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여행기 1부 -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다.

in #kr5 years ago (edited)

어느날 집으로 걸어오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인간은 평생 자신이 사는 곳을 벗어나지 못할까?'

일주일 후 나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정말 그 이유뿐이었다.

여행은 생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준다. 여행이 시작되면 시간은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제한된 시간 안에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낯선 공간에 적응해야 한다. 혼자 여행할 때는 마치 특수부대원이 된 기분이다. 나는 나만의 명령을 수행한다.

비행기에 올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이륙했다. 클래식 음악에도 이렇게 웅장하면서 좋은 음악이 있는지는 몰랐다. 비행기 안에서는 잠을 못잤다.

엄격하다는 캘리포니아 세관을 통과했다. 나한테 김치 가져왔냐고 물어봐서 기분이 안좋았다. 농담인지 인종 차별인지?

서투르게 바트 표를 끊고 낯선 지하철에 올랐다. 그곳에는 이것이 일상인 미국인들이 앉아있었다. 지하철을 나서자 샌프란시스코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 느낀 패스트푸드 냄새 같은 공기가 코에 들어왔다.

샌프란에 도착해서 데이터 USIM 칩을 구입하기로 했기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 묵기로 한 호텔에 겨우 찾아갔다. 짐을 꾸리고 USIM을 구입하고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미국에 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나는 사실 좀 두려웠다. 노숙자들이 많았고 처음 맡아보는 초록풀 같은 대마초 냄새가 거리에서 났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가 나를 반겨줄줄 알았지만 그건 그저 환상이었다.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이.

나는 대학에서 영어를 부전공했고 미국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서 이 나라가 많이 궁금했다. 그리고 하루 뒤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며 현실과 이상의 모순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음날 자전거를 대여해 금문교까지 가기로 했다. 친절한 캐나다 출신 기상학자를 만났고 함께 자전거 투어를 했다. 그와 기상학, 샌프란의 역사,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냥한 사람이었고 좋은 추억이었다.

돌아올 때는 혼자 돌아오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구글 지도 보고 가면되지 했는데 설상 가상으로 스마트폰 배터리도 방전되어 버렸다. 가방을 뒤져보니 보조 배터리도 없다. 배를 타고 같은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 피셔맨스 와프에 도착해서 반납하고 차를 타고 갈려고 했는데 원래 대여점에 반납해야 한다고 한다. 헉...

지도 한 장 들고 미친듯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언덕은 또 왜 이렇게도 많은지...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클램파우더 스프를 먹었다. 이 상황에 이건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길을 묻고 물어 겨우 자전거를 빌린 대여점을 찾아 반납했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내가 참 바보 같았다. 그래도 절박하게 찾으니깐 원하는 것은 반드시 나타나더라.

다음날 샌프란시스코를 더 천천히 구경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지역인 SOMA에 가서 구경을 하고 센트로 카페에 가서 카페라떼를 마셨다. 강렬한 햇살처럼 진한 커피였다. 스타트업의 건물은 예약이나 인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어서 스타트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사실 볼 건 없다.

샌프란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의외로 코잇타워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샛길이었다. 코잇타워의 히피스러운 안내원이 알려준 길인데 마치 수도승이 오르 내리며 명상을 할 것 같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코잇타워

샌프란시스코에는 3일 정도를 머물렀다. 그 정도인데도 왠지 동네처럼 익숙해질 때쯤 (첫날 이잡듯이 헤메고 다녀서...) 실리콘 밸리로 떠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에어비앤비로 방을 예약했다. 유대인 호스트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똑똑한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짐을 풀고 대망의 구글과 애플을 구경하러 우버를 타고 떠났다. 역시 볼건 없더라.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데를 뭐하러 구경하러 가냐 싶기도 하고. 애플은 생각보다 작았다. 네모 형태로 건물이 아담하게 모여 있는 형태였다. 볼일만 보고(?) 기념품 정도 구입하고 나왔다. 구글은 무지하게 컸다. 진짜 무지막지하게 컸다. 캠퍼스에 있는 자전거를 집어 타고 돌아다녔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퇴근하는 구글 직원들을 조금 부럽게 바라보다가 숙소에 돌아와서 잠을 잤다.

다음날은 유대인 호스트와 커피샵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창업자들 중에 유대인이 많은데 왜 그렇냐고 했더니 탈무드를 읽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많이해서 그렇다고 한다. 무엇이 실리콘밸리를 특별하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생각 후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계속 커뮤니케이션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첫인상은 날카로웠는데 이야기해보니 괜찮은 친구같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팔로 알토로 향했다. 페이스북이 시작된 유니버시티 애비뉴를 보고 상징적인 카페인 쿠파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때도 팀의 형태로 앉아 창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실리콘밸리가 시작된 곳은 에머슨 스트리트와 채닝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점이다. 여기서 디포리스트가 삼극진공관을 발명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그냥 부촌 시골동네 같았다. 조용하고 길도 넓고 뭐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서 수 많은 혁신이 나왔더니 놀라왔다. 바로 옆에 HP가 시작된 차고가 있어서 구경하고 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근처에 스티브잡스의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길을 조금 내려가서 스티브 잡스의 집을 보고 잠시 애도하고 팔로알토를 떠났다. 그의 집은 의외로 화려하지 않고 작고 정감이 넘치는 동화스러운 집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에 가서 투어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의 가을의 팔로알토의 하늘이 참 마음에 남아있다.

이곳에 와서 많은 건물을 보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그것만이 실리콘밸리를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대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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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자마자 실행으로 옮기셨군요. 멋지네요. 잼있게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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