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와 여당은 ‘꺼지지 않는 등대’를 다시 세울 셈인가
보수 양당은 내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효력이 사라지는 법안들을 정비해, 내일인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불과 얼마 전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불통과 위협의 정치로 찍어 누른 바 있다. 그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린 파업의 주요 쟁점이었던 화물차 안전운임제가 국회 본회의 처리 대상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본회의에서 다루기로 한 법안은 그 뿐만이 아니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는 특별연장근로제의 적용 유예를 연장하는 법안도 논의에 포함되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소위 ‘일몰제’로 사라질 예정이었던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8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노동악법의 수명연장을 결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부터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주 52시간 근무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 왔고, 심지어 언론과의 인터뷰(2021.7.19., 매일경제신문)에서는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노동자에게 한없이 잔혹했던 200년 전 산업혁명 초기의 악덕 공장주를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구시대적인 노동관이다. 대통령의 이토록 처참한 노동 인식에 장단을 맞추는 보수여당의 뜻대로 노동시간이 고무줄 늘어나듯 늘어난다면, 앞으로 다시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와 산업재해의 희생자가 될지 공포 섞인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규직과 달리 고용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아 시시때때로 시작되고 끝나는 수많은 프로젝트 사업을 메뚜기 뛰듯 뛰어다녀야 하는 IT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왜곡된 산업 구조는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질적인 한국 IT 산업의 병폐다. 철마다 떠돌아 다녀야 하는 철새와 같이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개인사업자’라는 멍에를 쓴 채 노동자성 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체불도 민사상 채권 문제로 해결해야 하고, 갑작스런 해고도 계약파기에 대한 민사 다툼으로 싸워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약관계는 절대적이고 일방적으로 노동자에 불리하다. 시도때도 없이 던져지는 업무 속에서 IT노동자들의 건강과 영혼은 산산히 갈려나가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IT업계 사용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책임 방기를 기회삼아, 포괄임금제를 내세운 공짜 연장근로 강요 등 착취 관행을 멈출 줄을 모른다. ‘IT 노동시장의 특수성’의 맨얼굴은 이런 것이다. 법과 제도로 제약을 가하지 않으면 마치 마른 걸레를 짜듯 지친 IT노동자의 마지막 영혼까지 털어가며 일을 시키려 한다는 야만적 특수성 말이다.
자본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보수 여당은 스타트업 기업을 포함하는 IT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빌미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여왔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IT 노동시장의 특수성’이란 사실, 끝 모르고 초과착취의 방법만을 궁리하는 사용자들과 불평등한 계약관계 속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IT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어야 한다.
우리 IT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와 보수여당이 ‘IT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제멋대로 들먹이며 초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암흑의 시대로 뒷걸음질 치려는 퇴행적 태도에 깊은 유감은 물론 모욕감까지 느끼고 있다 ‘IT’가 벤처 창업과 일확천금의 신기루를 불러내는 주문처럼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 IT 벤처 산업의 밑바닥에는 ‘꺼지지 않는 구로의 등대’ 속에서 온 새벽을 에너지 드링크 빈 깡통과 함께 뒹굴며 끝나지 않는 야근 속에 스러져 간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넷마블에서 주 89시간을 일하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 불과 6년 전이다. 현장의 목소리와 투쟁으로 그나마 최악은 간신히 면하고 있던 IT업계의 노동 현실을 ‘등대가 꺼지지 않던 그 시절’로 돌려놓은 후 줄이을 수많은 IT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영정 앞에서 정부와 보수여당은 이태원 참사 때와 같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셈인가.
우리 IT노조(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와 IT노동자들은 ‘일몰제’ 연장을 논의하는 정부와 보수 양당을 강력히 규탄한다. ‘소상공인의 약자성’을 내세워 소규모 사업장에 8시간의 연장근로시간 적용을 가능케 하겠다는 주장은 소상공인의 영세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약자성을 비겁하게 가려버린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악질적이다.
우리 IT노조와 IT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시대 역행에 맞서, ‘일만 하다가 죽는 삶’을 거부하고 ‘인간다운 삶’을 지켜 내기 위해 당당히 나아갈 것이다.
2022년 12월 27일
전국정보경제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
원문 보기 : http://www.itunion.or.kr/xe/index.php?mid=NOTICE01&document_srl=1585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