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5 (수)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5 (수)
■ 에베소서 6:1-9
[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1). 이미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5:16).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인인관계를 언급한 계명 중에 가장 으뜸이 되며, 절대적인 명령이면서도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증거합니다(2-3). 순종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즉,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이해하고 알며, 그 희생적인 사랑의 깊이와 삶을 인정하고 자녀된 도리를 다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일방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행위는 자녀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제 2 계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5:8-10).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는 자녀의 삶을 복되게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부모는 그 자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자녀의 삶을 복되게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말하면서도 "이것이 옳으니라"고 한 것은 도덕적인 도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겔22:7).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이 타락한 세대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잠23:25).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공경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께 순종하며 마음 깊이 하나님으로 오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의 권면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1-3). 또한,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4).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변화되도록 끊임없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의 훈계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날 때 자녀에게 분노나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한 것은, 아버지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대표로서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위탁해주신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일방적인 뜻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녀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할 때에 자녀의 길이 열리고 그들의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14:26). 즉, 부모가 자녀에게 명령하고 일방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의 삶을 살 때에 자녀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견고한 의뢰'는 입술로 하는 기도가 아닌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녀에게 보일 수 있는 삶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자녀가 요구하는 것을 다 해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양육의 책임이 있되, 그 양육은 "주의 교훈과 훈계"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훈은 축복과 저주를 담고 있으며, 훈계는 칭찬과 책망을 담고 있습니다. 즉,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칭찬하고, 합당하게 행하지 않는 것은 책망하므로 자녀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자녀로 만드는 것이 양육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며 참된 믿음의 성숙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양육입니다.
이러한 관계의 원리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은 주인을 주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형식과 겉치레로 일하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서 하듯 바르고 정직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6).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종에 대한 의무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주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종을 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라고 해서 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겸손하게 종을 대하는 것이 주인의 도리입니다. 희년제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과 같이 여기고 네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그가 이같이 속량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는 그와 그의 자녀가 자유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25:53-55). 즉,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없으며, 근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부리는 종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고 멸시하는 것은 그의 소유주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행한데로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고 증거합니다(8-9).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종의 노동력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거나 위협하여 자신의 부를 축척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행위에 진노하시고 그가 종을 대하였던 것과 같이 핍박과 위협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주인이나 종이나 외모로서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9). 즉 종은 눈에 보이는 겉치레로 일하지 말고, 주인은 노동의 댓가만을 주는 것으로 그 의무를 다 행한 것처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골3:22). 주인이나 종이나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며 인간관계를 일방적인 상하복종관계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악인의 심판 가운데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 속에 사랑과 존중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과 존중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무엇이 옳은지를 기도하며 바르고 정직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하옵소서. 또한 모든 관계 속에서 이익과 대가만을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성실히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