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in #kr6 years ago (edited)

한 때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지식에 대한 반응이 "답정너"라는 의견이 많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아는것을 이야기 했을 때의 반론들이
내가 설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더욱 내 기준에서의 사실과 의견을 말하고
그들을 설득했고, 그 기준에서 더더욱 그들에게 "답정너"가 되어갔다.
내가 틀리고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듣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말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겉과 속이 다르게 공감하는게 진심으로 다가갈리가 없겠지만
알고 있어도 모르는척 하고, 듣고 알려달라 하고,
그러면 아는거마저 모르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안다는걸 설명하기 위해 좀 더 깊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재수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냥 모르는척 하는게 속은 정말 편하다.

있는 그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알면 아는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모름을 얕잡아보지 않는 사람
상상속의 잣대로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
열려있고 들으려하는 사람에게 우위에 서서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
이런 기준도 저마다 다르기에 인간관계가 그리도 힘들어지기도 하는 것이겠지.

그냥 보편타당하게 여겨지는 관습의 수준에서
적당히 아는것도 모르는척 맞춰주면서 지내는게 속이 편하긴 한데

어떻게든 설득을 시키려는게 답정너일까?
답정너라는 프레임안에 갇혀 이야기도 안하는 사람이 답정너일까?

내가 옳고 그를수도 있고,
내가 알고 모를수도 있음에
꼭 얕잡음과 비웃음이 들어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사람마다 대화의 발화온도가 천차만별이다.
나의 발화지점은 항상 낮다.
내 위치와 상관없이 항상 내 대화의 발화지점은 늘 낮았다.
모르는걸 알기 위해서 낮았고,
말도 안되는 일들(?)에 대한 반항심으로 낮았었다.
(사 후 해석해보면 그게 항상 옳진 않았지만...)

발화온도가 낮은건 위험한 일이다.
온도가 낮은대신 높은 강도를 갖고 있어야 평균치를 이룰 수 있다.

평균이 주는 안정감을 모르고 살다가
어렴풋 평균이라는 느낌을 알게 되고
평균을 위한 몸부림을 한번 세게 쳐보다가
다시 극으로 치닫는 것. 그것도 삶이겠지?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