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34]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게임에는 확장판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령 <스타크래프트 1:오리지널>이 있으면, 이러한 오리지널 버전에 몇 가지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발매하는 방식이 확장판인 것이다. 기존 게임의 스탠스를 유지한 채 새로운 컨텐츠를 부여한다. 때문에 확장판의 구성요소가 조금은 더 풍부하다. 그렇게 탄생한 게임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확장판 <스타크래프트 1:브루드워>다. 오리지널과 브루드워의 본판은 똑같지만, 단지 구성 요소들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격 또한 본편에 비해 확장판이 훨씬 저렴한데, 본편에서 일 부분만 업데이트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게임에는 확장판이라는 개념이 있으며, 이는 본편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함과 동시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게임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리는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확장판은 확장판일 뿐 <스타크래프트 2>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확장판이 새로운 시리즈인 척 뻔뻔한 모습으로 가격을 후려친다면, 분노하는 고객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같은 저자의 책을 연속으로 읽는 경우가 있다. 기존에 읽었던 책이 너무 재미있었던 경우다.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해당 저자에게 받았던 충격과 재미를 또 한 번 갈구한다. 기존에 읽었던 텍스트와 다른 내용을 기대하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책의 경우 개정판은 있을지언정, 게임처럼 확장판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가격은 결코 확장판 가격 정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페이지 수를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책은 확장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속으로 짚어든 책의 내용이 확장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격만 본편과 동일하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 유현준의 전작<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후속작 <어디서 살 것인가>가 바로 이런 경우다. 책의 타이틀도 엇비슷해 보인다. 후속작 <어디서 살 것인가>는 새로운 시리즈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확장판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복되는 내용과 비슷한 맥락의 통찰력은 왜 동일한 가격을 주고 글자와 표지만 다른 책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격은 2권의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1.5권 수준이다.(어쩌면 1.3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란 말이 있다. 자본주의 시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씁쓸한 이야기다. 어쩌면 이 책에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점은, 건축 리모델링을 재즈 음악과 비교한 점이다. 재즈의 묘미는 즉흥연주다. 같은 곡을 수없이 연주해도 절대로 같은 연주가 반복되지 않는다. 각 악기 파트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즉흥적으로 연주를 이어나간다. 때문에 앞사람의 연주를 잘 듣고 그 사람이 연주한 리듬과 코드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만일 앞사람과 전혀 다른 엉뚱한 리듬이나 코드로 연주한다면 더 이상 재즈도 음악도 아닌 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것과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이 중요한 것이다. 건축 리모델링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건축가가 지어놓은 틀에 맞춰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서 리모델링 해야 하는 것이다. 재즈의 경우처럼 갑자기 엉뚱한 코드나 리듬을 연주할 수 없듯이, 리모델링 역시 이전 건축가가 만들어놓은 제약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펼쳐야 한다. 훌륭한 연주자나 건축가는 어느 정도 수반되는 제약 속에서 기존의 것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추구하는 탁월함을 갖춘 자들이다.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경계의 모호함이다.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인간이 등장하고 문명이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구분을 짓기 시작한다. 저자 유현준은 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도시를 구분 짓는 경계들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소통하는 도시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더욱 소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웃 지역과 걷고 싶은 거리로 연결될 때 지역 간 경계는 모호해지고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소통을 늘리고 지역의 개성을 찾아가면서 지역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고 ‘우리의 도시’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면 좋겠다.”
분절된 서로 다른 것들을 이어주는 것들은 역사적 발자취를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소통 수단인 언어의 탄생이 그렇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준다. 종교, 자동차, 항공, 철도, 인터넷, SNS, IOT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연결하는 행위가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책에 소개된 계단, 창문, 엘리베이터, 징검다리 등과 같은 건축 요소도 본질적으로 연결과 지혜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결되어 소통이 자주 일어날수록 우리 도시는 다양한 모습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도시가 될 것이다. 즉, 연결은 다양성의 인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 집중한다.
아쉽다. 기획 단계부터 큰 그림을 그려서 1권과 2권의 주제를 적절하게 구분하여 집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도시와 건축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인 <어디서 살 것인가>는 전작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둘 중 굳이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훨씬 매력적인 책이다. 최근 서점에 가보니 두 권을 묶어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가격은 그대로다. 개인적으로 불편한 마음이 든다.
좋은 책은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넘친다. 반면 상대적으로 형펀 없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시대다. 즉,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진짜만 건네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화목한 도시, 화목한 사회, 화목한 나라는 결국 화목한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책 속의 한 줄
건축 리모델링은 재즈와 같다. 이름 모르는 과거의 어떤 건축가가 수십 년 전에 디자인한 건물 위에 현재의 건축가가 이어서 연주하는 것이 리모델링이다. 앞선 사람이 펼쳐 놓은 기본 멜로디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음을 펼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과거의 것을 따라만 가서도 안 된다. 제약 가운데서 자신의 개성을 펼쳐야 한다.
-Page.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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