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는 제가 중3때 집을 나가셨죠.
엄마랑 이혼 하셨거든요.
애초에 재산을 속이면서 결혼한 것부터가 끝을 어느정도 예견했다고 보면 편하겠네요.
엄마를 손찌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커왔고, 서로 싸우고 투닥거리다가 이혼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니, 난 커서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강박관념까지 생겼습니다.
엄마는 형과 나를 키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을 했습니다.
형제는 일요일 마다 아버지를 보러 가야했죠.
아휴~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엄마를 때리던 그 손과 눈빛이 떠오르니
아버지가 무서웠거든요. 눈도 마주치기 싫었습니다.
근데 봐야 했어요. 용돈과 학원비, 학교 급식비 등을 지원 받아야 했으니까요.
내가 싫다고 안 나가버리면, 그만큼 엄마가 힘들어할게 눈에 선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6시, 집 앞에서 아버지 차가 오기 전까지 형과 저는
‘오늘은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할까?’로 시작해서 ‘그럼 이렇게 말하자’ 로
머리를 맞대는게 일상이었습니다. 기분 안좋게 해서 좋을 게 하나 없었거든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작업이 반복되니
자연스레 전 남들의 기분을 잘 살피고 예민하게 보는 성격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형이 군대를 갔습니다.
이젠 매 주 저 혼자 아버지를 만나야 했죠.
형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볼 수 있었는데, 절 지탱해주는 사람이 사라지니
눈 앞이 어두컴컴 했죠.
‘아프다고 나가지 말까?’하는 유혹이 폭포를 뛰어오르는 연어 마냥 펄떡대더군요.
그래도 꾹 참고 나갔습니다. 대신,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음식점에서 봤죠.
만나서 최대한 빨리 먹고, 후다닥 집으로 튀는 나날이 반복되었습니다.
1년이 지나서 고2가 됐습니다. 예전보단 괜찮았지만, 여전히 불편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등산할 때 가끔씩 같이 갔습니다.
아버지가 등산을 좋아하시거든요.
남의 기분을 맞춰주는 성격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점점 더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근해졌고,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죠.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은 쪽으로 돌아서게 된 것은 고2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아침마다 산에 같이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리산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2박3일 정도 다녀오지 않겠냐고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죠.
처음엔 좀 망설였는데,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가자고 호기롭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8월달 중순에 아버지와 단 둘이서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2박 3일동안 같이 산을 타고, 밥 먹고, 잠자고, 목욕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된 거죠.
아직도 가끔씩 지리산 갔던 얘기를 합니다. 꽤 재밌었거든요.
그 이후로, 전 아버지를 아버지라 인정하니,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면이 보였습니다.
존경할 만한 면이 많이 보이게 됐습니다. 이후로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얘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더 즐거워졌습니다. 아버지도 많이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좋아졌죠.
형이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오니 많이 놀라워했어요.
형과 아버지 사이보다, 저와 아버지 사이가 훨씬 더 좋아졌거든요.
2년간의 시간이 한 사람과 한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 놨습니다.
아버지를 인정하게 되니, 자연스레 좋은 점과 존경스러운 부분을 이야기 하게 되더군요.
제가 존중하고 믿는 뉘앙스를 보일 때 마다
아버지는 저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얻는 것도 많았습니다.
제 자랑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맞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좋은 관계로 지낸다는게,
엄마와 아들로 좋은 관계로 지낸다는게
형과 동생으로서 좋은 사이로 지낸다는게,
제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만든 이 관계가 저에겐 너무나 좋고 자랑스럽거든요.
제가 느끼고 경험해 본거지만, 가족간의 관계가 좋아지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죠. 연인 관계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는것..
알면서도 서로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참 그게 어려운거 같기도 해요.
그렇죠..
하지만 가족관계서부터 꼬이면 많은게 힘들어지니
더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관계가 그리 좋진 않아요. 어색하죠^^;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인데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헤 이것저것 생각해봤습니다.
아버지는 26살때 결혼하셨죠. 제가 초등학교1학년이던 시절엔 아버진 고작 34살이에요. 지금보면 크다면 크고 어리다면 어린나이입니다. 그리고 결혼도 처음해보고 아이도 처음 키워보는 초보죠. 먹고 살기도 빠듯했을꺼에요^^
아마 gleamroom님의 아버지도 거의 같을꺼 같아요. 가족을 미워해봐야 나만 손해고 잘못을 용서하고 좋은관계로 나아가는게 가장 좋겠죠. 앞으로 더욱 좋은 사이가 되실꺼에요~~!!
감사합니다 sitha님.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더 다가갈게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