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나들이

in #krlast year

운동 마치고 마트에 갔다. 귤을 살 작정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마트에 가면 과소비를 하게 된다.

당근과 햄을 샀다. 집에서 뒹굴고 있는 양파와 함께 볶음밥을 해먹을 생각에. 야채들을 잘게 다져 올리브유 두른 웍에서 달달 볶다가 밥과 굴 소스를 투하하는 상상을 한다. 두부를 샀다. 설 차례상에 오를 북어로 국을 해먹을 생각에. 참기름 두른 냄비에 잘게 찢은 북어를 볶고, 두부 넣고 대파로 마무리하는 상상을 한다. 양배추를 샀다. 냉동실에 처박혀 있는 돈까스를 익히고 옆에 샐러드를 놓을 생각으로.

마트 나들이는 언제나 행복하다. 이러저런 식재료들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무엇을 어떻게 익혀 무엇과 섞어 어떤 요리를 해먹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나는 그 상상의 시간이 좋다. 단, 그 요리를 해놓고 나 혼자 먹어야 하는 건 좀 거시기 하다.

나의 유일한 식객이자 동거 노인인 형이 이가 안 좋아져 죽 아니면 씹어 삼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집에 돌아온 직후 그에게 라구 파스타를 해주니 "호텔급"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이가 멀쩡했었다. 먹어줄 사람이 있을 때 요리의 행복은 배가 된다. 그가 씹기 힘들게 되자 내 행복의 시간도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얼른 돈 벌어서 형에게 틀니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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