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안녕'(2019)과 '행복 목욕탕'(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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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료타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2019)과 '행복 목욕탕'(2016)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사별'을 다루고 있다. 물론 내용은 다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의 사별, 아내 또는 엄마와의 사별.

사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눈물 범벅일 것이라는 예측은, 이를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같은 한국영화라면 틀림 없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눈물과는 거리가 멀다. 죽어서 헤어지는 아픔이 아니라, 잘 헤어지기 위한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또한 둘 다 임종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들의 일상 변화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감정이 아니라 일상이다. 사별을 준비하는 과정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반드시 찾아오는 일상이다. 그 일상을 당혹으로 맞이하는 게 아니라 남은 자들의 회한을 최소화하는 일상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 방법에 대해 모색해 보려는 시도가 이들 작품들이다.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허리가 휜 노모를 모시고 온 중년의 아들을 보았다. 그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나려 하자 "아, 가만히 좀 있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노인은 주눅이 들어 힘겹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병원에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태도와는 천양지차의 풍경이었다.

그 일상은, 사별에 대한 준비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몸이 불편한 노인이 부모라는 이유 때문에 억지로 움직여야 하는 호로자식의 일상이다. 흔한 일이다. 자신의 일상을, 특별한 순간들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못하고 그저 잔뜩 짜증이 나서 사는 소인배들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씩, 천천히 안녕'에서 맏딸로 출연한 다케우치 유코는 영화가 발표된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난폭한 사별은 자살이다. 남은 자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이별할 시간을 주는 이들과의 사별은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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