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27]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건축과 인문학의 하모니
전문가란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통찰력으로 오랜 기간 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전문가의 높은 식견은 감탄과 동경의 대상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대답을 내놓지만,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그들의 다른 대답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을 느끼고 인식의 확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자칫 전문가란 꼬리표는 일반 대중들에게 외계어를 구사하는 외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문적인 용어의 남발이 대표적이다.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희귀해지는, 촌극이 펼쳐진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작업이다. 지식의 저주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알고 있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전문가와 마주하게 된다. 진짜 전문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시간을 도둑맞는다. 저자 유현준은 도둑이다.
유현준 작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런 면에서 꽤 성공적인 베스트셀러다. 건축과 도시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통찰력 있는 텍스트를 보여준다. 이 책의 부제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처럼 인문적 통찰력이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보다 더 많은 인문적 시선이 생겼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사실 그전에는 도시와 건축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 책을 전후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책을 읽기 전 내 모습과 책을 읽은 후 내 모습이 달라지는 책이 좋은 책이라면, 유현준 저자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건축은 인문학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이란, 제각각의 모습을 가진 인간이 저마다 그려내는 무늬를 배움의 덩어리로 뭉쳐낸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의 다양성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인문학적 측면은, 훌륭한 건축물에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관계,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과학 기술까지 나열하자면 무한하다. 건축은 종합 예술이자 3차원 공간에 펼쳐지는 인문학 그 자체인 것이다.
책에 소개된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주변 환경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다. “한남동의 ‘리움’ 박물관을 보자. 그 박물관의 건물들은 훌륭한 건축물들이다. 디자인도 개성 있고 시공도 훌륭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파리에 옮겨졌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거기서도 계속 훌륭한 건축물로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이 말은 이 건축물은 주변의 환경과 연관을 맺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진정 훌륭한 건축 디자인은 어느 한 땅에서는 훌륭하게 작동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권투선수는 링 위에서, 스케이트 선수는 얼음 위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낸다. 권투선수가 얼음 위에서 할만한 스포츠는 많지 않다. 스케이트 선수도 링 위에서는 어색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각자가 모두 잘 지어진 건축물과 동의어다.
공간 개념을 빌려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사는 카푸어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카푸어란 말에 허영심과 같은 단어로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빌려보면 흥미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 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식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는 편이다.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빗 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노래방, PC방처럼 방 문화가 많은 이유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자동차가 개인에게 선사하는 가치는 수억 원이 필요한 집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더욱이 집은 한 장소에만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창밖의 풍경이 동일하지만, 자동차의 이동성은 창밖의 풍경을 무궁무진한 외부의 세계와 언제든 새롭게 이어주는 환경을 제공한다. 가성비 좋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다채로운 풍경은 완벽한 자유의 공간이자 인간의 관음적 욕구까지 채워준다. 이처럼 공간이란 개념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지금도 특별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경쟁적으로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인류가 모두 똑같은 서구식 현대인의 삶을 사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는데 치명적인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는 이 책의 끝머리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동질성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옛것을 불도저로 철저하게 말살시켜버리고 그 위에 개성이 실종된 각진 아파트 단지들이 지어지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가집이 아닌, 양반이 살던 한옥집이 현재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을 대표하듯이, 이러한 대단지 아파트들이 잘 보존되고 관리된다면 먼 미래에 한국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지고 더 많은 이해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밑바탕이 될 때, 자연스럽게 다양성은 존중되고 보존될 수 있다. 저자는 건축에 대한 소통을 독자들에게 겸손하게 부탁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실종이다. 건축의 이름을 빌려 다양성에 대한 문제가 더욱 조명 받기를 희망한다.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건축의 창으로 사회를 통찰하고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분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꽤 잘 지어진 책이다.
책 속의 한 줄
건물이 들어서는 대지는
전 지구상에서 같은 조건을 가진 장소가
하나도 없다.
-Page.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