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초식남이 되었나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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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에서 회식하는 날, 사람들이 묻는다.

"왜 고기 안 드세요?"
"채식 하거든요."

그렇다. 나는 문자 그대로 초식남이다. 소, 돼지, 닭 등 육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다. 계란, 우유 역시 마찬가지다. 치즈는 가능하면 비건 치즈를 먹는다. 가끔 먹는 해산물은 주로 멸치육수 들어간 국물류다. 이건 먹고싶어서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사회 생활을 위해서다.

나도 한 때는 육식남이었다. 불판에 잘 구워진 도톰한 삼겹살의 육즙이 좋았었다. 마장동에서 기름진 소고기를 부담 없이 먹을 때 행복했다. 치맥은 두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던 내가 육식을 끊었다. 내 몸을 위해서다


고기를 꼭 먹어야 건강해지는가? 반대로 채식하면 건강해지는가? 두 상반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자신은 없다. 두질문에 대한 공통된 답을 내리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다.

확실한건 나는 고기는 좋아했지만 내 몸은 고기를 거부했다. 삼겹살을 먹으면 입 주변에 모기에 물린 것처럼 뭐가 나거나, 상추쌈을 곁들이면 예외 없이 설사하기 일쑤였다. 소고기를 많이 먹은 다음날은 대변의 양이 너무 적어 의아할 때가 많았다. 치킨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어 몸이 부대껴 잠을 쉽게 들지 못했다. 뱃살은 나이들수록 늘어만 갔다. 이렇게 30년이 지나도록 내 몸은 고기로 인해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을 바꾼다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웬만큼 독하게 마음먹지 않고서야 실천하기 어렵다. 하필 사는 곳도 서울의 유명한 돼지갈비 골목 근처다. 출퇴근길 도처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고깃집에만 고기가 있는게 아니다. 점심 때 먹는 식당 음식에도 대부분 고기가 들어 있다. 혹은 고기 육수가 들어 있다. 그야말로 고기 천국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고깃집 벽면에 붙어있는 돼지도 웃고 있다.

고깃집에서 웃고 있는 돼지는 사실 울고 있다


고기 먹던 시절에는 별로 게의치 않았다.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하지만 채식을 하고나서 많은 고기집을 볼때면 의문이 생긴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단지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희생되고 있을까. 결국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유통되는 고기의 대부분은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이 생산되고 있다. 비좁은 곳에서 가축을 키우고, 살만 찌운채 어린나이에 도축한다. 넓은 초원에서 방목해서 키웠다 한들 결국 도축 이후의 과정은 자동차 생산 공정과 다를게 없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애써 부인한채 살아간다. 윤리의 잣대를 어디까지 들이대야할지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와 지근거리에 살아가고 있는 가축을 먹는건 심적으로 불편하기 그지없다.

강아지를 키우다보면 놀랄 때가 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특히 그렇다. 강아지가 사람같을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동물같은 때가 있다. 내가 희노애락을 느끼는 것처럼 키우는 강아지도 비슷한 감정을 보인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도 무리를 이루고, 모성애를 갖는다. 이걸 보면서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처럼 고기를 먹는 한 환경파괴는 더 가속화 된다


소, 돼지, 닭 등 인간이 기르는 수 많은 가축들이 뿜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또한 이들이 먹어치우는 사료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땅이 파헤쳐지고 있다. 사료로 쓰일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 아마존 원시림이 파괴되고 있으며, 과도한 화학 비료 사용으로 토양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개발도상국에서 고기 소비량은 늘고 있다. 그러면서 더 많은 가축을 키우기 위한 자연파괴행위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원시림에 살던 힘 없는 동물들이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고기반찬이 그립지 않다


이런 사실들을 알면서도 육식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아는 것과 행동이 다른 삶은 어느 순간 마음에 족쇄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육식을 끊자 부모님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을 설득하는데도, 그들의 시선도 부담됐다. 식습관을 바꾸는게 별게 아닌게 아니라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용기와 결단 뒤엔 삶의 방향이 바뀐다. 순응하며 살아왔던 인생에서 식습관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내 의식에 큰 전환이 일어났다.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게 왜 중요한지 점점 더 알게 되었다. 기계같이 차가울 때가 많았던 내가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면서 수확하는 기쁨을 느끼며, 새벽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는걸 느낀다.

당장 변화를 주고 싶다면 고기를 끊어 보라. 초식인간의 세계는 더 지속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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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삶이죠 ㅎㅎ 먹는것에 따라서 성격도 변화한다고 얼핏 들은거 같은데 정말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요?

원래 성격은 쉽게 변하진 않는거 같습니다^^;
다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다보니 정신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자칫하다 다시 휩쓸릴 수 있어서요.
채식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까탈스럽다'인데, 반은 공감이 가네요. 저 역시 먹는거에 민감해지다 보니 밖에서 사먹을 때 종업원에게 종종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습니다.ㅎ

정말 대단 하시네여~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는 넘 힘들어요. ㅠㅠ~
채식을 하다보면 성격, 체질 등등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긴해요.

넷플릭스에서 'What the health'라는 다큐멘터리 한 번 보시는걸 권해드려요.
실천하시는데 도움 될겁니다 ^^

채식 후 체질은 훨씬 건강해졌어요. 소화불량, 변비로 더이상 고생하지 않습니다.ㅎ

신념있게 지켜가시는 모습이 멋지네요.
채식만 하게되면 영양소가 골고루 섭취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는 고기 없으면 밥을 못먹는데..

동물들이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영양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생선에 있는 오메가3도 아마씨, 호두에 들어있고요. 비타민B12는 동물에만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 또한 반박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훈자족이라고 2천년 동안 거의 채식만을 한 부족이 있는데 이들에게서 B12가 부족하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네요 :)

초식남이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왕 하시는 김에 동물 복지 못지 않게 식물 복지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을 거 같아요.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경외감이랄까요? ㅎ

물론이죠. 식물이 살아가는 토양이 너무 황폐화되가고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결국 우리에게 다 돌아올텐데요...

공기 물 흙...모두가 서로 연결되듯이 맞팔합니다.

채식 글 보고서 들어왔네요
오렌세월 길냥이와 생활하면서
동물도 인간과 다를바 없다는것을 깨달은후부터
그들을 먹는 다는건 죄의식이 들어
지금은 어쩌다 한번 먹으면 몸과 마음이 불편해서 힘이드네요 ~~

반가워요! 채식하시나요? 저는 초반엔 고기 굽는 냄새에 다시 이끌리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냄새조차 피하고 싶습니다.

아직 100%는 못되고 외식할때 조금 먹어요
80% 정도 하고 있어요
100% 해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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