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 너는 너여야만 한다.

누구나 성공과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한다. 성공과 실패는 객관적일지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축적하는 작업은 개인의 영역이다. 개인의 주관에 의해 해석된 사건 사고들은 축적되며 한 사람의 의식 속에 거대한 성이 되기도 하고, 만리장성이 되기도 하고, 모래성이 되기도 한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법한 이 거대한 성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 형체의 크기를 가늠할 길이 없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이 단단하고 거대한 성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이질적인 것들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나아가 이질적인 모든 것들을 적군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완전한 논리와 빈틈없는 전략으로 내부로 침입해 오는 이질적인 것들을 궤멸시키려고 노력한다. 나의 논리를 넘어설 수 없다면 그것은 너의 논리와 전략이 부족한 것이고, 그것은 틀린 것이 된다. 자신의 이해 안에서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을 품을 수 있는 용기와 여유는 없다. 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너는 나여야만 한다.

이렇게 거대한 성을 구축한 자들에게 화해와 타협은 곧 자신에 대한 부정이다. 공존의 가치는 결코 성립하지 못한다. 각자의 성을 구축하고 서로의 모습을 인정해줄 수 있는 공감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하나의 거대한 통일된 성만이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상대를 굴복시키고 종속시켜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폭군의 모습으로 이질적인 모든 것들을 틀림으로 규정한다. 너는 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삶은 두 가지 방향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거대한 성을 건축해 나가는 방향. 오랜 기간 경험에 의한 자신만의 단단한 성을 건축하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옳고 그름, 적군과 아군처럼 모든 가치 판단을 수행한다. 외부의 것들은 차단되고 성 안의 것들은 밖으로 밖으로 진군을 한다. 정복하지 못하면 정복당하는 사유의 방식은 더욱 견고한 건축 기술을 요구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향은 언제나 무너져 내려버리는 모래성처럼 해체를 지향해 나가는 방향. 완성될 때마다 무너져 버리는 만다라처럼, 건축적 미학에 의미를 두지 않고 해체적 관점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축성술이 아닌 해체술이다. 그어떤 도그마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기존의 것들에 대한 해체를 시도한다.

너는 나여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너는 너여야만 한다. 그렇다. 최소한 이 지점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무언가를 꺼낼 수 있는 용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