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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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5 (목)

■ 예레미야 10:1-16

[ 살아계신 하나님과 헛된 우상 ]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우상의 헛됨과 함께 살아계신 분이며 주가 되신 참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상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로 사람들의 손과 연장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며 피조물들에게 합당한 경배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나라에서 온 것으로서 그들의 관습이나 풍속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따라 행하면 곧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섬기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또한, 주변나라들의 신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므로 우상숭배와 음행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1-2). 이스라엘의 배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 이전세대에 활동하였던 아모스 선지자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고 선포하며, 형식적이고 껍떼기만 남은 종교생활을 비판하고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을 경고하였습니다(암5:26-27). 약 백 년이나 앞선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은 예레미야 선지자 때 이스라엘의 타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부터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우상숭배로 인한 것임을 증거합니다. "여러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상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 우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의한 것입니다. 나무를 기술공이 도끼로 다듬고 형상을 만들어 그 위에 은과 금으로 입히고 장식물을 붙인 것일 뿐, 우상을 두려워할 이유도 추종할 이유도 없습니다(4-5). 고대인들은 혜성이나 일식과 같은 현상을 보며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채, 두려워하기만 하였습니다. 우상은 말도 못하고 스스로 걸어다니지 못하고 사람들이 메어서 옮겨야 하는 나무조각일 뿐, 그들로 인해 화가 미친다고 생각하거나 그들이 복을 준다고 생각한 것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헛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열방의 왕과 지혜로운 자들을 벌하시기도 하시며 복주시기도 하십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연현상이나 하늘의 징조가 아니라, 그 하늘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놓지 모하고 섬기던 우상의 헛됨을 말한 것은, 곧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6). 하나님이 이름만이 찬송받으실 만하며 그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 능력임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공생애를 통해 증거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도 증거되었습니다(막9:38).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음행이 지식적으로 무지했거나 지혜가 부족했던 것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험한 자들만이 우상숭배를 끊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복과정과 정착생활 중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상들로 부터 내려오고 이방인들로 부터 전해오는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만이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29:9). 즉,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심판에 고통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께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지혜가 있다고 자랑할 것도 아니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지금 우리가 선 곳에서 주신 말씀을 겸손히 믿음으로 받고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이며 신앙의 실체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나, 세상의 권력을 잡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핑계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7). 모든 만물이 홀로 유일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롬1:20).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지만 우상의 가르침은 그저 나무일뿐입니다(8). 곧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썩어져 없어질 것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을 숭배하는 자도 그와 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그릇된 삶에서도 벗어나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리 좋은 명품의 모양을 하였을지라도 우상은 우상일뿐입니다. 예리미야 선지자는 "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고 찬송합니다(9-10). 다스시는 오늘날 스페인 지역으로서 질좋은 은을 수입하는 곳이었고, 아라비아 지역으로 추정되는 우바스는 불순물이 적은 순전한 금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청색과 자색으로 칠을 하며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 능히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만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서는 한낱 나무조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람이 그들의 탐욕을 따라 하늘 위에 만든 신이나 땅 아래에서 조각하여 만든 신들은 섬기는 무지한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망하게 될 것입니다(11). 우상은 시간이 지나 녹이슬거나 썩어 버림받게 되고, 만든 이들의 탐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버림받아 폐기처분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을 주관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복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상은 사람의 탐욕을 따라 그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비와 구름과 번개와 바람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12-13).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풍요의 신이라 불리는 바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의 결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된 우상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인생들을 향해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고 선언합니다(14). 생기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생명의 조성을 위한 역사입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숭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자체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며 우매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분깃은 그와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16). 야곱의 분깃은 곧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입니다(창28:15). 즉,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기업은 땅이 아니라 그의 인생 가운데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기업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생명의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 기업의 실체는 땅도 재물도 아닙니다. 오직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길 힘과 능력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입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사람의 손으로 만든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삶에서 벗어나 생명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마음과 눈을 충분히 현혹시킬만한 형상이라도 그 안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이 되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