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부조리

in #krlast year

별 흥미가 없거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는 척 하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 듣기 싫은 얘기를 억지로 들어야 할 때 속으로는 "그만 좀 해"라고 수십번 외치지만 상대가 아랑곳없을 때 더욱 난감하다. 내가 그 얘기에 흥미가 있는지 좀 물어보고 얘기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역지사지의 견지에서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내 관심사를 얘기하고 있는데 상대의 눈빛이 '흥미 없음'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나는 얘기를 중간에 끝내 버린다. 상대가 의아해서 묻는다. "왜 얘기를 하다 말아요?" "네. 제 얘기에 별로 흥미가 없으신 것 같아서요." 그러다 또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일쑤다.

이런 '흥미 없음' 신호를 자주 보내는 지인에게 술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싫고 불편한 사람이 있어요. 얘기를 하다 보면 알아요. 아, 저 사람은 내가 그냥 싫구나." 지인은 따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가 만약 "그래요. 나는 당신이 그냥 싫어요. 왠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또 자리가 매우 불편해졌을 것이다. 그와 나는 그냥 케미컬이 안 맞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 살다 보면 그냥 싫은 사람이 있듯, 누군가도 내가 그냥 싫을 것이다.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각자의 결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100%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은 없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신경 쓰느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들에게 신경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생각해 보면, 어떤 말을 하든 투닥대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가 통하는 이들이 있다. "야야, 시끄러, 별 소리를 다 하네." 하면서도 꾸역꾸역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사이. 명절의 대화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흥미 없음' 신호를 받기 싫으면 처음부터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런 얘기를 할 건데 혹시 흥미 있어요?" 흥미가 없어도 예의상 "네. 해보세요."라고 대답을 하는 순간, 그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꼼짝 없이 경청해야 한다. 그런 질문에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요."라고 대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러나 저러나 고문이라면 예의를 갖춘 고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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