단체가 양립하여 1948년의 정부수립 전까지 시인 임화를 비롯하여 이태준·박태원(朴泰遠)·김동석(金東錫)·이원조(李源朝) 등이 월북하였다. 그리고 해방문단은 그 같은 이념의 갈등이 문학 논쟁으로 나타나서 김동리·조연현(趙演鉉) 등 순수문학파와 김동석 등 프로문학파의 논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그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좌익 문인은 사라지고 순수문학이 한국문학의 주류를 형성하였으나 곧 6·25전쟁이 일어났다.

전쟁문학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국문학은 본격적으로 이념적 갈등을 소재로 한 문학을 가졌고 현실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이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문학은 주로 ‘전쟁문학’의 테두리에 포함되며, 1953년 휴전 후의 문학을 ‘전후문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대의 문학이 전쟁 전의 문학과 다른 것은 해방문단에서의 좌우익 문제가 주로 이념적 논쟁 형식으로만 나타난 데 비하여, 전쟁 당시와 그 후의 문학은 실제로 피를 흘리는 비참한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장용학(張龍鶴)의 《요한시집》 《상립신화(喪笠新話)》 《현대의 야(野)》에서는 특히 6·25전쟁의 참혹한 양상으로서의 좌우익의 유혈과 이념의 극복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황순원(黃順元)의 《학》이나 이범선(李範宣)의 《학마을 사람들》, 오유권(吳有權)의 《방아골 혁명》, 강용준(姜龍俊)의 《철조망》, 하근찬(河瑾燦)의 《수난이대(受難二代)》 등은 모두 동족상잔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강신재(姜信哉)의 《임진강의 민들레》, 박경리(朴景利)의 《시장과 전장》, 정한숙(鄭漢淑)의 《끊어진 다리》 등 장편도 모두 문제작이다. 그 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고 젊은이들의 현실참여 의식이 커졌다. 특히 195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평론가 중 김우종(金宇鍾)·김병걸(金炳傑) 등이 선두가 된 참여문학운동은 이후 범문단적 양상으로 확대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백낙청(白樂晴)·염무웅(廉武雄)·구중서(具仲書) 등에 의하여 그 운동이 확대되고 시인 김수영(金洙暎)에서 김규동(金奎東)·신경림(申庚林) 등으로 이어지며 1970년대까지 각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1960~1970년대의 문학의 주류는 참여문학이면서 계속 순수문학과의 논쟁이 거듭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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