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털어놓고 싶은 찌질한 감정'에서 시작된 '스팀잇 글쓰기'에 대한 생각
올리지 못하는 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부터
스팀잇에 올리지 못하는 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점 점 가벼운 글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글을 쓰고 있지만, ‘오늘의 기록이 박제된다는 부담감’, ‘흑역사를 추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설임은 언제나 있다. 또, ‘질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활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익을 많이 얻을수록 이 공간이 더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내 계정은 익명성에서 어느정도 실패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렇다면, 블로그에도 올리기 힘들고, 친구들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내 찌질한 감정은 어디다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럴 때 난 가끔 ‘어라운드'에 글을 올리곤 한다.
익명 글쓰기 앱 ‘어라운드'
이미 출시된 지 2년 정도 지난 유저를 꽤 확보하고 있는 서비스다. (보통 공감을 많이 얻는 글들이 좋아요 3천개, 댓글이 300개 정도) 이 앱은 완벽하게 익명으로 운영된다. 글쓴이에 대해 어떠한 아이덴티티도 나타내지 않고, 글쓴이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연결고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처음엔 익명 SNS여서 욕설 또는 음란물과 같은 글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쓰는 동안 한 번도 보지못했다. (운영진이 관리를 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라운드에 올라오는 글들은 친구에게도 말 못할 나의 찌질한 감정, 외로움, 우울함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어라운드 앱
오글오글하거나, 찌질한 감정 털어놓기 좋은 곳.
스팀, 스달 대신 버찌
다른 사람들의 글에 단 댓글이 공감을 받으면 '버찌'를 받는다.
이 버찌가 있어야 나도 글을 올릴 수 있다.
음성일기에서 가끔 꿀떨어지는 그 사람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누구에게 금전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므로 스팀잇 보다는 더 자유롭다. 그렇다면 보상으로 평가받지 않으면, 더 편하게 글 쓸 수 있는걸까?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이 앱에서도 ‘좋아요' 가 인기글의 지표가 된다. 돈으로 환전된 금액이 없을 뿐이지, ‘좋아요’ 평가를 하지 않는 SNS 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직접적인 관계형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라운드는 SNS라고 정의내리긴 힘들 것 같다.) 그럼 ‘좋아요' 평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상호작용도 없는 건, 혼자 쓰는 앱과 같지 않을까.
'인스턴트 관계’, ‘보여주기식 감성'에서 오는 피로
어라운드 같은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이 계속 있다는 건, 나같이 SNS속 ‘인스턴트 관계'와 ‘보여주기식' SNS에서 공허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에 아무도 모르는 이 앱에 답답한 마음을 적어보는 것 같다. 어라운드 전에는 블라인드 앱이 있었고, 또 그 전에 수 많은 커뮤니티의 익명게시판들이 이 역할을 했다.
그리고 스팀잇에도 익명 계정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어라운드처럼 운영되지는 않았다. 어뷰징에 대한 저격이라든지, 고발, 불평등에 대한 외침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탈중앙화 플랫폼의 성장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스팀잇에서 익명성을 추구하기 힘든 이유
그렇다면 나를 비롯해 스팀잇 유저들은 피로감을 언제 느낄까. 콘텐츠로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면, 글을 계속해서 생산해야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을만큼 한 분야에 지식이 방대하거나, 이미 유명하지 않은 이상 일상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모두가 특별한 일상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데에서 이익실현이 힘들어진다. 내 생각에 특별한 글빨이 없는 이상,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지 않는 일상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녹아나는 순간 완벽한 익명성을 추구하기가 힘들어진다. 취향과 경험이 깃든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일부를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오랜기간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내 생각엔 없을 것 같다. 복붙한 자소서와 똑같을 것 같다. 이쯤되면 이런생각이 든다. “그럼 SNS 를 하지 말던가, 하려거든 신경을 쓰지 말던가"
콘텐츠전쟁 속의 피로감
스팀잇이 SNS 이기때문에, 내 스팀잇 계정도 ‘보여주기식' 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끔 날 것의 감정을 올리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내가 보고 느낀 ‘예쁜 것, 좋다고 생각한 것, 느낌있는 것' 들을 모아 포스팅한다. 인스타그램은 ‘감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여주기식' 이었다면 스팀잇은 ‘생각과 재능위주의 보여주기식’ 이라고나 할까. 인스타와는 다른 방식으로 피로감과 부담감이 온다. 그런데, 이 피로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집에서 있는 꼴로는 나갈 수 없는 것 처럼. 그 피로감이 견딜 수 없다면, 이 SNS와 맞지 않는 것이다. 떠나간 나의 지인들처럼..
보상이 있음으로 인해 소위 콘텐츠전쟁이 시작되고, 살아남을만한 콘텐츠를 구성원들이 매일 기획하게 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매일 기획하고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은 계정들은 자연스럽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것이다. 결국에 그 피로감을 즐기든지 극복한 사람들만이 이 시스템속에서 존재감이 있을 것이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SNS, 스팀잇
그렇다고, 여기에 기록해온 나의 감정이 거짓은 아니다. 스팀잇에서 만난 사람들중에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대부분을 여전히 응원한다. 금전적 보상도 있었지만, 마음이 따랐기 때문에 6개월 동안 많은 시간을 들였다. 분명한건 스팀잇은 타 SNS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자신이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에너지를 쏟지 않고 커뮤니티에 합류할 가능성은 적다. 그런 힘듬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동기부여인 스팀 가격이 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동기를 잃고 떠나간다.
게다가 영상과 이미지처럼 보는 것에 익숙한 뉴비라면, 스팀잇의 읽고 이해하는 텍스트 중심의 환경에 흥미를 느끼고 적응할 가능성도 낮은것도 사실일 것이다. 텍스트를 이미지화 할 수 있는 다양한 툴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래는 고래대로 힘든 것 같고, 피래미들은 포스팅 하는 것 자체도 힘겨워 보인다. 가볍게 포스팅할 수 있는 포맷이 여러가지 제공되어야 카테고리도 더 다양해질 것 같다. (게다가 가즈아까지 없었다면 얼마나 더 진지해지고 무거워졌을까.)
이왕 팔거면 즐겁게, 재미있게, 비싼 값에
이야기 파는 장사꾼이 된 기분이 자주든다. 근데 바깥이라고 다를까. 다른 플랫폼에서 나도모르게 공짜로 내 이야기를 팔았던게 몇년치인데. 기왕 1인 미디어시대에 무언가 쓰고 그리고 기록하고 있다면, ‘즐겁게, 재미있게, 기왕이면 비싼 값에 팔자’고 생각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나에게는 여전히 스팀잇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 그리고 단지 운이 좋았던 내가 이렇게 떠드는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 곳에서의 여정을 더 해보고 싶다.
P.s
몇일전부터 계속 생각이 들어서 오늘 맘잡고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이왕 팔거면 즐겁고 재미있게 팔아요. :-)
진짜 나의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어찌보면 치부가 드러날수 있는 것들에 대해 소통하는 관계는 정말 나와 친밀한 몇몇 아니 단 한명? 정도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기에 진솔하게 소통한다 하면서도 그 마지막 보루의 이야기는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할수 없음에 그 반대되는 마음과 충돌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제 친구들과의 모임이 20년을 넘어갑니다. 물론 매월 회비를 걷어 모으는 금전의 부분도 있지요. 하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만나서 먹고 마시고 놀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저 놀기만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중 한명이 그러더군요 더 건설적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바라는것 없이 그저 이렇게 얼굴만 보는것으로도 좋다고... 20년이 넘은 지금은 얼굴보기 조차도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졌으며, 그러하기에 그저 만나서 얼굴보고 노는 그 사소했던 행위가 그렇게 소중한것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스팀잇은 모든 분들의 글이 특별해야 한다거나 질 좋은 글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별 특별할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 조차도 언젠가는 그리워질 것이니까요. 좋은 주말 되세요~
장문의 댓글에서 깊은 생각이 느껴집니다.
네ㅎ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즐거워할 수 있는..!
많은 고민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저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것도 있는데.
아래 @rideteam님의 글이 정답에 가까운 글인듯해서 공감을 표해봅니다.
골방님, 안녕하세요
저도 라이드팀님 댓글에서 많은 공감했어요.
뉴비분들이 많이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커뮤니티가 더 다양해질 수 있도록요ㅎㅎ
저녁 맛있게 드시구요 :-)
모두가 하는 고민을 예쁘게, 그리고 고급지게 쓰셨습니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스팀잇... 그럼에도 여기에서 나를 보여주고, 덜 보여주고, 더 보여주고.. 나를 너무 드러내는 듯 하며 망설이다가 또 보여주고... 금전적 보상과 맞물려 우리의 이성은 헤매다가 또 들어오고... 흑. 다 그런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아님의 스팀잇 자리는, 아주아주 견고하고 아름다워요...ㅎㅎ 간밤에 고백 ㅋ
거의 갈팡지팡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깨작깨작 다다다다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ㅋㅋ
고백...심쿵ㅋㅋㅋ 감사합니다...헹...ㅎㅎ
좋은꿈 꾸세여 :-)
요즘들어 글 쓰기가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경아님이 잘 지적해주셨네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군요. 지금은 고갈된 느낌.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하니 또 다른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TR 님도 그러셨군요ㅎ 그런면에서 투자를 하고, 그 결과를 기록해나가신다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기록이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을꺼에요. 힘들면 좀 쉬었다가 걷고 또 그래봐야할 듯 해요ㅎㅎ
저녁 편히 쉬시구요!
정말 공감이 많이 가네요.. 글에서 정성이 느껴집니다.
퇴사준비중이신가요? 저도 준비하는데 기간이 꽤걸릴것같네요
공감 감사합니다ㅎㅎ
퇴사 준비중이시군요! 화이팅 합시다..!!
경아님... 오늘 풀봇 활동을 마쳤었는데 이 글을 본뒤 눈물을 머금으며 보팅을 누릅니다.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ㅜ ㅋㅋㅋ
소개해주신 익명 sns 처음 들어보는데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보상 외에 카뮤니티가 아닐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적어주신 내용들 구구절절 다 공감합니다. 아침에 리스팀하러 다시 찾아올게요 ^^
시련을 드릴 수 있어서(?) 매우 영광입니다ㅋ
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스팀을 현금화하지 않아서, 커뮤니티가 더 큰 거 같아요ㅋㅋ
답답할 때 어라운드 꽤 괜찮습니돠!
어라운드 아직 살아있구나..오... 여튼 맞아요. 스티밋이 그래서 뭔가 정이 좀 떨어지기 시작...힝. 나만 그런게 아니었군.
그러셨군요ㅎ
제가 쓴 글은 다소 씁쓸하고 비판적인 글이긴 하지만, 저는 아직 여기에서 해보고 싶은게 있어요ㅎㅎ
그래서 올 해는 열심히 활동해 볼 참입니다!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셔도 제가 반갑게 맞을께요ㅎㅎ
나의 즐거움이 우선, 보상은 덤...
그냥 이런 생각으로 스팀잇 즐기려고 합니다.^^
어라운드 아이디어 좋네요.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ㅋㅋ
오글거림에 동참...ㅎㅎ
그 생각이 제일 좋죠,
보상은 뭐 제쳐두고 내가 우선 즐겁자! 해야 다 잘되더라구요ㅎ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저도, 키위님도 무료로 소스를 공유하진 못했을꺼라 생각합니다ㅎㅎ
(우리 존재 최고!!ㅋㅋㅋㅋ)
비슷한걸 느껴요. 보상은 재미를 반감시키는게 아닌지... 비교는 흥미와 반비례 관계 같아요. 재미는 내가 보고 돈은 페이스북이 챙기면 쌤쌤인걸까요? 쓰다보니 산으로 가요. ㅠㅠ.
글솜씨 별로인 사람들은 스파 만개정도 충전하고, 하루 1시간 이내 시간 들여서 글 1개 정도 셀봇에 나머지 보팅파워는 큐레이션이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산으로 가는걸 자꾸 붙잡아서 겨우 썼는걸요ㅋ
글솜씨 없는 사람을 위해 대안을 제시해주셔서 흥미롭습니다ㅋ
흑역사가 될 거 같은 글은 저도 스팀잇에 쓰지 않고 있습니다.
에버노트에 적당히 적거나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리거나 그것도 싫으면 종이에 끄적이고 말게 되죠
문제는 흑역사가 될만한데 지금 적으면서 모르는 것들인데 ㅎㅎ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ㅎ 뭐가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하고, 페이아웃전에 찜찜한 이야기는 꼭 지우는걸로 하는건 어떨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