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엌살림과 다도(茶道)

in #kr-newbi6 years ago (edited)

부지당(不知堂)의 차(茶)이야기 8

강좌 취소하고 도망치려 했다가 찻집 주인의 덫에 걸려 주저앉게 된 나는 어떻게 이를 풀어갈지 골머리를 앓게 되었습니다. 해서 먼저 생각할 시간을 벌기위해 참여한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요청에 따라 학생들은 각자 자기 소개와 참여 동기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이미 다른 차 선생들에게서 다도의 형식과 강의를 들어본 사람들이었고, 효당 스님의 제자가 왔다니까, 보다 심도 깊은 내용을 들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다구(茶具) 들을 챙겨 온 것 같으니, 모두 차 한 잔씩 내어 보시지요."
잘못하면 스승과 제자가 쌍으로 망신 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자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고 목도 축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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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청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부산히 움직여 보따리를 풀어 다구들을 꺼냈습니다. 찻잔을 꺼내 배열하고 다관(茶館)에 차를 넣고 도우미가 가져온 뜨거운 물을 받아 나름대로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모두 다도에 질난이들이 아닌가?'
그들의 움직이는 모습을 본 나는 내심 놀랐습니다. 차를 우리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아주 정갈하고 절제된 전문가 수준의 동작들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가 질려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제일 먼저 차를 우려낸 사람이 내 앞에 공손스럽게 차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난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입에 가져갔습니다. 그러자 녹차의 상큼한 향이 코끝에 스쳤고, 입안에 넣자 목구멍에 넘어갈 때까지 차향이 남아있었습니다. 연이어 다른 사람들도 차를 가져왔으므로 난 순서대로 그 차 맛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 그것들 모두 제 나름의 다른 맛과 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군. 어째서 같은 찻잎과 같은 물로 차를 우리고 있는데 맛들이 모두 다른 것이지. 그리고 다솔사에서 마셨던 차와 왜 다른 것이지?’

사실 난 다솔사 이외에서는 차를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 도시생활에 정신 팔려 살다가 산으로 들어갔으니, 당시 강의장에서 차맛을 본 것이 첫 경험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맛이 민감하게 내 혀끝에서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감이 잡히지 않아 난 그 답을 학생들에게 맡겨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자신이 우린 차를 서로 맛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소감을 들어 봅시다.”
그러자 각자가 차를 내어 그 맛을 서로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맛 품평대회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차 맛이란 물의 온도 조절과 다관 속에 차를 넣어두는 시간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같은 차 일지라도 사람마다 호불호(好不好)가 달라져 차(茶)가 기호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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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통해 녹차의 다양한 맛의 세계를 알게 되었지만 정작 효당의 차 세계와 이들이 연출하는 다도와 어떻게 다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 의문을 풀어주는 구원투수가 나타났습니다. 이상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남자 수강생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도를 배우러 간다니까 여자들 꼬시러 가느냐면서 놀렸습니다. 다도는 정말 여자들만 배우는 것인교?”
자리에 있었던 모두를 크게 웃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것은 내 의문을 풀어주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이 강의를 해야 되는지 놓고 매우 망서렸습니다. 저 친구 말처럼 다도 강좌는 사실 여성들에게는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짓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말에 놀란 표정이 되어 모든 동작들을 멈추었습니다. 난 뜸을 들이지 않고 드디어 차에 관한 내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찬스를 잡았으니까요.
“다도란 여성들의 부엌살림을 흉내 내보려는 남자들의 소꿉장난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구(茶具)들을 사용하여 찻잎을 우려 마신다음 씻어 보관해 두는 것과 식재료를 가지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하여 식기(食器)들을 자기 자리에 두는 행위와 다른 것이 무엇이지요?”
내 물음에 모두 할 말을 잃고 있는 것을 보면서 칼을 뺀 마당에 확실하게 기를 죽여놓아야 했습니다.

“보십시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 등 차를 즐겼던 선비들이 대부분 남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우리는 예로부터 부엌을 생명을 살리는 약국(藥局)으로 보았습니다. 식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나누어 주려면 식재료를 엄선해야 하고, 각자의 노하우로 맛과 향을 내어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먹거리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고, 식구들의 생명을 살리는 예술과 같습니다. 이같은 생활의 도(道)를 알게 된 선비들이 차(茶)를 만나게 되자 이를 재료삼아 부엌살림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한국의 차도(茶道)가 생겨난 이유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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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장에 모두 감동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시 남자 수강생 이상명씨가 서둘러 끼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자들에게만 주로 다도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교?”
난 잠시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답변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여자들인 수강생들 앞에서 자칫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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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라 ㅋㅋ서양영화에서만 자주 본것같았는데 한국도 있었군요ㅎㅎ 재미있는정보 고맙습니다

다음 편에는 다도의 숨겨진 진실을 전할 것입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ㅡ. ^^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오치님도 복 마니 받는 한해가 되시길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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