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과 나(3) - 민물장어의 꿈
신해철과 나(3) - 민물장어의 꿈
1. 넥스트를 시작으로 락음악을 듣게 되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삶이 살짝 구멍난 느낌이었다. 마침 들어간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늘 음악을 들었고, 기타를 뚱땅거렸다. 목청을 높여 노래를 했다. 밴드를 하고 싶었지만 못생기고 뚱뚱한 아이를 보컬로 껴 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기타나 베이스, 드럼에 목을 맬 만큼의 끈기도 없었다. 그냥 넥스트를, 너바나를, 메탈리카를 들으며 어설프게 기타 연습을 하는 아이만 있었다.
2. 누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라고 묻는다면, 신해철(또는 넥스트)라고 이야기하기는 좀, 쑥스러웠다. ‘스피드’나 ‘아무로 나미에’같은 일본 아이돌 가수들보다도 어쩐지 후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비틀즈야’라거나, ‘건스 앤 로지스야’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막상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신해철이었다. 낮에는 스멜스 라잌 틴 스피릿을 불렀지만 잠들 때는 은밀하게, 넥스트 2집을 워크맨에 넣곤 했다.
3.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렇게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음악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시를 쓰고 소설을 썼지만 별볼일이 없었고, 그림에는 약간 재주가 있었지만 전혀 흥미가 없었다. 종교에 빠져 보기도 했고 하루에 다섯 번씩 자위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 둘 곳은 없었다. 늘상 재미가 없었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의 하루는, 수업 시간 동안 펜팔 친구 여자에게 편지를 쓰고, 자습 내내 음악을 들으며 졸다가, 기타를 좀 두들기고 글을 쓰다 그냥 다시 잠드는 일의 반복이었다. 나는, 쓰레기였다.
시궁창 속에 사는 구더기조차 자신의 때가 되면 허물을 벗고 하얀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어 세상을 내려보며 날아가는데 난 오늘 또 하루 그냥 먹고 살고 나는 쓰레기야
- 넥스트, ‘나는 쓰레기야’ 중에서
4. 밴드도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는 당연히 수능을 망쳤다. 수능 채점을 하고 머리를 혼자 빡빡 민 뒤 기차를 타고 집에 올라가는 길, 역에 있는 음반점에서 신해철의 신작을 샀다. ‘Homemade Cookies' 굉장히 느끼한 신해철의 나레이션이 들어 있는 ’일상으로의 초대‘를 듣고 살짝 속이 거북했는데, 그 다음에 ’민물 장어의 꿈‘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노량진 재수학원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좁고 좁은 대학으로 가는 문을 가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쉬지 말고 가자고 다짐하면서 늘 그 노래를 들었다. 노량진 오락실이 나를 유혹할 때마다, 사육신묘 앞에서 소주 한 잔 하자는 친구들이 부를 때마다, 책상에 써둔 ’민물 장어의 꿈‘을 바라보며 참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좁고 좁은 문‘이 대학 입학이라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쨌든 그랬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계속)
팔로하고 갑니다. 신해철님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세련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