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0 (금)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0 (금)
■ 에베소서 4:25-32
[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옛 사람에 속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진정한 성도로서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거짓과, 분냄과 도적질과 더러운 말을 버리며 어떠한 경우에도 마귀에게 틈을 주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25-29). 성도로서의 삶에 합당한 것들로 모든 삶을 통해서 새 사람이 되었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면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25). 사도바울은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말하며 거짓이 곧 옛 사람의 실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골3:9-10). 거짓이란 단순히 거짓말이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일이며 부정한 생각으로 꾀어서 이용하려는 술책 등,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아니한 모든 말과 행위를 가리킵니다.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스가랴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촉구한 것도 '거짓'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전하였습니다(슥8:16-17). 거짓을 버리라는 것은 멸망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거짓이 행위로 나타난 것이 위선이며 외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마6:1). 이처럼 거짓을 버려야 하는 것은 모든 성도가 서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속임수이며 술책이며 위선이며 외식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서로를 불신하게 만듭니다. 진리를 행하며 정직해야 믿음 안에서 서로 조화롭게 몸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정직히 말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의사 앞에서 정직하지 않으면 올바른 치료를 할 수 없듯이, 정직한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거짓은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서 온 것이며, 세상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롬12:2-5). 거짓으로 인해 형제간의 불신과 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듣고 새로운 결단으로 나아가는 자만이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는 새로운 결단으로 나아가며 최선을 다해 행하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지를 분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감당하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오히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이상의 것을 품지 말고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더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부족하여도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으며, 각각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을 따라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동역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사도바울은 구체적인 것들을 제시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촉구합니다(26-27). 분은 형제뿐만 아니라 자신도 넘어지게 합니다. 작은 틈새는 처음에는 무시해도 될 만큼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결국 파멸을 가져옵니다. 마귀는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내 중심적인 사고가 공동체의 틈을 가져오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모든 일에 덕을 세우며,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친절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 합니다(32). 오늘 내 모습 속에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다시 같은 죄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거짓입니다.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아야 합니다(28).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정직히 행하는 자는 공동체 안에 속임수와 거짓이 들어오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거짓은 탐심에서 비롯됩니다. 형제에게 탐심을 갖게 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28). 바울은 '도둑질'과 '자기 손으로 하는 선한 일'을 대조함으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것도 곧 도둑질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성도는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재물로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 노동은 많은 재물을 차고 넘치도록 모으는 수단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돕는 도구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갈6:2). 즉, 서로 협력하고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선함을 드러내거나 혹은 악함을 드러내는 것도 입에서 나온 말로 시작됩니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기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악한 말은 오히려 형제를 넘어지게 하고 분노를 품게 합니다. 모든 말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29). 이처럼 분을 내는 것이나 불의한 방법으로 형제의 것을 탈취하는 것이나 더러운 말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 등이 모두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30). 성령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뜻을 거슬러 말하고 행함으로 근심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택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성결한 백성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악독이 아니라 친절을 베풀어야 하며, 노함과 분냄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하며, 비방하는 것과 악의를 버리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31-32).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품으신 마음이며 행하신 길입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갈5:20-21). 분냄이 때로는 불의를 대항하는 정당한 반응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우상숭배와 이단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한 죄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믿음의 성숙함을 이루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아직도 남아있는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함을 입은 새 사람을 따라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나의 연약함이 핑계나 변명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지혜와 명철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허락하옵소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 투기하며 분쟁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불의를 내 삶에서 몰아내는 믿음의 결단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