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민족이 고대 중국에 끼친 영향 1
안녕하세요?
역사(아시아,외국)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joey0513 입니다.
앞으로 한민족기원 과 주변국(중국,일본 )정세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한민족(우리의 조상)은 아시아의 중심인 민족이고 뿌리입니다.※
위 그림은 중국인들은 고궁(古宮)이라고 부르고,
우리들에게는 자금성(紫禁城)이라고 알려져 있는 베이징의 왕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중국인들의 기원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셈의 장자들인 엘람과 앗수르 가문이 동방으로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셈의 장막에 거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노아 할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야벳 가문의 일부가 따라 나섰습니다.
또한 함의 맏아들인 구스 가문의 일부도 셈족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야벳이 주축을 이루고 구스도 일부 섞인, 그리고 셈 가문 여자들을 며느리들로 맞아들여
다양하게 섞여버린 그들이 지금의 중국인들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 요의 아버지는 곡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곡은 아벳의 아들인 곡, 마곡과 연결이 됩니다.
또 서전요전에 보면 요임금의 대를 이은 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순의 아비는 고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수는 함의 아들 구스와 연결되고, 구스의 아들이 순이 됨으로써,
고대중국의 왕조와 성경의 족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대 중국의 문화를 잠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크게 두 개의 문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앙소문화권(仰韶文化圈)과 용산문화권(龍山文化圈) 2 가지입니다.
앙소문화권(仰韶文化圈)은 서남문화권(西南文化圈)이라고도 하는데 설립자는 중국인 스스로이고,
중국의 남쪽에 있으며, 하남성 앙소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는 소규모이고 원시적이고 상당히 시시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대부분의 훌륭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용산문화권(龍山文化圈)은 놀랍게도 설립자가
동방족 혹은 동이족이라고 불리는 고대 한국인이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용산문화권은 다른 말로 동방문화권(東方文化圈)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심은 산동반도의 용산현 근처입니다.
용산문화권은 중국문화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찬란했던 문화권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중국인 고고학자들이 밝힌 사실들입니다.
이러한 중국역사의 문화적 배경을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동이족들,
곧 한국인들이 도와줘서 그 기틀을 세웠구나 하는 것을 당장에 알 수 있습니다.
산동성의 용산문화권은 고대 동방으로부터 파견된 동방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파송된 동방족들을 '소호 금천(金天)씨'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인의 역사 기록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소호족의 거하던 곳은 중국대륙의 동해 바깥쪽에 있었는데, 바로 요동반도였으며,
거기서 들어와서 산동반도(山東半島)에 거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요동반도는 우리 땅이었습니다.
요동반도의 위치
요동에 거하던 동방족들이 중국인들을 도와 주다가 도와 주다가 끝이 없으니까, "에라, 안되겠다.
아예 중국에 들어가서 살면서 도와주자" 하고 산동반도로 들어가 살면서 돕게 된 것입니다.
그 산동반도 지역이 완전히 코리아타운으로 화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소호는 동쪽의 해 돋는 곳 (해가 돋을 때 동쪽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지요?) 금빛 하늘에서
왔다하는 의미에서 쇠 금(金)자 하늘 천(天)자로 금천(金天)씨가 된 것입니다.
"금천(金天) 땅에서 왔다"고 해서 이들은 금천(金天)이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중국으로 파견된 동방족 출신의 엘리트 지도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요를 중심으로 새 땅을 개척하기 위해 떠날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산동반도로 많이 따라갔던 것입니다.
아직 자립이 안 되고 기술도 부족하고 홍수가 나면 대책이 없었거든요.
그 모든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서 도왔던 것입니다.
요의 대를 이어 지도자가 된 순을 도와줬던 사람은 '부루(夫婁)'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루(夫婁)는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단군(檀君)의 아들이었고,
이 부루(夫婁)가 금천(金天)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천(金天)씨란 특정한 혈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을 통틀어 코리언(Korean)이라 하듯,
그 당시에 금천(金天)씨라 부른 것입니다.
산동반도에 파견된 소호 금천씨와 자손들은 모두 중국남방의 형제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한
하나님의 파수꾼들이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나라 명성황후 시절에 한반도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님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의료인으로, 혹은 기술자로 들어와서 병원도 짓고 기술도 가르치고 학교도 세우면서 신앙
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라 김유신 장군의 비석과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김유신은 헌원의 후예이고 소호 금천씨의 자손인데, 그는 가야 왕의 후손이므로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성도 그의 동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헌원입니다.
이 헌원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 이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후난,
즉 셈의 자손인 앗수르 가문의 족보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는 유적으로 보나 삼국사기로 보나 성경으로 보나 엘람 형님, 제사장 형님을 도와
행정과 정치, 경제, 군사 업무를 장악하고 있던 셈의 둘째 아들 집안인 정통 기마민족인 것이 가장 유력합니다.
즉, 소호 금천씨는 니므롯에 의해 밀려난 앗수르의 헌원의 직계자손이며 셈과 야벳과 함의 일부
형제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동방을 찾아서 대장정을 감행한 주도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위 지도를 보시면, 요동반도에 거하면서 중국인들을 도와주다가
아예 산동반도 근처로 들어와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고대 한국인들이었던 금천(金天)씨들이고, 그들이 신령한 장소로
지정해서 (아마 아라랏산을 형상화했겠지요) 정한 곳이 바로 태산이라는 지역입니다.
지금도 중국사람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곳이 바로 여기 태산이고, 중국 역사에 의하면
금천씨들, 즉 동방족들이 살던 곳이 바로 태산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산 바로 옆이 곡부입니다.
곡부는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중국 정신사에 매우 중요한 공자가 바로 곡부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그가 동방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00년경 사람입니다.
그 조상은 기원전 2000여년경에 여기 와서 살았고, 그 이후 공자가 태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의 문화도, 종교도, 정신세계도 거의 다 동방족이 이루었다는 사실을 중국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근래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에 빠져서
"황공하옵게도 우리가 어찌 대국인 중국을 가르쳤습니까? 우리가 중국에서부터 배워 온 것이지요."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숨기고, 지우고, 왜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의 역사책까지 쫓아 가서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의 역사책에는 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태산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중국의 역사에 보면 유명한 산이 다섯이 있습니다.
그 중에 태산이 가장 중요한 산이라 하여 오악지종(五岳之宗)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산의 정상은 완전히 성전(聖殿)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산의 정상에는 천상신(天上神), 곧 하늘 황제인 상제(上帝)신의 성전(聖殿)이 지어져 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지고 새로 세워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불교식,
유교식으로 건물모양이 변화되어 세워지게 되었을 뿐이지, '천상신부'라 하여 상제신을 섬기던 정
신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을 보면, 상제신을 섬기던 제사장 소호 금천(金天)씨의 무덤이 있습니다(아래).
소호 금천씨 무덤에는 그 아래의 그림과 같이 금천씨 상이 있습니다.
금천(金天)씨가 금(金)씨, 금(金)씨가 김(金)씨가 되어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姓)이 되었습니다.
역사이야기 잘 부탁합니다^^
흥미롭네요,잘읽고 갑니다
자금성에 다녀왔는데 이런 내용까지 몰랐습니다 잘봤어요!
보팅누르고가요~ 팔로우미
아시아의 모든민족은 한민족인 우리조상님들이 문화와 교육을 가르치고 전파했습니다. 지금은 주변강대국들이 역사를 왜곡해서 그렇치,,,꼭 제자리를 찾아 역사를 제대로 돌려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