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쿠바로.

in #kr6 years ago

<아름다운 노인, 아름다운 바다, 아름다운 섬>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갈라지는 모습을 배경으로 노인은 고기를 잡고 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를 낚지 못했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멕시코의 만류는 평소 가져왔던 고민들과 잡생각들을 흘려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다.
쿠바의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았는데, 이를 모티브로 1952년 발표된 중편소설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개척한 걸작으로 자리잡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사랑한 나라 쿠바. 이십 대 초반을 살아오면서 어깨에 실린 막막한 무게감을 덜어내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잠시라도 이 나라에 빠져보고 싶다.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통해 알게 된 나라였지만, 여행을 위해 이 나라를 알면 알게 될수록 한국과는 다르다. 공산권 국가 붕괴 이전의 공산국가의 구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고, 카리브해 최대의 섬나라로 섬나라만이 보여주는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정치 독재, 사회혁명의 역사를 가진 쿠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여전히 사회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고, 언어나 지리적인 면에 있어서 느낄 이질감을 극복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막연한 설렘으로 쿠바 행 비행기에 오를 내 모습을 상상하면 들뜬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렵다.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 그들이 남긴 것들>

쿠바라는 나라에 있어서 세기의 혁명가라고 불리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사회나 체제의 혁명에 있어서 보여준 노력이나 열정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 두 사람은 쿠바 사람들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끼치며 지금의 쿠바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두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사상을 옹호하고, 그들의 역사를 막연하게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나라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열망이 생기게 된 첫 번째 원인이 ‘노인과 바다’였다면 체 게바라가 쿠바에 남겨둔 혁명의 열정과 고결함은 두 번째 원인이다. 비록 최근에는 혁명의 노력들이 상품화되어 본래의 의미가 상실되는 경우들이 많지만, 뭔들 어떠리. 그들의 발자취를 지금의 쿠바에서 찾아보고 싶다는 내 작은 용기에 보답해줄 수 있는 것은 여행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니 망설임은 없다.

여행이라는 자체가 휴양에 목적을 둔다면 위와 같은 이야기는 따분하고 지루한 여행동기로 느껴지겠지만 이때까지 일본, 중국, 대만, 터키 등의 여행지를 다녀오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기획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일은 보다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올 것 같다.

<감성에 응답하기>

공부와 막연한 목표에 힘을 쏟는 나의 이십 대는 메마른 가슴에 질려 있다. 평소에도 매우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내 성격 덕분에 의도적으로 감성이라는 본능을 피하고, 억눌려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따가운 햇빛과 싱그러운 나무들이 내게 주는 영감은 괜히 소중하게 여겨진다.

쿠바로 떠나는 이번 여행의 여러 마음가짐 중 하나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자’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의 여행 컨셉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쿠바에 도착하여 낡은 건물들과 멋진 올드카들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느낌은 무엇인지, 그들이 보존한 자연에서 뛰어노는 야생동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일지, 850마력의 오프로드 트럭을 타고 쿠바의 수도를 가로지를 때의 두근거림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배경으로 은은하게 들리는 아바나의 노랫소리에 내가 설레는 까닭은 무엇일까. 쿠바 스타일의 해산물 요리에 곁들여 먹는 Cristal (쿠바맥주)이 내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단순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 만으로도 기분 좋게 내 잠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쿠바를 꼭 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쿠바에 각지 흩어진 최고 음악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001)’을 나는 중학교 때 본 적이 있다. 물론 그 때는 영화에 대한 조예나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따분한 시간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Chan Chan’ 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 속 노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중학생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노래가 좋다면서 기억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쿠바의 감성에 이미 매료된 것 같다. 현지에서 그 노래를 듣게 될 때 내가 느낄 감정에 대한 호기심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슴 떨리게 한다.

<동반자에게 주는 선물>

쿠바에 함께 갈 사람을 생각하고자 한다면 독특하고 난잡한 내 취향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사실 취향을 이해한다는 것 보다는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쿠바를 더 나은 여행으로 만들 사람임에 틀림없다. 여자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이 바라보는 쿠바의 모습과 느낄 감정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어설픈 추측에 ‘쿠바’라는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 함께 나눠 낀 이어폰, 흔들리는 차 안에서 마주 잡은 손, 어설프게 꾸며내는 포즈에 카메라 뒤로 자꾸 새어 나올 웃음들은 그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추억이 아닐까.

생각만으로 설레는 남미의 섬이 내게 줄 추억들에 기다릴 수가 없다. 아바나, 비날레스, 산티아고 데 쿠바, 까마구에이, 트리니다드, 산타클라라, 바라데로를 걷게 될 내 발과 쿠바에게 감사하며 떠나자, 쿠바로!

¡Patria o muerte, venceremos!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하리라!, 쿠바 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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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낭만이 뚝뚝 흐르네요~
진정 쿠바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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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하면 시가(cigar)지요~
전에 쿠바 여행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것저것 알아봤었는데..... 왜 안갔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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