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파사는 약자가 아니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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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영어로 말해보라면 문과생은 Justice라 하고, 이과생은 Definition이라 한다는 오랜 농담이 있다. 이 농담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농담일 뿐이며, 正義와 定義라 표기한다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힘은, 훨씬 복잡하다. Force라고 하면 조금은 의미가 좁혀지겠지만, Power라고 한다면 조금도 의미가 좁혀지지 않는다. Power는 힘과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의미를 조금 더 쪼개어, '개인 혹은 집단에 미치는 영향력'의 척도로서의 힘만을 놓고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물리력을 행사하여 영향을 미치기도, 책임자로서 영향을 미치기도, 인덕을 통해 쌓은 명성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하기도 한다. 힘이 가진 다양한 의미들은 이처럼 분리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순수한 힘을 찾고 싶다면 어디서 찾아야할까?

누군가는 문명화되지 않은 야생에서 순수한 힘을 찾으려 할 것이다. 강한 전사가 족장이 되는 원시부족, 강한 개체가 우두머리가 되는 동물사회는 순수하게 힘이 모든걸 결정하는 사회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의 사회와 유사하다. 덩치가 큰 아이가 골목대장이 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잔인한 정치가 있다. 어린아이들의 잔혹함을 순수함에서 나오는 잔혹함으로, 어른들의 그것과 구분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의 잔혹함은 어른의 잔혹함과 다르지 않다. 야생도 마찬가지다. 야생의 법칙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다. 야생에서도 결코 강한 존재가 살아남지는 않는다.

적자생존에 따르는 새로운 명제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에서의 강함은 어떤가? 이에 답변하기 위해 프란스 드 발이 관찰했던 침팬지들을 살펴보자. 늙은 우두머리인 예로엔을 밀어내고 강력한 루이트가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예로엔은 젊은 침팬지 니키와 연합해서 루이트를 밀어낸다. 니키는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에 우두머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예로엔의 도움이 필요했고, 예로엔은 니키에게 도움을 주는 대신 교미를 독점했다. 니키는 자신의 교미의 횟수를 늘리기 위해 루이트를 이용해서 예로엔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예로엔과 니키가 갈라서자마자 강력한 루이트가 다시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다. 루이트가 다시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 후 예로엔과 니키는 다시 결합하고, 루이트는 잔인하게 살해된다. 상기한 명제에 따르면 예로엔과 니키는 강하고, 루이트는 약하다. 나는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예로엔은 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젊고 강한 루이트에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니키를 내세웠다. 그렇게 루이트를 몰아내고서도, 자신의 도움 없이는 루이트를 억누르기 어려운 니키의 약함을 이용했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강인한 루이트를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었던건, 니키가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예로엔과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과정이야 어떻든 살아남은 니키가 강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논리라면, 무파사는 약자가 된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카가 강자는 아니길 바라서 이렇게 횡설수설한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일출을 보았네요. 아무 주제도 없이, 손가락에서 나오는대로 뻘글을 쓰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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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크라테스가 되셨나봐요.^^
전 이제 완벽한 스티미언이 되었는지, Power하니까 스팀파워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ㅜㅜ

그러신가봐요 ㅎㅎ

이런 글이 뻘글이라니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사피엔스는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개체가 주로 평판을 얻고 후손을 퍼뜨릴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강점은 집단의 크기인데, 무리가 커지면서 폭군처럼 행동하려는 강한 개체는 대체로 살해, 혹은 추방되었다고 하네요 - 유발하라리 사피엔스에서 본것 같아요...ㅎㅎㅎ

인간 이전에도 그랬죠. 본문에서도 언급한 프란스 드 왈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Bully들은 우두머리에 오르기 힘들다고 합니다. 친절하고, 새끼들을 잘 돌보는 강자가 존경 받으며 오래토록 권력을 유지한다네요.

무파사가 누구였더라, 잠시 생각했습니다. ㅎㅎ 순수(?)한 신체적 능력을 이기기 위해 정치질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히 인간에게는 더더욱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네요.

야생의 법칙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다.

크하...... 수준 높은 글 잘보았습니다.
뇌리에 남는 명언이네요.

오래되어서 무파사는 머지 그랬다가 스카 에서 아~~ 하고 갑니다.
침팬지 이야기 흥미롭습니다.

순수한 힘을 찾으려면 어디서 찾아야할까 라는 물음이 와닿네요. 🤔 뻘글이라고 하셨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해주는 (저의 뻘글과는 한참 다른) 좋은 포스팅인것 같아요.

적자생존
코인판에서도 어울리는 말이겠네요~!!
비가와서 그런지 시원한 하루입니다 기분좋게 보내세요^^

침팬지를 관찰해서 인간 세계 생래의 본질을 파악하는 이런 접근법을 매우 좋아해요 ㅋㅋ 신체적 강함이, 각자가 가진 파워의 주된 쟁점이 된다는 점에서 똑같은 정치질에도 분명 다른 면은 있지만...

강자라면 살아남아서 자기 유전자를 퍼뜨려야 하는데..
무파사는 죽었지만 심바가 살아서 날라(?)와 결혼했고, 스카는 죽었으니.. 결국 무파사(의 유전자)가 살아남은 거 아닌가요? 고로 강한 것도 무파사.

번식을 전제로 하면 모두가 강자의 후손이죠. 번식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떠한 선택도 강자의 선택이구요. 본문에서 이야기한 침팬지들의 경우, 루이트는 약자고 니키와 예로엔은 강자가 되죠. 저는 생존자와 강자를 분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