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오베라는 남자 - by 프레드릭 배크만

in #kr-book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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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껍질 속 골동품 같은 남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엄격한 원칙주의자. 그 원칙을 자기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에누리없이 적용하는 사람.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지위고하 막론하고 얄짤없이 혼내는 사람. 그러다 보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를 사랑하는 아내만 빼고.

그런데 아내가 죽었다. 자식도 없다. 수십년간 몸바쳐 일한 회사에서는 쫓겨났다. 이제 그의 삶에는 아무런 낙도, 의욕도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죽기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남은 세상, 돌볼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고, 몸바쳐 일할 직장도 없고, 누구에게 빚진 것도 없다. 집 대출도 다 갚았고, 자동차 할부도 없다. 그가 떠나가도 그를 찾을 사람도, 그를 그리워할 사람도, 그로 인해 피해를 볼 사람도 없다.

그는 마지막으로 집안과 주택 단지를 꼼꼼히 돌아보고 죽을 준비를 마친다. 그런데 그가 막 목을 매려는 순간, 새로 이사온 옆집의 덜떨어진 남자가 트레일러를 후진하다가 오베의 집 우체통을 박살내 버린다.

아니, 세상에 트레일러 하나 후진 못하는 남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 못본 척 눈감고 자살했어야 했는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 오베. 얼결에 새로 온 이웃집 부부와 엮이게 되는데.


까칠하고 괴팍한 아저씨, 오베


그는 무례하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지극히 상식적인 걸 상대방이 모르거나, 못하면 대놓고 면박을 준다. 집 수리도 혼자 못하는 사람, 자전거도 혼자 못 고치는 사람, 트레일러 후진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한탄을 한다. 오로지 스웨덴 차 사브만 타는 그는(아참, 그는 스웨덴 사람이다) 외제차를 타는 사람은 모두 인간 말종 취급한다.

괴팍하고 까칠한 꼰대. 그에 대한 묘사만 보면 누구나 혀를 끌끌 차며 멀리하고 싶어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알고 보면 속이 깊다. 말 수가 적은 것도, 사브 자동차만 타게 된 것도, 뭐든 손으로 뚝딱뚝딱 고치는 능력도.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독자들은 이 무례하고 모난 아저씨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출처: 교보문고
한글판 표지. 오베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표지. 마음에 드는 표지다.


골동품 같은 남자, 오베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짜증 유발자였던 오베가,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요즘 세상에 정말 귀한 골동품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책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거지만, 그리고 돌아서면 자꾸 잊어버려서 짜증나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의 한 단면만 보고 그를 재단한다는 게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 짓인가.

사람은 한 겹이 아니다. 그 안에 수많은 겹이 있고, 층이 있다. 너무나 쉽게 한 사람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쉽게 입에 올리는 걸 정말로 조심해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이 깨달음을 절대 잊지 않길.



출처: Goodreads
영어 원서 표지. 뒷모습일 뿐이지만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표지다. 발치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도 주목해주자.



나를 깨우는 말들


의역이 많습니다. 참고하세요.


1.

Ove wasn’t one to engage in small talk. He had come to realize that, these days at least, this was a serious character flaw. Now one had to be able to blabber on about anything with any old sod who happened to stray within an arm’s length of you purely because it was “nice.” Ove didn’t know how to do it. (p. 36)

오베는 잡담을 잘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것이, 적어도 요즘 시대에는, 아주 큰 성격적 결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새는 자기와 마주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계속 떠들 수 있어야 했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게 매너라는 이유만으로. 오베는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


2.

“Men are what they are because of what they do. Not what they say,” said Ove. (p. 78)

"사람이 하는 행동이 그를 그 사람답게 만드는 거야. 그가 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오베가 말했다.


3.

This was a world where one became outdated before one’s time was up. (p. 83)

지금은 사람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어버리는 시대다.


4.

No one saw it, of course, but there was no need for anyone to see it. A job well done is a reward in its own right, as his father always used to say. (p. 89)

물론 아무도 그걸 본 사람은 없지만, 아무도 볼 필요는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듯, 일을 잘 마치는 것 자체가 보상이니까.

오베는 자기가 한 일을 (더군다나 잘 해낸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일을 잘 해냈다는 것 자체가 보상이었으니까.


5.

I don’t have time to die right now. (p. 297)

지금은 죽을 시간이 없어.


6.

“Loving someone is like moving into a house,” Sonja used to say. “At first you fall in love with all the new things, amazed every morning that all this belongs to you, as if fearing that someone would suddenly come rushing in through the door to explain that a terrible mistake had been made, you weren’t actually supposed to live in a wonderful place like this. Then over the years the walls become weathered, the wood splinters here and there, and you start to love that house not so much because of all its perfection, but rather for its imperfections. You get to know all the nooks and crannies. How to avoid getting the key caught in the lock when it’s cold outside. Which of the floorboards flex slightly when one steps on them or exactly how to open the wardrobe doors without them creaking. These are the little secrets that make it your home.”
Ove, of course, suspected that he represented the wardrobe door in the example. (p. 305).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집으로 이사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것에 사랑에 빠지지요. 아침마다 이 모든 게 다 내거라는 생각에 놀랍고요. 마치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있었다고, 사실 당신은 이렇게 멋진 곳에 살 게 되어있지 않다고 설명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벽들도 오래되어 바래고, 나무 바닥도 여기저기 갈라지고, 그러면 이제부터는 그 집이 완벽해서라기 보다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하게 돼요. 그 집의 모든 구석구석을 다 알게 돼죠. 바깥 날씨가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느 마루바닥을 밟았을 때 살짝 휘어지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면 옷장 문을 끼이익 소리나지 않게 열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그 집이 당신의 집이라는 작은 비밀들이죠."
물론 오베는 이 예에서 자기가 옷장 문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번역이 매끄럽진 못하지만, 집과 사람에 대한 묘사와 비유가 너무 따뜻하고 딱 맞아떨어져서 옮겨봤다. 남들이 열면 시끄럽게 끼익거리고 삐걱거리는 옷장 문인 오베. 하지만 그의 아내인 소냐는 그 옷장문을 어떻게 하면 소리나지 않게 열 수 있는지 안다.


7.

People had always said that Ove was “bitter.” But he wasn’t bloody bitter. He just didn’t go around grinning the whole time. (p. 325)

사람들은 항상 오베가 '뾰족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뾰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항상 미소지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다.


제목: 오베라는 남자
원서 제목: A Man Called Ove
출판사: 다산책방
옮긴이: 최민우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 (Fredrik Backman)
특징: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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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디서 봤던가 했는데 마지막에 보고 ㅋㅋㅋ 영화 소개 영상에서 봤었나 보네요 ㅋㅋ

좀 많이 슬펐었던 기억이 나네요ㅠㅠ
오베 할아버지의 여러번의 시도가 실패가 되면서 또 아이들 주민들과의 이야기를 보면서 좀 많이 짠했습니다 ㅠㅠ

맞아요. 끝에 가서는 울컥하고 눈물이 나요.
영화는 못봤는데 보고 싶어요.
책이 스웨덴 배경이라, 영화도 스웨덴 영화더군요.
배우들도 낯설고 언어도 낯설겠지만,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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