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이방인 - by 알베르 카뮈

in #kr-book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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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방인인가


그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들어왔던 그 유명한 첫 문장. 이 문장이 주는 서늘함은 차치하고라도,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란 때문에 유명해진 그 문장. 김화영 씨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을 했고, 이정서 씨는 거기에 쉼표를 넣어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을 했다.

이 쉼표 외에도 '죽었다'로 할 것인가, '돌아가셨다'로 할 것인가, '엄마'로 할 것인가, '어머니'로 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문제인 것 같지만, 단어 하나의 차이로 주인공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책 전체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미권에서도 이 문장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을지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었다. 일단 (난 불어는 잘 모르지만) 원문을 보고 가자.


Aujourd'hui, maman est morte.


이 문장을 처음 영어로 번역한 사람은 Stuart Gilbert였다. (1946년이었다.)


Mother died today.


그러다가 1988년이 되어서야 Matthew Ward가 한 단어를 고친다.


Maman died today.


Mother(어머니)는 너무 아들과의 관계가 멀어 보이고, 그렇다고 어머니와의 친밀감을 더하기 위해 Mom 혹은 Mommy(엄마)라고 번역하는 것도 억지처럼 보인다. 그건 아이들이 쓸 법한 단어지, 성인이 쓸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고민 끝에 그냥 원문에 있던 불어 단어 maman을 그대로 가져왔다. 비록 불어이긴 해도 Maman은 영어단어와 비슷해서 영어권 독자들이 읽고 바로 해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일종의 편법을 쓴 거라고 볼 수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 원문의 문장대로 단어의 배열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Maman died today가 문법적으로는 더 자연스럽지만, 원문처럼 today를 앞으로 빼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오늘 하루'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방해받고, 멈춰진 것 같은 주인공의 심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Today, Maman died.


도대체 '오늘' '엄마/어머니'가 '죽은/돌아가신'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영어와 한국어를 불문하고 이런 논란들이 있는 걸까?



출처: 교보문고
한글판 표지.


뫼르소, 그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런데 아들 뫼르소는 무척이나 담담해 보인다. 왜 그럴까? 슬픔에 몸부림치고, 목이 쉬어라 통곡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는 엄마를 사랑했을까? '사랑'하는 게 가능한 사람인가? 그런데, 사랑한다면 모두 같은 모습으로 그걸 표현해야 하는 걸까?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원한 관계도 없는데, 뫼르소는 방아쇠를 당긴다. 한 방으로도 모자라 4발이나 더 쏜다. 마치 불행이 문을 노크하듯, 네 번.

뫼르소는 왜 그를 죽였을까?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날 그의 이마에 따갑게 내리쬐던 태양이, 하필 그날도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태양 때문에 총을 쐈다.

그가 법정에 섰을 때, 검사는 그가 엄마의 죽음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엄마가 죽었는데 목놓아 울지도 않았다. 그 다음날 여자친구와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가고 잠자리를 갖는다. 이런 사람이니 살인을 저지른 거 아닐까?



출처: Goodreads
영어 원서 표지.


이상한 사람. 그런데 그가 이해가 간다.


정말 검사의 말만 듣고 보면, 그리고 일어난 일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마치 인정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사이코패스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한 사람. 그런데, 과연 그럴까?

뫼르소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분명 이상한 사람인 건 맞는데, 그의 행동들이 모두 이해가 간다. 장례식에서 그의 행동도,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도, 살인의 순간도.

뭐라고 변명을 해줘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만일 내가 그의 변호인이라면 나도 두 손들고 포기할 거 같은데,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왜지? 나도 이상한 사람인 건가?

이런 연유로 인해서, '오늘', '엄마/어머니', '죽었다/돌아가셨다' 등의 단어가 중요하다. 뫼르소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어머니가 오늘 죽었다'라고 생각하는지,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라고 감정을 드러내는지.

뫼르소의 행동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동들이 이해가 간다. 만일 내가 천만번 다시 태어난다면, 그 천만명 중 한 명은 그에게 동의했을 것 같다.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에 묵직하게 남는 소설이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Was she old?” I answered, “Fairly,” because I didn’t know the exact number. (p. 16)

"엄마가 연세가 많으셨나요?" 난 대답했다. "꽤요." 왜냐하면 정확한 나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의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감정이 메마른 인간인가? 하지만 가끔은 내 나이도 헷갈리는 걸.


2.

Then I fired four more times at the motionless body where the bullets lodged without leaving a trace. And it was like knocking four quick times on the door of unhappiness. (p. 60).

그리고 나는 미동도 없는 몸을 향해 네 번 더 총을 쐈고, 그 총알들은 흔적도 없이 몸에 박혀버렸다. 마치 불행이 네 번 잽싸게 문을 노크하는 것 같았다.


3.

On my way out I was even going to shake his hand, but just in time, I remembered that I had killed a man. (p. 64)

밖으로 나가는 길에 나는 심지어 그와 악수를 하려고까지 했지만, 때마침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고 했던 뫼르소. 아참, 나 좀 전에 살인을 저질렀지. 지금 수사를 받아야 하지. 악수를 할 상황이 아니지. 반 박자 뒤늦게 떠오른 생각들.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남자는 유죄인가? 악마인가? 사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마땅한가?


4.

I probably did love Maman, but that didn’t mean anything. (p. 65)

난 아마도 정말로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5.

As always, whenever I want to get rid of someone I’m not really listening to, I made it appear as if I agreed. (p. 69)

늘 그럿듯, 내가 정말로 귀기울여 듣고 있지 않은 사람을 빨리 보내고 싶을 때는 그냥 그 사람 말에 동의하는 척 했다.


6.
살인 재판인데도, 검사는 계속해서 그가 며칠 전 엄마의 장례 때 감정을 보이지 않은 걸 지적한다. 참다 못한 변호사가 검사에게 도대체 이 재판은 살인 재판이냐, 엄마의 장례 재판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검사가 대답하는데.

“Come now, is my client on trial for burying his mother or for killing a man?”

...

“I accuse this man of burying his mother with crime in his heart!” (p. 96)

"아니, 지금 제 의뢰인이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재판을 받는 겁니까, 아니면 살인으로 재판을 받는 겁니까?"

...

"이 남자는 범죄를 마음 속에 품고 어머니 장례를 치른 겁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라고 외치는 세상이라면, 마음 속에 범죄를 품은 게 죄는 아니잖아! 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마음 속에 범죄를 품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지?


7.

“Well, so I’m going to die.” Sooner than other people will, obviously. But everybody knows life isn’t worth living.

...

Since we’re all going to die, it’s obvious that when and how don’t matter. (p. 114)

"뭐, 그럼 난 죽겠군." 분명 다른 사람들 보다는 더 빨리. 하지만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어차피 다 죽는 거니까,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상관없어.
모두가 다 죽는 거라면, 언제 어떻게 죽는지가 중요하지.
어떤 게 옳을까?


제목: 이방인
원서 제목: The Stranger
출판사: 민음사
옮긴이: 김화영
저자: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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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포스팅 잘 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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