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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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8 (수)

■ 에베소서 4:1-16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한다"고 합니다(1).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은 어떤 사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로서 자신의 권위를 위한 것도 아니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가르칠만한 자격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사도적 직분을 수행하게 된 것을 증언한 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말한 것입니다. 즉, 갇힌 자되었으나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믿음의 견고한 자로 세우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성도로서 정체성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정체성은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며,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1-3).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이란 모든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고전1:10).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은 공동체의 특정한 사람에 뜻과 마음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으로 각 사람들이 하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부르심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소망 안에서 받은 것입니다(4). 이는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지탱해줄 수 있는 요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중심이 무너지면 삶은 흔들리고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내 권리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삶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능력은 내 열심이나 능력이 아니라 복음으로 서로 하나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나 편리를 도모하는 것은 성도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갇혀있으면서도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것을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는 바울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에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넉넉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마음으로 하나될 수 있도록 내 중심의 사고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주셨는지를 증거합니다. 먼저 바울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7). 그런데 그 선물의 크고 작음을 언급하지 않고 '분량대로'만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크고 작음을 떠나 각 사람에게 충분한 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각 사람에게 준비된 믿음의 그릇에 충만한 분량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조건이나 자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사랑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물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조건없는 은혜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없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고 하여, 모두에게 동일한 헌신이나 봉사를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일정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주셨다면 선물이 아니라 보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계약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선물을 주시고, 각 사람이 감당할만한 분량대로 또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목사로 교사로 삼으신 것입니다(11). 이것은 교회 안에서 내가 감당하고 있는 사역에 비해 형제의 사역이 너무 가볍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의 불평입니다. 사역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는 그 크기를 비교하며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역이 큰 것은 내게 주신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형제에게도 감당할만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또한, 교회 내의 직분을 서열의 관계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정도에 따라 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충분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맞는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귀한 직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순간 각자에게 맞는 그리스도의 선물과 직분이 충분히 은혜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받은 직분이 무엇이든, 내게 주신 삶이 어떠하든,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시고 직분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을까요? 결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12). 그리스도의 몸이란 곧 교회입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고, 교회를 세위 위해서 은혜에 합당한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져야할 사역이 같을 수 없으며, 헌신의 정도도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혜와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간사한 유혹에 약하여 속임수에 넘어지며, 이단의 다른 교훈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14).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충만하게 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13). 사도바울은 그러한 충만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요구하며,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고 합니다(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는 것은 무조건 용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증한 것을 전하는 이단을 사랑으로 무조건 용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참된 것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내어 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말씀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바울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방향성이며 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16).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내 힘과 능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건물은 인위적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보이는 건물을 확장해 가는 교회가 아니라 성도의 성숙함을 이루고 이를 통해 복음사역을 넉넉히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내가 먼저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려는 사단의 유혹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고 권면합니다(16). 신앙의 성숙함을 이루고 교회가 교회되도록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그 분이 지셨던 십자가를 달게 지는 것입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심을 믿고, 내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항상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며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