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8)] 다이아몬드의 우화 - 경제 토론의 장미칼
안녕하십니까? @jin90g입니다. 오늘은 상품가치 논쟁에 대해서 글을 좀 써 봤습니다. 어쩌면 상품가치와 관련된 논쟁은 경제학에서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주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저를 포함한 일반대중, 그리고 경제를 주제로 철학을 한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전기 경제학자들의 가치 논쟁이 철학적으로 다룰 측면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이 끝나면, 몇몇 담론과 개념을 갖고 특별편을 진행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댓글에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지면 그것도 별 의미없겠지만요.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4장. 무엇이 교환되는가? 바스티아의 가치 이론
우리는 앞서 바스티아가 교환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적대적 해석을 가치 이론에 대한 오해 탓으로 돌렸다는 것을 언급했다. 가치 이론은 무엇이 교환되는가에 대한 이론인데, 사람들이 다양한 경제학자들의 가치 이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치 이론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노력의 문제이다. 교환은 노력의 전달 가능성으로 성립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노력을 교환하며, 상품의 가치는 우리가 쏟은 노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상품의 가치가 연동되지 않는 사례들을 쉽게 발견한다. 게다가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 가격을 수요와 공급으로, 자연 가격을 지대·이자·임금에 대한 자연율로 설명한 이래, 많은 경제학자들이 가치 이론을 두고 논쟁했다. 바스티아는 다이아몬드의 문제를 예시로 당대 경제학자들 사이의 난제를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서로 다투는 학자들이 가치 이론을 설명하고 반박하기 위해 공통으로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이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를 비롯한 영국 학파가 ‘가치가 노동에 있다’고 주장하면, 장 바티스트 세와 프랑스 학파는 다이아몬드를 제시한다. 비록 누군가가 행운에 의해 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주웠다 해도, 다이아몬드는 시장에서 막대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프랑스 학파가 ‘가치가 유용성에 있다’고 주장하면, 영국 학파는 공기·빛·물과 함께 또 다시 다이아몬드를 제시한다. 공기·빛 등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유용성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은 다이아몬드이다.
별난 영국 경제학자 시니어(Senior)가 희소성을 말하면, 우리는 삼류 화가의 그림 한 폭과 함께 또 다시 다이아몬드를 제시할 수 있다. 그 작품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이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다. 경제학자들은 다이아몬드의 문제로 끝없이 논쟁하고, 논쟁에 지친 ‘착한사람 자크’는 신께서 자신의 작품에, 다시 말해 다이아몬드의 물질성에 가치를 부여했다고 믿기로 타협한다.
다이아몬드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주와 자본가들이 불로소득을 챙기며 노동자들의 몫을 약탈한다고 비난한다. 유용성을 가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몫의 임금과 이윤이 유명 배우 라셸 양의 연기가 가져가는 몫보다 적다는 것에 분노한다. 희소성을 논하는 삼류 화가는 자신의 작품에 한 푼도 쓰지 않는 대중들을 교양 없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가치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약탈당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물론 실제적인 약탈과 그 피해는 사회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가치 이론에 대한 오해는 당한 적 없는 약탈과 피해를 실제적인 약탈에 더한다. 사람들은 없는 피해를 보상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실제로 약탈하기 시작한다. 불명료한 가치 이론의 결과는 정치경제적 진리와 정의의 파멸이며, 따라서 가치 이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도 정치경제학이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이다.
- 서비스-가치 이론
앞서 우리는 다이아몬드의 문제를 통해 상품의 가격, 다시 말해 가치가 유용성이나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였다. 그 이유는 가치가 교환에 의해 태어나기 때문이다. 가치는 비교, 평가, 측정을 내포한다. 평가하려면 같은 단위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의 유시민과 암호화폐 논쟁 2편 가치척도 참고) 그런데 인간의 욕구와 노력은 무한정하고 다채롭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같은 성질과 관계를 가질 수 없고, 측정될 수 없다.
그런데 바스티아에 따르면 교환은 상품과 서비스를 두고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관계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상품이라도 일단 교환되고 나면, 이 교환이라는 관계가 상품들을 하나의 관계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이 교환된 이후에 비로소 생겨난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가치’를 ‘교환되는 두 서비스의 관계’ 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때 교환이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일어난 경우, 교환된 두 서비스는 서로 등가이다.
가치가 상품의 유용성에 비례하지 않는 이유는 상품을 이루는 유용성 가운데 무상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무상 유용성은 인간의 노력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자연의 힘과 재료는 태초부터 거기 있었으며, 사방에 흩어져있었고, 우리는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자연의 유용성을 사용해왔다. 말하자면 무상 유용성은 신의 은총이다.
그런데 교환의 목적은 노력을 절약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 유용성은 비교·평가 대상이 아니다. 비교·평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 유용성은 교환 비례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의 무상 유용성은 가치 평가에서 통분되어 사라진다. 무상 유용성은 여전히 쓸모 있지만, 교환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가치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교환되는 것은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 상품을 구성하는 유상 유용성의 부분, 다시 말해 서비스(이바지, 도움)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가치는 서비스 생산에 투입한 노력에도 비례하지 않는다. 가치는 교환에서 생겨나는데, 교환의 일반적 특성이자 목적은 보다 적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만족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환 속에서 우리가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도와주는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도움 받는 노력, 우리가 서비스를 받았을 때 절약할 수 있는 노력이다.
도움 받아 절약할 수 있는 노력은 욕망, 능력, 희소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평가된다. 우리가 서비스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장애물을 얼마나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것이 객관적인 성질이 아니라 단지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치는 주관적이다. 이는 가치가 우리의 비교·평가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라는 뜻이지, 그것이 쾌락이나 만족과 같은 주관적이고 의식적인 성질이라는 뜻은 아니다.
바스티아의 서비스-가치 이론은 다이아몬드의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한다. 우리가 동굴에서 우연히 다이아몬드를 줍는다면, 다이아몬드는 자연에서 오는 미심쩍은 분량의 무상 유용성과 우리가 유상으로 지불한 행운의 1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반면에 만약 누군가가 행운에 기대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가지려 한다면, 그는 광산 채굴 등으로 10년 치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의 노고는 헛수고가 될 지도 모른다.
이제 어느 한 부자가 사랑을 이유로든, 혹은 허영을 이유로든, 아니면 예술적 취미활동을 이유로든 간에,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려 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우리가 부자에게 다이아몬드를 양도한다면, 미심쩍은 무상 유용성은 누구든지 무상으로 누리기 때문에 양도로 계산되지 않으며, 오직 행운의 1분만이 우리로부터 부자에게 양도된다. 그러나 우리가 부자에게 주는 1분짜리 도움은, 부자가 몸소 지불해야하는 10년의 노력을 절약해준다. 우리와 부자는 다채로운 요소를 검토하며 자유롭게 흥정·비교·판단할 수 있다. 마침내 우리는 부자의 10년 치 노력을 절약해주는 대가로, 우리의 10년 치 노력을 절약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부자는 우리의 10년 치 노력을 절약해줘야 한다.
그런데 부자는 자연의 힘을 끌어올 수 있는 자본과 도구 그리고 비축 식량을 저축해두었기에, 적은 노력만으로 많은 유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제공한 행운의 1분으로 부자가 10년 치 노력을 절약한 것처럼, 부자가 제공하는 약간의 노력만으로 우리는 10년 치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와 가치가 서로 상반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부는 유용성의 총합이다. 유용성은 만족으로 측정되고 평가된다. 반면에 가치는 장애물에서 태어난다.
- 우리들 각자가 맛보는 서비스는 장애물, 욕구, 고통을 구실로 제공하는 것이다. 의사는 병 때문에, 공장주는 추위 때문에, 운송인은 거리 때문에, 변호사는 불공정 때문에, 군인은 나라의 위험 때문에 그렇다. <프레데릭 바스티아 / 경제적 조화>
만족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었다면, 인간은 자연의 무상 유용성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교환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인간은 노력 없이 만족을 얻을 수 없고, 교환을 통해 노력을 절약하지 않고서는 생존·번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장애물이 증대할수록 가치도 증대한다. 가치 증대는 같은 만족을 얻기 위해 전보다 많이 노력해야함을 뜻한다. 상품 가치의 감소는 보다 적은 노력으로 같은 만족을, 같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부와 가치, 유용성과 가치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며, 노력과 가치 또한 유용성과 가치의 측면에서 세련되게 구분되어야 한다.
한편 서비스-가치 이론(이바지-가치 이론)은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가치는 노동에 의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투입한 노동이 아니라 절약되는 노동으로 평가된다. 유용성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몫이 아닌 인간의 몫만이 가질 수 있다. 희소성은 자주 가치를 증가시킨다. 희소성은 우리가 교환에 의지하지 않을 때 직접 지불해야하는 노력, 교환 속에서 타인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 노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관적 판단은 가치 형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판단은 오직 유상 유용성을 대상으로 할 때, 그리고 절약되는 노력을 대상으로 할 때 가치 형성에 기여한다. 이처럼 바스티아의 서비스-가치 이론은 다이아몬드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며, 다른 경제학자들의 가치 이론들을 하나의 원리로 종합한다.
<다음화 예고>
상품가치를 "서비스(도움, 이바지)" 개념으로 설명한 프레데릭 바스티아.
그러나 사람들은 자본 거래에 이자가 따라붙는 것을 더러
"불로소득"이라고 비판한다...
비록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지불하는 형형색색의 노력에 가치가 매겨진다는 그는
자본과 이자에 대한 이 공격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자본과 이자 개념에서 숨겨진 시간의 거래
물물교환이 머나먼 두 장소를 이어주듯
과거와 미래의 교환을 이어라!
보다 저 너머로
Plus Ultra!
역시 훌륭한 글이군요. 리스팀 갑니다!
논문 짤라붙이면서 이런 칭찬 듣는게 민망하기도 합니다만.... 칭찬 감사합니다. / 나중에 뵐 여유가 생긴다면 이 편에서 '가치의 주관성/상대성이 의미하는 바'가.. 오스트리아학파에서 가치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고 말할때의 의미와 어떤 점에서 닮았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 배경과 토대가
어떻게 다른지 가볍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훌륭한 글입니다.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의문의 풀보팅 당첨!
!!!!!!!!!!!!!!!!!!!!!!
가치에 관해 생각해볼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흠...
예나 지금이나 그렇듯 '가치'라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가지 풍부한 뜻을 가리킵니다. 그 중에는 서로 전혀 상관없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뜻도 있죠. / 저는 정치경제학(고전 경제학) 을 볼때. '가치value'는 '값어치', 다시 말해 '가격'으로 이해합니다. 바스티아도 그렇게 같은 뜻으로 썼죠... 그리고 '유용성utility'은 번역하면 '쓸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 자본론에서는 이걸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라고 같은 이름을 줬는데... 제 글에서는 보시다시피 성질이 달라서 구분가능하고.. 오히려 반대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르크스 자본론의 가치 개념이 실재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 오해하기 쉽게 말이죠..)
이런것과 별개로 우리가 '도덕적 가치', '미적 가치'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은데... 이런 경우 이것들은 실상 경제학에서의 가치 라는 말과 공통된 것이 거의 없다시피하죠... 다른 원리에서 다른 뜻으로 설명해야 하고.... 만약 정치경제학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면 보다 어울리는 다른 이름을 줘여 할 것입니다.
그냥 구식으로 '아름다움' '선함' 등으로 부르는 것도 될 것 같습니다. ^^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정성스런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신경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