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6)] 교환 VS 고립 - 교환의 성질

in #kr7 years ago

안녕하십니까? @jin90g입니다.

지금까지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정치경제학 기본 원리인 자연법과 기초 개념인 욕구 등등을 다뤘습니다. 특히 인간의 욕구는 무한정성(부정형성)을 가져서 끝없이 변화하는 반면, 인간의 능력은 이 변화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거기서부터 ‘고립’은 곧 인간에게 죽음과 같다는 것을 밝혔고, 자연 상태가 타고난 원리를 기반으로 생존·번영하는 상태라는 것에 근거해 ‘고립’은 인간의 자연 상태가 아니다 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오늘부터는 반대로 ‘교환’, 다른 말로는 ‘시장경제’가 왜 인간의 자연 상태, 인간 본성에 따라 생존·번영하는 상태인가를 밝히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금방 안 끝납니다. 기존의 비판이나 오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오랜 기간 동안 에세이 하나하나에서 풀어내야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교환이 자연 상태인 이유 / 기본 원리 버전까지만 소개합니다.




교환 VS 고립 / 교환은 노력을 절약한다.


욕구와 능력간의 불균형은 인간을 고립 안에서 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능력이 욕구를 압도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살 수 있다. 만약 교환이 그 조건이라면, 교환은 인간의 자연상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교환은 무엇인가? 교환은 어떻게 우리 능력으로 하여금 우리 욕구를 능가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고립의 불가능성과 별개로, 교환의 효력 또한 함께 증명해야 한다.

교환은 노력의 전달 가능성에 의해 성립한다. 욕구·노력·만족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연쇄에서 욕구와 만족은 개인에게 고유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욕구와 만족을 대신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노력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 가능하다. 우리는 타인의 만족을 위해 노력할 수 있고, 타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욕구의 만족이 실현됨’을 ‘유용성(Utilité)’으로,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서비스(Service)’로 정의한다.

<저자 주 : 필자는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를 찾지 못했다. 만약 우리가 바스티아의 뜻을 살려 번역하려 한다면, ‘도움’ 혹은 ‘이바지’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서비스를 주고 받는다’는 말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혹은 ‘서로에게 이바지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은 욕구와 같이 무한정하고 다채롭다. 우리는 물리적, 도덕적, 지적으로 매우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은 물리적일 수도, 지적일 수도, 도덕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바스티아는 ‘노력’을 ‘우리 욕구의 만족을 위한 능력의 적용’으로 정의한다. 바스티아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노동’대신 사용하는데, ‘노력’이 인간의 지적·도덕적 능력의 적용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교환의 일반적인 특성은 만족에서 노력의 비율을 축소하는 것이다.”<바스티아 / 경제적 조화> 교환의 두 가지 표현 형식은 힘의 연합(협력) 그리고 일의 분리(분업)이다. 협력 덕분에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혼자서는 오래 걸리는 일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분업은 협력의 지속적인 방법이다.


<혼자 일하면 세월아 네월아 걸린다.>

그런데 인간의 능력은 욕구처럼 무한정하고 다채롭고, 그래서 협력·분업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가령 도로 건설 혹은 나라의 방어와 같은 유용한 작업을 실행하는 경우에도, 누군가는 활력을, 누군가는 민첩함을 제공한다. 누군가는 용기를, 누군가는 경험을, 선견지명을, 상상력을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명성을 제공한다. 그런데 협력과 분업은 교환을 함축하고, 따라서 교환과 분리될 수 없다.

  • “사람들이 협력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획득해낸 만족에 참여한다는 예측을 가져야만 한다. 각각은 자신의 노력으로 타인을 이득 보게 만들고, 타인의 노력을 그것에 어울리는 비례 안에서 이용한다. 이것이 교환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은 교환을 통해 보다 적은 노력으로 전과 같은 만족을, 같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교환은 인간의 능력이 욕구를 능가하게 만들고, 인간을 생존·번영하게 만든다.


<분업과 협력을 강조하셨던 '국부론'의 저자>


교환의 힘에서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교환이 자연의 힘을 정치경제학의 연쇄 속으로 끌어온다는 것이다. 바스티아는 ‘유용성(Utilité)’이 순수하게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되지 않는다는 점에, 그리고 유용성에서 자연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했다. 인간이 허무로부터 무언가를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자연의 재료들에서 유용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두 종류의 유용성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신의 섭리에 의해 무상으로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하자면 노력에 의한 구매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경제적 조화>

무상 유용성(자연)과 유상 유용성(노력) 개념은 자연이 인간의 교환 시스템에 기여하는 바를 설명한다. 바스티아는 이를 두 공식으로 표현한다.

  • 유용성은 때대로 오직 자연에 의해, 때대로 오직 노동에 의해, 대부분 언제나 자연과 노동의 협력에 의해 전달된다.
  • 어떤 것을 유용성이 진정 완비된 상태로 데려오는데 있어, 노동의 작용은 자연의 작용에 반비례한다.

자연의 조력을 얻는 만큼 인간이 더 많은 유용성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교환은 보다 더 많은 자연의 힘과 요소들을 불활성 상태에서 끌어낸다. 북부 사람들은 적도의 기후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역으로 열대 과일을 수입하면, 북부 사람들은 따뜻한 적도 기후가 만든 과실을 누릴 수 있다. 석유와 석탄은 특정 지역에 분포해 있지만, 우리는 교환을 통해 대지의 힘을 함께 사용한다. 교환 덕분에 우리는 적도에서 얼음을 만들거나 극지방에서 설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는 바람과 물로부터 차륜을 돌릴 힘을 얻고, 식물의 힘을 통해 태양과 물과 대지의 힘을 곡식으로 만들며, 가축을 통해 곡식을 고기로 바꾼다. 인간 노력은 점점 줄어들고, 더 많은 유상 유용성이 무상 유용성으로 대체된다. 절약되는 노력은 자유처분자산으로 반환되며, 인간은 절약된 노력을 또 다른 장애물의 극복과 새로운 유용성의 실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케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 가장 빠른 배 '블랙펄'>

같은 효과가 자본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단순 노동은 자신의 생존에도 불충분하지만, 자연의 무상 유용성을 끌어들이기에도 불충분하다. 때문에 인간은 도구, 기계, 비축물품, 한 마디로 자본을 필요로 한다. 자본이 형성되면 인간은 자연의 무상 유용성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데, 우리는 교환 덕분에 적은 자본으로 보다 많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농부는 대장간과 목공소 그리고 베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가 대장장이와 목수 그리고 재봉사와 교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음악가나 과학자가 되기 위해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음악가와 과학자에게 보답을 제공하고, 저들이 제공하는 이득을 함께 누릴 테니까.

교환 덕분에 자본은 절약·축적되고 개선된다. 그리고 그만큼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무상 유용성을 많이 획득한다. 노력의 몫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인간의 능력은 욕구를 능가하게 된다. 그렇게 교환 안에서 인류는 생존·번영한다.


<제 2장 제2절 종료 / 3절로 이어집니다.>


써놓고 “교환의 자연적 한계”를 쓰려고 하니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그래서 다음 글로 넘기고자 합니다. 특히 이 부분은 교환 시스템,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본성에 있어서 어떠하냐는 담론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민감한 논쟁에 휘말릴 수 있거든요.

논문 내용을 앞질러서 질문을 하신다면... 스토리 진행에 너무 앞지르지 않는 차원에서 답변해드리려 합니다. 아니면 그 보다 더 저편에 숨겨진 경제담론의 철학적 배경을 짚어보겠습니다.

<다음 화! 예고!>

교환이 인간의 자연 상태라면, 인간의 생존을 위해 교환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성립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근거 없이 무한히 확대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교환·시장의 확대 축소의 자연적 방정식 / 그리고 그 속에 뿌리내린 오해·기만·질투의 씨앗
“교환은 자연적 한계를 가진다.”

보다 저 멀리! Plus Oul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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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제학에 식견은 없지만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자연과 인간의 연결이 자본을 통해 이루어지는군요. 개인적으로 인간이 도구나 기술을 통해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맺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부문에 꽂히네요.) 다음 편도 기대가 되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시적인 수준에서는 범선의 돛이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입니다. 바람의 원리와 돛이라는 자본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면 할 수록 사람은 노를 젓는 노력 없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겠죠..

현대에는 과학이 엄청 발전해 양자세계부터 먼 우주의 사안까지 예측을 하고,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습니까. 또한 물질이 냉각되는 원리를 알아내서 냉장고도 만들고요.

처음에는 단지 자연이 주는 것을 받아내고, 그 다음엔 자연이 일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자연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원자 단위의 자연까지 일하게 만들고 있죠.

소위 친환경 태양에너지 발전도 실은 막대한 자본 축적 없이는 가동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자본(도구와 재료, 지혜와 기술 그리고 훌륭한 품성 에 더불어 및 작업 수행 동안 먹을 여분의 식량의 축적) 은 / 우리로 하여금 신의 무상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을 구석구석 끝까지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해줍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원시적인 수준에서는 범선의 돛이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입니다. 바람의 원리와 돛이라는 자본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면 할 수록 사람은 노를 젓는 노력 없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겠죠..

범선은 참 재미있는 예시입니다. 대학교에서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에 나온 소재거든요. 오스만과 베네치아를 피해야 했던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대서양'과 타협하기 위해 다급히 끌어들였던 존재가 '바람'을 길들일 수 있는 범선이었죠. '갤리'와 동맹한 항해사들은 대서양에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동맹'이라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기술에 더 큰 '행위력'을 부여하는 견해도 있죠. 예를 들면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지문인식 시스템'은 사업자에겐 편리하겠지만 고용된 사람에겐 고대 노예를 관리하던 상인과도 같은 역할을 할겁니다.

"교환은 자연적 한계를 가진다."

제가 너무 삼천포로 빠졌는지 모르겠네요. ^3^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은 할 수 없지만 제 식견을 넓혀줄 좋은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구독하겠습니다! 아는 것이 적지만 읽다가 질문이나 소감 있으면 댓글로 '사족' 달아보겠습니다.

노동시간 측정 시스템의 경우는 역으로 노동자가 계약상에 합의한 임금에 비해 과잉 노동을 강요받고, 보상은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경우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고용자는 계약의 내용대로 값을 지불하라"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관계란 결국 노력을 쏟는 사람과 만족을 가져가는 사람이 별개로 완전히 분리된 것을 뜻하니... 말씀하신 '노동자는 노예부림 당하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하는 걱정은.. 그 노동자가 태업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마음에 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진영의 견해를 보충해주셨군요. 동일한 기술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런 다양성을 분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죠. 또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저로서는 불가지론의 영역이라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 해석이든 존중하고 가급적이면 주관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초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말장난을 좀 하자면 "어차피 문제가 안 생길꺼야" 했다가 "어차피" 문제가 생겨버렸다면 대응해야하니까요. 반대로 문제가 "어차피" 생길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피해야 하구요.

원자폭탄 무서워서 핵물리학과를 통째로 폐지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바다이야기 무서워서 블락체인 기술을 일체 폐기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것들을 방치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기술을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제 포지션입니다. 혹여 제가 관련분야에 몸을 담게 되면 전략이 될테구요.

노예제도 이야기는 교환의 자연적 한계와 이어져 더 나가서 '서비스 의 값어치' 이야기를 할때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담론의 힌트를 드리자면 "교환이 인간의 자연상태라면 , 최소한 인간 종 전체는 교환 그 자체에서는 피해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 자기가 실수를 했거나 남이 억압 폭력 공격해서 교환이 아닌 행위를 한게 아닌 이상" ... 이 결론을 가지고.... 일상의 경험들이나 세상의 의견에 대입하면서 오해와 논란 혹은 난제를 풀어가는 것이

서비스의 값어치 이론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해당 부분도 연재되면 재미있게 읽어보겠습니다.

물론 유명한 블리자드 실력 게임 "하스스톤"의 프로 경기에서 나온 명언 "아는 만큼 보인다" 는 것 처럼... 이런 것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덤비거나 하면...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겠죠. // 반대로 너무 안 덤비면 고통받으며 가난을 못 면하거나요.

아무튼 이런 관계 맺기가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