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결제는 비트코인으로… 되나요?"
비트코인을, 혹은 그밖의 암호화폐를 현금처럼 쓰게 될 날이 올까?
글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볼 때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좀 흐릿하기는 하다. 하지만, 안 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현금을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는 대신 계좌와 연결된 카드로, 혹은 스마트폰 속 앱이나 위젯 바코드 등으로 값을 치르는 모습은 지금도 익숙하다. 결제 수단의 종류는 무척 다양해졌지만, ‘내 지갑(계좌)에 있는 것을 덜어내,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라는 기본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많은 코인과 토큰, 거래소들이 난립하면서 ‘암호화폐 지갑’을 갖고 있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폰까지 출시된 시점. 계좌에서 계좌로 숫자를 더하거나 빼는 기존의 원리를 암호화폐와 연결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뭐…… 암호화폐 한두 종류는커녕, 지갑조차 안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뭔가 좀 쎄~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 2018년 11월 30일 바르셀로나에서 첫 선을 보인
시린 랩스의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폰 '핀니'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면,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여전히 ‘안정됐다’라고 보기 어려운 암호화폐 시장가격이 아닐까 싶다. ‘화폐’가 아닌 ‘재화’의 일종으로 보는 인식, 즉 기술이 아닌 사람의 문제인 셈이다. 아니,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기술 문제이려나…? 글쎄, 딱잘라 말하려니 좀 헷갈린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나…’ 하며 모니터에 띄워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범인(?) 검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참고할 만한 이미지를 찾을 일이 생겨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blockchain을 검색했는데, 화폐 형태의 이미지가 꽤 많이 나오는 걸 보고 상상회로가 발동한 것이었다.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다. 그러니 동전이나 지폐 같은 ‘형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일 터. 별 의도 없이 그냥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이따금씩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나? 화폐야.” “돈, 머니(Money)라고!” “잘 와닿지 않으면 그냥 외워!”라는 환청(?)과 함께 누군가 주입식 포지셔닝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 "blockchain"을 검색하면 화폐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꽤 많이 나온다.
(출처: Pixabay)
결과적으로 블록체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비트코인은 ‘화폐 시스템’을 표방하며 등장했다. ‘중앙화된 기관의 개입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조회하고 이용할 수 있는 통화 시스템’이라는 비트코인의 철학은 꽤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진정으로 ‘유의미한 규모를 가진 대안적 통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예전처럼 중앙에서 휘두르는 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를 보다 강력하게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좀 더 나아간 생각도 해본다. 단기간에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가올 언젠가의 시점에 보다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도록 미리 ‘씨앗’을 뿌려둔 거라면? 혹은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등하고 몇몇 알트코인이 등장하던 시기에 사토시 나카모토가 활동을 중단하고 모습을 감춘 건, 당초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라는 암묵적 메시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어디 대놓고 말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그렇지, 나홀로 상상을 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머릿속을 직접 들여다본 것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은 그저 정답을 알 수 없는 물음표뿐인 것을.
▲ 사토시 나카모토가 잠적한 건 이런 심정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답 안 나오는 의문들은 접어두고, 다시 한 번 비트코인이 ‘화폐’로 사용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화폐라는 것을 사용해온 역사는 어림잡아도 천 년 단위다. 그동안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시스템 안에 암호화폐가 들어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 솔직히, 승산없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리저리 관련 글을 찾아 읽다가 문득, ‘화폐가 사용돼 온 모든 역사’를 따져보는 건 잘못 짚은 것임을 알게 됐다.
암호화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되고 통제되는 현행 화폐 시스템. 그러니 금이나 은 같은 ‘실물로서의 가치를 지닌 화폐’가 통용되던 시기는 제외하고, 지금의 국가별 ‘법정화폐’가 정착된 이후를 대상으로 해야 옳다. 그렇게 따져보면… 기간은 확 줄어든다. 대략 몇십 년 정도? 까마득했던 체급 차이가 현실적으로 조정된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빠른 시일 내에 암호화폐로 아메리카노를 사 마시는 광경이 흔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익숙한 것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거래수단이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꽤 많은 법이니까.
▲ 지금은 익숙하게 쓰고 있지만, '신권'을 도입할 때도 잡음이 꽤 있었다.
'익숙한 것'을 비집고 들어온다는 건 그런 거다.
게다가 기존 화폐 발행권을 둘러싼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들의 견제와 제동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중앙은행 없이 모두가 개인 대 개인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모습’은 아직 한참 먼 일일 테지만, 지금은 그저 가능성이 좀 더 생긴 정도로도 만족해야 할 듯하다.
만약, 모든 문제가 해결돼 암호화폐로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현행 화폐와 공존하며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위치에서 존재했으면 한다. 이런 생각조차 어쩌면, 나 자신이 지금의 시스템에 익숙해진 나머지 푹 젖어있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파격적인 변화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마땅하다고 본다.
무엇이 됐든 완전한 대체와 또다른 독점 대신, 정반합을 통한 개선과 공존을 지향하는 편이 더 낫다는 믿음만큼은 결코 틀리지 않다 생각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