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우리가 알던 블리자드는 어디갔나 | 해시태그읽기

in #kr5 years ago (edited)

#서론
다양한 사용자 지정 게임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전략 게임계의 전설, '워크래프트 3'가 지난 1월 29일에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같은 회사 또 다른 전략 게임 명작인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로 돌아왔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최악의 모습으로 팬들과 마주했다. 이번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사태는, 소위 말하는 '블빠'들 마저 돌아서게 하기 충분했다. 필자도 한 때 블빠'였던' 사람으로서 이 사태가 왜 중요한지 글을 써보기로 했다.

#2018블리즈컨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현재까지 블리자드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블리자드의 몰락은 2018년도 블리즈컨에서 일어난, '님폰없' 사태에서부터 시작된다.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게임뿐 아니라 다른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일 정도로 거대한 축제이다. 그 축제의 장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장본인은 디아블로: 임모탈였는데, 사실 이 게임이 욕을 먹게 된 것은 단순히 모바일 게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고 나서 모바일 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대형 게임 회사들은 이른바 '양산형', '사행성', '자동 전투' 모바일 게임을 대거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 게임 저 게임 모두 복사, 붙여 넣기 식으로 똑같던 모바일 게임에 질린 유저들은 당연히 디아블로: 임모탈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었다. 특히 우리가 알던 블리자드라는 회사는 어땠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타격감이니, 오버워치의 밸런스니, 욕먹을 건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발매할 때의 게임 퀄리티는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게임 깎는 노인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 블리자드가 모바일 플랫폼을 노렸다는 사실이 팬들에게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디아블로를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그것 말고도 분노할 이유가 더 있었다.

#소외감
18년도 블리즈컨을 시작하기 대략 1년 동안, 디아블로 3는 시즌을 시작하는 것 외에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었다. 핵 앤 슬래시 기반의 RPG 게임은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계속 사냥을 하고 아이템 파밍을 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디아블로 3 유저들 역시 균열, 대균열이라는 콘텐츠만을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유저가 반복되는 행위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는 장르 특성상, 회사는 보통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거나 이벤트를 하는 등 플레이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 하다못해 아무리 오픈한 지 오래된 게임이라도 새로운 아이템 정도는 추가해주는 방식으로 유저들의 성취감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디아블로는 블리즈컨 이전 1년 동안 아무런 업데이트를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디아블로 3 유저들이 모두 해탈했을쯤 디아블로 3 홈페이지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거기에는 '이번 블리즈컨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디아블로에 관한 업데이트를 암시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디아블로에 오랜 기간 큰 업데이트가 없던 탓에 블리자드 팬들은 '디아블로 4' 혹은 '디아블로 2 리마스터'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런 팬들의 기대를 부수고 발표한 것이 디아블로: 임모탈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모바일 게임이라는 점에 분노한 것이 아니다. 버리다시피 관리하던 게임에 관심을 가져 준 것이 유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들 회사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의 쇄락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디아블로: 임모탈로 인해 축제의 장에서 상갓집으로 분위기가 바뀐 블리즈컨을 구원해줄 게임 발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였다. 분위기가 바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덕에 비싼 돈, 시간 내며 블리즈컨에 참석한 팬들을 그나마 달래줄 수는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면에서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영향력을 볼 수 있기도 했다.

#2019블리즈컨
그 이후 블리자드는 홍콩 언급에 대한 프로게이머 징계 사건 등의 일들이 겪었지만 이 글에서는 게임에 관한 것만 살펴보기로 하고 바로 2019년 블리즈컨 이야기로 넘어간다. 19년도 블리즈컨에 대해 많은 유저들은 대부분 '훌륭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판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 치고는 나름 선방했다'라고 생각했다. 그 선방을 이끈 건 단연 디아블로 4다. 아이러니하게 18년 블리즈컨을 말아먹음과 동시에 19년 블리즈컨의 분위기를 띄운 두 주인공 모두 디아블로가 된 셈이다. 시네마틱 영상에 다들 열광했고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는 의견이 나뉘었지만 아직 개발 중인 게임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오버워치 2를 포함해 새로운 소식이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없었다.

18년도 블리즈컨이 끝나고 얼마 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 대한 사전 예약을 받았다. 배틀넷 앱에는 2019년 출시라는 것이 명확히 쓰여있었다. 블리즈컨은 보통 10월 말, 11월 초쯤 진행되니까 대략 19년 말까지 사전 예약을 받으면서 아무런 소식을 전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는 뒤늦은 공지와 함께 12월에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발매
그렇게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가 발매됐다. 발매 시기를 어긴 것은 둘째치고 게임의 퀄리티는 최악이었다. 맵 그래픽, 전투 이펙트, 타격감, 전투 간 유닛 가시성 등 게임 플레이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자막 겹침 현상, 더빙 겹침 현상 등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에도 문제가 많았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뤘기에 생략하도록 하고, 내가 가장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두 번째로 언급한 게임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슈는 정말 너그럽게 봐준다면 유저의 취향 차이로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 시스템은 아니다. 이는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이며 적어도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이전의 블리자드 게임에서 이러한 문제가 크게 언급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블리자드는 이전까지 이 기본을 충실히 해왔고 이로 인해 게임 만드는 장인의 이미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랬던 블리자드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것이다. 기본이라는 것은 게임 회사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신뢰도
기업 입장에서 신뢰도는 아주 중요하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의 실패는 단순히 한 게임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망해가고 있던 블리자드를 띄워줄 만한 수는 디아블로 4다. 그러나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가 기본도 지키지 못한 졸작으로 나온 시점에서 유저들은 차기작의 퀄리티에 대해서 의심을 할 것이다. 의심을 한다는 것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게임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인간미로 넘어갔던 자잘한 버그나 오류들 마저 큰 문제로 비판을 받을 것이다. 디아블로 4가 RPG에서 손꼽히는 명작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블리자드의 부흥은 힘들어 보인다. 물론 그마저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이 신뢰도의 중요성이다.

디아블로 4가 명작으로 뽑히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블리즈컨 이전 블리자드 상황, 업데이트를 안 해주던 게임들, 저급한 퀄리티의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명작으로 뽑힌 디아블로 4, 이 넷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일부 유저들은 분명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를 토사구팽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18년 블리즈컨이 망하고 나서 부랴부랴 디아블로라는 인기 많은 IP에 대한 개발 지원을 늘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더 인기 많은 게임에 더 큰 지원을 해주고 그렇지 않은 게임에는 관심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진실은 블리자드만 알겠지만 그런 조그마한 의심은 디아블로 4가 오래 유지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본인이 즐기는 게임에 지원이 끊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게임을 유지시키는 콘크리트 지지층들도 돌아설 것이다. 실제로 디아블로 3는 오랜 기간 업데이트가 끊긴 이력이 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은 하루아침만에 대회가 폐지됐다. 그 후 블리자드 계정을 삭제하며 인증하는 사람들도 종종 나타났다. 이와 같은 문제도 결국 신뢰도에 대한 문제와 직결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가 2019년에 발매되기로 한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출시를 훨씬 더 미뤘어야 했다. 그 뒤에 나올 디아블로 4도 함께 미뤄진다고 해도 그랬어야 했다. 예전의 블리자드라면 그랬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1에서 스타크래프트 2, 디아블로 2에서 디아블로 3까지, 블리자드가 개발 기간을 오래 뒀으면 오래 뒀지 미완성의 게임을 내는 회사는 아니었다. 팬들 역시 몇 년은 기다리더라도 더 좋은 게임을 마주하길 원했을 것이다. 이제 예전의 블리자드는 없다.

#디아블로4 #블리자드 #전망
현재 상황으로 예상해봤을 때, 디아블로 4는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흥행은 할 것이다.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가 포켓몬 출전 논란으로 많은 유저들의 반감을 샀지만, 발매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논란을 잊은 듯했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디아블로 4도 마찬가지다. 패스 오브 엑자일, 그림 던 등 디아블로 시리즈와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이 많이 나왔지만 디아블로 유저들은 결국 손에 익은 게임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네크로맨서, 아마존, 드루이드처럼 개성이 있는 직업군과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는 마니아를 만들기 충분했다. 아무리 블리자드의 이미지가 안 좋아졌어도 디아블로의 팬층은 여전하니 발매 직후에는 분명 흥행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같은 문제라도 블리자드는 다른 회사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을 것이며 유저들의 기대와 눈이 높아진 현재 상황에서 그 흥행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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