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설 강심장] 6화 - 박정훈
내 이름은 박정훈.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
부모님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절대 풍족할 순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받으시는 소액의 연금과
소일거리를 통해 벌어오시는
소소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소중한 돈으로
나를 뒷바라지 해주셨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슬퍼 보일 때가 종종 있었나보다.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쉽게 어울리지는 못했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위에서 느끼게 했고,
쉽게 나를 표현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들어간 이후로는 시간이 없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친구라는 존재를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야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빼곤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친구였다.
어느 날 TV를 켜놓고 시장에 가신 할머니를 집에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TV에서는 프로야구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규칙도, 선수도, 무엇을 하는 지도 몰랐지만,
앉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프로야구를 시청했다.
(시청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한 경기 이후에 나는 할아버지가 매일 어디선가 가져오시던
스포츠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1면에는 항상 전날 끝난 야구 경기의 결과가 요약되어 있었고
2면에는 경기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팀 순위를 비롯해서 타격, 방어율, 타점, 승리 등 각종 랭킹이 정리되어 있었다.
10위안의 선수들의 이름과 그들의 기록을 외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외워둔 선수들을 주말이면 TV 속 야구장에서 찾아내면서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던 기록을 불러냈다.
1번타자 이종범~
‘타율 3할5푼2리. 현재 1등. 도루 30개. 이것도 1등. 홈런 12개. 이건 9등.’
재미있었다. 처음엔 잘 하는 선수들을 찾기 시작하다가
점점 선수보다는 팀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좋아하는, 응원하는 팀이 생겼다.
그 팀의 선발라인업 그리고 후보 선수들까지 모조리 꿰고 있었다.
한 팀에는 스타선수도 있지만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선수들도 있다.
찬스에서 실패하는 선수들. 그리고 실수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신인선수들에
오히려 더 마음이 갔다.
때론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럴 기회도 소질도 없었다.
스포츠신문도 구독하지 못하는 집형편에 문구점에서 파는 질이 좋지 못한
글러브 하나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친구들에게 빌려서 동네에서 야구를 해봐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실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릴 때 자기가 동네에서 4번타자에 에이스 투수 출신이고
유리창 여러 번 깼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들 몇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다. 학교에서는 그저 조용히 없는 듯 지내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와 입시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 아무 의미 없던 고등학교 시절을 그나마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게 우혁이었다.
우혁이는 야구부 에이스이자 최고 인기 학생이었다.
나의 고교생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우혁이 마운드에 올라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항상 야구장 외야의 잔디밭 구석에 앉아 눈에 띄지 않게
우혁이 연습하는 모습과 시합 때 등판해서 던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포수미트(일반 수비수들의 글러브와는 달리 포수글러브는 두껍고 특수하게 만들어 mitt라고 부름) 에 경쾌하게 꽃히는 우혁의 투구를 보면
무언가에 억눌려 있던 내 마음속이 다소 경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같이 야구장 구석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우혁이 의식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서는 말을 걸어왔다.
"야구 좋아하나 봐?"
"어..응."
"난 우혁이야. 넌?"
"어 알지..너 우혁 인 거는.. 난 정훈. 박정훈.."
"매일 여기 와서 야구보고 있는 건 혹시 야구가 하고 싶어서 그러니?"
"아..아니 뭐..."
"캐치볼 해볼래?"
우혁인 다른 친구들과는 달랐다. 내가 어디서 자랐고, 누구와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의외로 통하는 구석도 많았다. 좋아하는 프로야구팀. 프로야구 선수.
왜 그 팀인지, 왜 그 선수인지.
가장 짜릿하게 기억했던 한 장면 까지도 동일했다.
친구. 우혁은 나에게 다가와준 유일한 존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었다.
존재감이 남다른 우혁이와 친구가 되니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편하고 즐겁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우혁이 프로에 지명되고 열린 축하 파티)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혁이는 맥주를 들고 건배 사를 하고 맥주를 들이키고 쓰러졌다.
놀란 눈으로 우혁에게 달려가서 정신차리라고 소리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혁이를 업고 집에 데려와 눕혔다.
(스타디움 건너 호프집에서 우혁이를 기다리며)
"김회장님. 드디어 준비가 되었군요."
"그래..드디어 완성되었어..친구를 설득할 수 있겠나?"
"글쎄요..일단 말로 설명하는 건 아직 힘들 것 같고,
오늘 그때처럼 그가 무의식 상태가 되는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김유훈 선배는 문제없이 처리될 수 있겠죠?"
"걱정 말게. 잠시 쉬다 오라고 일러두었네. 우혁이가 1군으로 가는 건 문제 없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자네가 그 친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지 알고 있네. 하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거야.
우리 야구팀이 1군에 진입하는 건 당면한 최우선 과제야.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럼요.. 이제 시작입니다. 회장님."
생각대로 우혁이는 맥주를 마시고 무의식 상태가 되었다.
의식을 잃은 우혁을 업고 택시를 타 혁이 집으로 갔다.
일단 침대에 눕히려는 데 무의식인데도 몸을 흔들며 투구폼을 자꾸 하려는 통에
몸싸움을 벌였다.
‘의식도 없는 집주인과 그 집에서 이런 꼴이라니..’
재빨리 밖으로 나가 우혁의 차를 몰고 근처 잡화점에서 밧줄을 사오려고
시동을 켜고 핸들을 꺾어 조금 차를 움직였다가,
문을 연 곳도 없을 것 같고 왠지 트렁크나 열어보자 해서 시동을 끄고 내려
트렁크를 열었는데, 어깨 스트레칭용 줄을 다행히 발견했다.
침대 위에서 투구폼을 굳이 시전하며 공을 던지려고 하는 우혁이를 붙잡고
스트레팅용 줄로 몸을 묶어버렸다.
‘미안하다 친구야..’
“김회장님, 준비는 된 것 같습니다.
아..근데 몸을 묶을 수 있는 장치는 미리 준비해주세요.”
전화로 알코올에 무의식으로 도달해버린 친구의 상태를 보고했다.
몇 일 뒤 예상한 대로 그는 술을 마시고 경기에 출전했다.
너무나 잘 안다. 10여 년을 옆에서 우혁이를 지켜봤다.
그의 곁에서 트레이너를 하게 된 것도 나에겐 정말 행복이었다.
우혁은 유일한 내 친구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 플랜에 모든 것을 부합하는 유일한 야구선수이다.
체스, 바둑 등의 게임에서 컴퓨터와 인간이 대결하고 있다.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컴퓨터는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심리전을 펼칠 수도 없고, 마음을 무너트려 패배시킬 수도 없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강심장이다.
우혁이는 완벽한 감정 컨트롤의 승부사가 될 수 있는 시작점에 있다.
(지하실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우혁을 지켜보며..)
'미안하다..그러나 이건 너를 위한 것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이야.'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하려 해도 고통스러운 친구의 모습에
뜨거운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아직 자신을 위해서 소설을 쓰고있는 phantom(유령, 팬텀) 입니다.
@kyung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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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해요
Bree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수고많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