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삶, 신과 죽음에 관하여 [04] 사실
다시 눈이 떠졌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는 심호흡을 했다.
안타깝게도 내 몸은 아직도 반송장이었고 심호흡을 매우..매우 천천히 간신히 해내었다.
심호흡을 마친 나는 숫자를 세었다. 1.2..3...4....5...그리고 30초가 지났을때 나는 한가지 사실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안들어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죽기 2일 이라면 안민우가 그것도 아니라 죽기 바로 전날이라면 내 손자가 왔을게 분명한 내 병실에 30초가 지나도록 아무도 안왔다.
결국 한가지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나는 정신을 잃고 차리면 하루후가 아닌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이 가설을 세우자 그나마 뭔가 잠시 안심이 되었다.
내 이 말도 안되는 현 상황에 대해서 그나마 설명 가능한 추측이라도 가능해진 것이다.
나에게는 원래라면 어제이자 내일 이면서 엇그제에 이기도 했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았던 신께서 해주시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신께서 해주신 이 자그만한 안도감에 나는 아주 잠시 평안을 가졌다.
내 몸상태를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래라면 2개가 꼬쳐있어야 하는 닝겔이 없다.
이건 분명 죽기 3일전 내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연출하기 위한 오늘을 기점으로 어제인 죽기 4일전 시작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안온다.
오늘은 나에게만 온전히 주어진 일종의 삶을 마무리하는 하루의 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약물을 통한 수면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에게 아니 나와 같은 죽음을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분명 오늘 나는 의미있고 숭고하고 황홀하기 짝이없는 다양한 생각과 정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어 내는 나의 마지막 쾌락 상태에 있었을 것이었다.
그전에 나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매우 침울해져 있었다.
나는 과거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었다.
무려 내가 11살때 즉 89년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나는 20살때 형이 핸드폰을 통해 불법으로 다운받아서 보던 영화를 같이 보았다.
내가 이 기억을 뚜렷이 하고 있는 이유는 죽음 이후 보았던 파라노마 사진 때문이었다.
아무튼 영화의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벤자민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매우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모습은 마치 현재의 나와 같은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심지어 노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즉 노인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다.
물론 나보다 작고 더 주름졌지만
아무튼 그는 커가면서 남들과 다른 외모와 신체 때문에 불행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는 늙어가는 주변의 사람과는 반대로 점점 젊어져 갔고 그는 다양한 경험을 겪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내가 지금 이 벤자민 버튼 영화를 생각한 이유는 이 영화의 결말 때문이었다.
결말에서는 시간이 계속 거꾸로 가고 있는 창고속 시계가 보이게 된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아... 저 시계가 벤자민의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하는 매개체였구나.
물론 지금 와서 보면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생각 되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느껴졌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이후로 여러가지 생각을 이어갔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나는 현재 벤자민과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이후 이와 비슷한 시간 관련 장르의 영화와 소설 등을 읽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 나처럼 오직 나만이 하루의 시간은 똑바로 흘러가지만 다음날이 내일이 아닌 어제가 되는 형상을 겪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은 죽기 전까지 보지 못했었다...
'젠장 난처하다.'
나는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파악하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고 어느새 정신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