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의약 특허 핵폭탄이 록온 됐습니다
자기가 관심 없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한테는 제약바이오 분야가 그랬습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크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자동차와 반도체 시장을 합친 것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몇 달 전까지도 몰랐죠. 국내 시가 총액의 2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삼성같은 대기업이 욕심낼만 한 시장인 것이지요. 최근,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냄새가 폴폴 나고 있습니다. 삼성측은 국제회계기준(IFRS)을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다른 측에서는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일관성에 있어서 큰 의혹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삼성바이오와는 상관 없지만, 최근 제약분야를 공부하면서, 지식재산과 관련한 흥미로운 소송 사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생소한 이름의 '올란자핀'이라는 특허물질에 관한 사례입니다. 올란자핀은 정신분열증치료제인 자이프렉사의 성분입니다. 국내매출액 연간 300억원대, 비교적 블록버스터급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 소송건을 계기로 어쩌면 단순히 300억원대로만 끝날 문제가 아닌, 국내 제약업계 전체에 메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특허권자는 미국의 일라이릴리(대리인: 한국릴리)인데, 올레자핀의 특허권 만료(2011년 4월)를 국내 제네릭 업체들이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네릭'이란 특허를 갖는 오리지널 약품과 동일하지만 훨씬 저렴한 일종의 복제약을 말합니다.
제네릭 제약사들 중에서 국내 시장을 선점하려는 한미약품이 일라이릴리에 선빵을 날립니다. 한미약품은 1심 특허심판에서 졌지만, 2심에서 승소합니다. 제네릭사들이 기존에도 이런 식으로 선빵을 날리긴 했는데, 이기기 쉽지 않은 오리지널 특허가 아닌 파생특허(염, 용도 등)에 대해서였죠. 한미약품은 2심에서 오리지널 물질에 대한 특허를 국내 최초로 무효화시키게 되니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2심 판결이 끝나고 오리지널 특허의 만료일까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겁니다. 남은 기간동안 특허를 침해해서 약품을 판매하고 번 돈으로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도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심 대법원에서 한미약품이 패소합니다. 이제 당연한 수순은, 일라이릴리의 반격. 특허권 만료 전에 한미약품이 제네릭 약품을 팔았으니 특허침해 손해(1천만원)를 배상해야 했습니다. 한미약품이 예상했을 내용이죠. 그까짓 1천만원, 옛다 먹고 떨어져라.
한국릴리는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감소액에 대해서도 배상하라고 주장합니다. 주장한 손해액은 15억원. '약가 인하'란 한미약품이 제네릭을 출시하면서 보건복지부에서 공식적으로 약값을 낮춰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20% 인하됐습니다.
1심, 2심 모두 한미약품 승리!
흥미로운 점은 다음의 명인제약 사건.
특허권 만료 전에 한미약품이 제네릭을 출시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명인제약도 유사한 제네릭 약품을 출시합니다. 한미약품이 손해배상에서 이긴 것과 반대로, 명인제약은 1심과 2심 모두 패소합니다. 국내 제약업계에 멘붕을 가져온 핵폭탄이 떨어진 겁니다.
왜 핵폭탄이냐고요?
한미약품과 명인제약은 같은 약품인데도 정반대의 판결을 받았고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았습니다. 최종심에서 약가 인하로 인한 특허권자의 판매손실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올란자핀이 아닌 다른 의약품의 손해배상액이 어마어마하게 증폭될 수 있거든요. 한미약품이 올란자핀 약품을 판매한 매출액은 8천만원 뿐인데, 일라이릴리가 판매하지 못한 금액인 15억으로 산정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올란자핀이 아닌, 고혈압이나 암 치료제와 같은 메가톤급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적용하면 남아날 업체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의약품 전문가도 아니고 법조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공신력 없는 전망을 하자면, 한국릴리가 패소할 확률이 높습니다. 국내에는 제네릭 업체가 대부분이거든요. 손해배상이 인용되면 제약업계 다 죽는다는 논리로 엄청난 언론 및 로비 활동을 할 겁니다.
특허권은 보호돼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건강의 경제적 부담도 낮춰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서, 형평성 있는 결론이 나기를 바랍니다.
와 정말 핵폭탄이네요
이제야 감사 답글 답니다. 포스팅 하자마자 정말 핵폭탄이네요라고 댓글이 달려서, 제목만 변경해서 올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네요. 그렇더라도 감사한 일인데요.
제가 완전 뉴비라서 글이 얼마 없는 관계로 이렇게 답글 안 단 댓글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안녕하세요!ㅎㅎ 의약학 관련 이야기를 써주셔서 매우 흥미롭네요ㅎ 말씀하신대로 제약회사 특허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전국민보험에 관여가 되어있어서 다소 정책적으로 카피약 사용을 조장하는 것이죠. (약국에서 정품대신 카피약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준다던지..) 사실 약 개발이라는게 하루이틀만에 되는 것도 아니고 각종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 인류 전체로 봤을 때는 오리지널 회사에 그만큼의 보상을 해줘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 봤을 때는 경제의 논리에 따라 후려쳐야하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하는 부분입니다..
@환영해
맞습니다. 어렵게 개발하고 임상을 거친 오리지널사의 권리는 분명히 보호되고 장려돼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제약 주체들은 여러가지 셈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가지 정의의 충돌이죠. 이번 사례에서 "형평성"에 관해 비전문자로서 든 생각은 이렇습니다. 특허 만료에 가까운 시기에는 제네릭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가까운 시기"가 과연 언제인가는 감히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고요.
댓글과 보팅, 홍보 정말 감사합니다. 패밀리닥터님의 포스팅들을 보면 재능이 많으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분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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