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늘어놓기 - 고양이와 산책 다니느라 바빠

in #kr-diary5 months ago

 일기를 못 썼다.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다. 누가 그건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 한다면 평소에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일단 나는 쓰고 있는 다른 글이 있고, 남는 시간에 일기를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끝까지 마칠 수 없었을 뿐이다. 가끔 이렇다. 가끔 손가락에 추가 달린 것처럼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잘 움직일 때는 의식보다 빨라서 내 손가락이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 나조차도 모를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분명 정신은 온전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손가락은 그걸 옮길 힘이 없다. 이유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이따금 그럴 때가 있고 마음만 앞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통은 없다. 내 능력 밖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억지로 써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고 나름의 정취가 있지만, 이제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이유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별 이유 없이 순수하게 육신의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수면의 질이 썩 좋지 않다. 환경의 문제도 있고 아마 몇 가지 감정들(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 와중에도 다양한 활동까지 하고 있다. 일단 꾸준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꽤 체력을 요구하는 몸 움직임이 포함된 활동 둘, 그리고 고양이와의 산책도 일주일에 서너번은 하고 있다. 하네스와 몸줄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배낭 속에 넣어 앞으로 메고 다닌다. 좌우에는 투명한 창이 있고 위로는 머리를 내밀 수 있는 이 배낭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친화적으로 만들어진 배낭이라 메고 다니는 게 편하지 않았다. 원래도 배낭 무게를 합쳐 10kg이니 가볍게 훌쩍 들고 다닐 무게가 아니고 구조적으로도 편하지 않은데 그걸 등에 받쳐서 메는 게 아니라 앞으로 메고 있기까지 하니 어깨가 고스란히 무게를 다 받아내야 한다. 덕분에 처음에는 어깨에 통증이 꽤 심했지만 이제 꽤 적응된 모양인지 이제 별 느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족한 수면 와중에도 다양한 신체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글을 마무리 할 체력이 부족한 것이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고양이와의 외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해야겠는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녀석은 꽤 똘똘하기 때문에 내가 외투를 입으면 내가 외출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내가 실내에서 알몸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옷을 갈아입는 경우도 많은데 그 때는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외투를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겨울에는 내가 외출한다는 사실을 녀석이 모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덕분에 날씨가 추워지면 나는 녀석을 혼자 두고 나오는 게 부쩍 어려워진다.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녀석을 외면할 수 없어서 몇 번 같이 나갔더니, 이제 내가 외투를 입고 눈치만 줘도 문 앞을 지키는 대신 알아서 펄쩍 뛰어 배낭 안에 들어가서 기다린다. 나는 그렇게 똘똘한 행동에는 언제나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자주 데리고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면, 커다란 배낭을 앞으로 메고 위로는 고양이가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워낙 특이한 모양새인지 사람들의 이목이 잔뜩 끌린다. "고양이네?"하는 반응이 가장 흔하다. 당연히 개라고 생각했다며 다가와서는 녀석의 외견을 칭찬한다. 과감하게 쓰다듬어도 괜찮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은 그것보다 한층 더 적극적인 행인도 있었는데 운전자가 갑자기 골목에 들어와서 차를 세우더니 창문을 내리고 내 가방의 구매처를 묻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평소 내가 쓰는 물건들 영업을 잘 하는데, 영업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니... 가방의 장단점과 판매처를 알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명함을 만드는 게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역동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겠는가? 내가 언제라도 떠드는 걸 마다하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이건 정말로, 피곤해서 그런 거야. 피곤해서. 고양이도 나갔다 돌아오면 뻗어버리잖아. 그런데도 오늘은 나름 힘을 내고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기뻐.

ps. 피곤하고 잠을 설치지만 마음에는 아무 타격이 없다. 나는 강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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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어디 가셨나 궁금했는데 무척 바쁘셨군요. 인정인정!
뜻밖의 영업까지 하시고ㅋㅋㅋ
아 고양이 배낭과 킴리님 상상만해도 너무 귀여운데 10kg라니 ...;; 너무 무거워요. 어제는 꿀잠자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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