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 공유해요(8) - 외계어 없이 이더리움 이해하기(2)
3. 토큰 생성과 ICO
다시 쇼핑몰의 비유로 돌아가서, 내가 이더리움 쇼핑몰 안에 '김밥 가게'를 열고 싶다고 하자. 새로 가게를 오픈하려면 비용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매장을 열면 자신이 그 매장의 주인이 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투자를 받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사업 자금을 조달한다.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나 대출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
Dapp도 마찬가지로 개발을 하려면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Dapp의 경우는 출시를 해도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Dapp은 대부분 오픈 소스로 공개되고, 따라서 광고를 붙이거나 수수료를 떼는 등의 수익 모델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Dapp을 개발하는 데 드는 자금을 구하기가 어렵다. 투자를 하거나 대출을 해주는 사람은 미래에 더 큰 수익이 발생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돈을 준다. 미래에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프로젝트라면 누가 돈을 대주겠는가? Dapp은 근본적으로 자금 조달의 문제를 안게 된다.
이더리움은 각 Dapp들이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토큰(혹은 ‘앱코인’이라고도 한다)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참고] 이더리움 내에서 만들어지는 토큰의 표준을 'ERC-20'이라고 한다. 토큰에 표준이 존재하는 이유는 플라스틱 카드들이 일정한 규격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토큰도 일정한 표준을 따르면 호환성 및 관리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생성된 토큰은 발행자가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각 Dapp의 서비스를 사용할 때 내야 하는 내부 화폐의 역할을 한다. 즉, 매장에서 김밥을 사 먹을 때 필요한 ‘식권’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Dapp들은 이 토큰을 팔아서 개발 자금을 조달한다. 김밥 가게로 말하자면, 가게를 오픈하기도 전에 앞으로 가게에서 쓸 식권을 미리 찍어서, 그걸 판 돈으로 사업 자금을 마련한다는 말이다. 아니, 도대체 오픈하지도 않은 가게의 식권을 어떻게 팔 수 있는 걸까?
식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고?
물론 김밥 매장이 꼭 생겼으면 하는 이타적인 마음에서 기부를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대다수 일리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식권을 산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식권의 개수가 제한되어있다는 것이다. 흔히 식권이란 정해진 돈을 내면 계속 뽑혀 나오는 것인데, 토큰은 다르다. 공급량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식권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이 올라간다.
사람들이 미리 식권을 사는 이유는 나중에 그 식권을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직 개업은 안 했지만, 이 가게 주방장을 보니 요리 솜씨도 좋을 것 같고, 길목도 좋고, 뭐 어떤 이유로든 나중에 이 식당이 잘될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만약 이 가게가 인기 있는 맛집이 되면, 식권을 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터다. 그러면 그때 이 식권을 더 비싸게 팔아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식권을 사는 것이다.
마치 개수가 정해져 있는 스포츠 경기 티켓을 미리 사놓고 나중에 웃돈을 얹어서 파는 것과 같은 원리이며, 개발 예정인 땅에 미리 알박기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비싸게 파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공급은 제한되어있는데 수요가 늘어난다면, 가격은 올라간다. 물론 Dapp의 경우는 실제로 성공할지 아닐지 모르기 때문에 토큰을 사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다. 토큰을 사는 사람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Dapp은 자금 조달의 문제를 앱 내에서 사용되는 토큰을 발행해서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한다. Dapp이 토큰을 만들어서 이를 공개적으로 판매하는 것을 ICO(Initial Coin offering)이라고 한다.
ICO는 주식 시장에 새로운 회사들이 상장(주식이 공개적으로 유통)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IPO나 ICO나 대중들에게 직접 주식(혹은 토큰)을 제공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ICO와 IPO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IPO와 달리 ICO는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계획만 가지고 시작한다. ICO는 크라우드 펀딩과 더 가깝다. 또 IPO는 금융 당국의 감독과 규제 하에서 이루어지지만, ICO는 법의 경계를 벗어나 있으며, 아무런 규제나 자격 조건이 없다.
[참고] Pre-sale(선판매)란?
ICO는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미래에 이러한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약속만으로 돈을 받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ICO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ICO를 성공적으로 끝내려면 직원 인건비, 홈페이지, 영상 제작, 백서 제작 등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팀 결성과 ICO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프리 세일을 하게 된다.
프리 세일이란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토큰을 판매하기 위해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미리 토큰을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 세일 단계에서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ICO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스타트업들이 완전 초기에 받는 시드 투자와 비슷하다.
ICO의 의미
ICO는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긍정적 측면에서 봤을 때 ICO는 Dapp 프로젝트들이 계속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자금 조달 방법이다. Dapp 개발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사용자인 대중들이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ICO 시장은 지나치게 과열되어있다는 것이 암호화폐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ICO들을 살펴보면 도대체 왜 블록체인을 써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프로젝트도 많다.
블록체인과 Dapp이 너무 인기이다 보니, 그래도 엄청난 자금이 모인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모호하고 멋있는 말로 홈페이지를 꾸민 뒤, 재단을 하나 설립하고, 기술적인 내용을 설명한 계획서를 배포한다는 토큰을 팔기 시작한다. 토큰을 생성하고 ICO를 하는 데는 아무런 자격 조건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 있는 프로젝트와 아닌 프로젝트를 잘 구분해서 투자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다들 ICO에 투자만 하면 대박이라는 열기로 가득해서, 모든 프로젝트가 ICO를 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몇십억, 몇백억의 돈을 모은다.
16-17년에 ICO로 조달된 총 투자 금액
토큰은 ‘주식’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아까 말했듯이 토큰은 다양한 것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건 개발자가 결정하기 나름이다. 프로토콜에 사용되는 토큰일 수도 있고, 또는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회사에 대한 투표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심지어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없는, ‘기부해주셔서 감사하니까 기념으로 드립니다’ 토큰일 수도 있다.
현재 법적으로 토큰이 주식과 같은 지위를 가지는 것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ICO 프로젝트들은 모호한 용어를 써서 규제망을 피한다. 그래서 토큰에 대해서 추후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강제할 법적인 수단은 없다. 즉, 내가 식권을 산 매장이 정말 맛집이 될지, 아니면 식권 판돈만 생겨서 도망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ICO를 금지한 명분도 적절한 규제나 투자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4. 이더(ether)
그렇다면 이더리움의 기초 화폐, 이 더는 무슨 역할을 할까? 일단 이더는 기본적으로 다른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서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화폐의 기능을 한다.
거기에 더해서, 이더는 채굴자들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실행시키는 데 필요한 수수료의 지불 수단이 된다.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자들에게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대가로 btc를 준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다. 이더리움도 Pow 방식을 사용해 블록을 생성하기 때문에, 채굴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데, 이 수수료를 지불하는 수단이 이더(ether)다.
Gas system
거래를 생성하는 사람은 이더로 Gas를 사서 거래에 첨부해야 한다. 이 Gas는 말 그대로 이더리움에서 스마트 컨트랙트를 실행시키는 대가로 지불하는 연료(Gas)인 셈이다. Gas는 스마트 컨트랙트의 코드가 복잡할수록, 저장 공간을 많이 쓸수록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 실행되는 만큼 Gas가 지불되고, Gas를 다 쓰면 실행이 취소된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장부를 가진 모든 노드들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각자 실행시키고 저장해야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많은 저장 공간과 컴퓨팅 파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Gas는 이런 비효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보내는 사람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만들 데 더 간단하고, 저장 공간을 적게 쓰도록 만드는 유인을 제공한다. 또 반복 실행을 집어넣어서 네트워크에 과부하를 주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Decentralize Evertything on Blockchain
이더리움의 비전, 블록체인 위에서 모든 것을 ‘탈중앙화’ 한다.
말했던 것처럼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의 활용을 한 차원 위로 끌어올린 최초의 Dapp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은 이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를 블록체인 위에 올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IT 혁명은 세상의 모든 것을 점점 디지털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 그러나 복사나 수정이 쉽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 자산 자체를 디지털화할 수는 없었다.
블록체인은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디지털화를 더 가속시킨다.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디지털 데이터의 신뢰를 보증함으로써 ‘가치를 가진 자산들’이 디지털화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최초의 Dapp 플랫폼인 이더리움은 디지털 자산들을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규칙을 통해 자동으로 사고, 팔고,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더 많은 분야에서 안전하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화폐와 자산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Dapp들이 블록체인 위에서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Storj나 Filecoin 같은 회사들은 블록체인 위에 남는 저장 공간을 올려 거래할 수 있게 한다. InsureX, Etherisc는 보험회사가 없는 보험을 만든다. 아티스트들은 유통사 없이도 소비자들에게 직접 음악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신원 정보(Uport)나 의료 정보(Medibloc)를 블록체인에 올릴 수도 있다.
즉, ‘신뢰’가 중요한 모든 것들이 더 쉽게 디지털화된다. 이것이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탈중앙화 된 자율 조직, DAO
심지어 이더리움은 미래에는 회사와 같은 조직(Organization)도 스마트 컨트랙트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조직에 속해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기 위해 조직에는 규칙이 있고, 그것을 만들고 실행하는 관리자들이 있다.
이것이 스마트 컨트랙트로 대체된다면 어떨까?
어떠한 위계질서나 권한 집중도 없이, 모든 사람은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조직의 룰은 스마트 컨트랙트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 조직에서는 사람의 개입 없이 모두가 합의하고 블록체인 위에 올라간 코드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책임진다. 이를 탈중앙화 된 자율 조직 (Decnetralized Autonoumous Organization, DAO)라고 부른다.
물론 당장은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블록체인이 보장하는 신뢰와, 그 신뢰에 기반한 스마트 컨트랙트의 활용은 단순히 가치의 교환을 넘어 인간이 협력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더리움의 장점
이더리움이 Dapp 플랫폼으로써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이더리움 관련 커뮤니티이다. 이더리움은 Dapp 플랫폼으로써는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다. 상당한 수의 개발자, 지지자, 연구자들로 구성된 커뮤니티와 이더리움 위에 개발된 각종 Dapp들까지 합쳐져서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하나의 생태계(ecosystem)가 생겨나고 있다.
현재 출시되는 Dapp들과 ICO의 80% 이상이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다. 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플랫폼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효과’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가치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Dapp 플랫폼의 가치는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들과 사용자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더리움 위에 구현된 Dapp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더리움의 가치는 높아진다.
현실을 명확하게 보자
물론 아직까지 이더리움의 Dapp들도 아주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더리움이 우위를 차지할 거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더리움은 목표까지 가는 길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굉장히 많은 장애물들을 마주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일반적인 IT 서비스들을 구현하려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 이더리움의 장밋빛 미래에 감탄했다면, 동시에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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